광복 75주년 남북 예술교류사-현황과 미래

SPECIAL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8월 17일 9:00 오전

남북을 잇는,남북을 잇는,음악의 다리

 

 

 

 

 

 

 

 

 

 

 

흐르는 음악에도 경계가 있을까. 38선으로 갈라진 남북의 음악은 광복에도 만나지 못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끝내 그렇게 70여년이 흘렀다. 객석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음악을 통해 평화를 향해가는 시도에 주목했다.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00년부터 ‘겨레의 노래뎐’을 통해 남북한의 음악으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국립국악원은 반쪽짜리 음악사를 넘어, 한반도 예술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제공하고자 8월에 풍부한 전시와 강연 및 공연을 준비 중이다. PLZ페스티벌은 음악제를 통해 분단과 상처의 땅 DMZ를 평화와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북한 출신 피아니스트 황상혁은 북한 음악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다. 마지막으로 1984년 창간 이래 ‘객석’이 담아온 북한의 공연예술 기사를 정리하여 우리가 알지 못했던 교류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러한 교류와 염원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지속 중이다.  평화와 소통을 위한 음악의 움직임과 현주소를 한데 담아 보았다.

INTERVIEW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김성진
INTERVIEW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김희선
INTERVIEW PLZ페스티벌 예술감독 임미정
INTERVIEW 북한 출신 피아니스트 황상혁
ARCHIVE 객석 아카이브로 읽는 남북한 문화예술교류사


남북 음악을 연주하다
겨레의 노래뎐 이어가는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김성진
시작은 2000년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단체로서, 한민족을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발굴하고자 했다. 이에 대한 일환이자 국립극장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며 ‘겨레의 노래뎐’을 개최했고, 이후 2009년까지 공연을 열었다. 주로 해방 직후 창작가요와 북한 민족음악 등을 재해석했으며, 북한 곡을 선정할 때는 이념 갈등이 예상되는 곡은 제외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고, 국립극장도 개관 70주년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극장의 시작은 전쟁의 시작과 맞물린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겨레의 노래뎐’을 다시금 기획해 민족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가 세상에 침투했고, 결국 ‘겨레의 노래뎐’은 무관중 녹화로 이뤄졌다.

6월 17일, 포디움에 오른 김성진은 빈 객석을 바라봤다. 텅 빈 객석은 공허함을 준다. 이내 그는 담담한 마음으로 지휘봉을 들었다. 이번 공연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대한민국 초기 애국가 세 곡을 엮은 손다혜의 ‘하나의 노래, 애국가’로 시작해, 전쟁 속 평화를 염원하는 장석진의 ‘초토(焦土)의 꽃’, 무용가 안은미와 소리꾼 정은혜가 함께한 북한 가요 ‘휘파람’이 이어졌다. 2부에선 1950년대 전후 노래를 엮은 양승환의 ‘작은 평화’, 대니 구가 협연한 북한 작곡가 리한우의 바이올린 협주곡 ‘옹헤야’, 황호준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가 펼쳐졌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공연은 진행됐고, 텅 빈 곳의 울림은 이상하리만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작은 바람이 모여 태풍을 만든다. 김성진은 음악도 마치 바람과 같다고 말한다. 작은 울림이 큰 파동을 이루는 것처럼, 이 잔잔한 울림도 언젠간 한반도에 가득 퍼지리라.

‘겨레의 노래뎐’은 2000년에 시작되어 2009년까지 진행됐다. 올해 다시 ‘겨레의 노래뎐’을 재개한 이유는.
한국전쟁 70주년, 국립극장 창설 7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다. 여전히 남과 북은 전쟁 중에 있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이번 공연의 경우는 지난 ‘겨레의 노래뎐’과 달리 참전 용사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래서 리종오가 작곡한 북한 가요 ‘휘파람’ 같은 곡은 올리면 안 된다는 논의도 있었고.

올해 ‘겨레의 노래뎐’은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됐다. 이번 공연은 ‘현장성’보다는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영상을 통해 다양한 관객이 이번 공연을 만났지만, 서로 교감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 컸다. 막상 눈앞에 보이는 관중이 없으니 공허했다. 앞으로 객석이 다시 채워지면 온 맘을 다해 연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까지의 ‘겨레의 노래뎐’은 대부분 북한 곡을 재발굴하여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북한 음악보다는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에 집중한 느낌이다.세 명의 남한 지휘자에게 곡을 위촉했고, 두 명의 북한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해 선보였다. 북한 작곡가의 곡으로는 리종오 ‘휘파람’과 리한우 바이올린 협주곡 ‘옹헤야’를 택했다.

그렇다면 남북 음악 교류에서 좋은 방향성은 무엇일까.
연주자 교류가 중요하다고 본다. 북한 연주자가 남한에서 연주하고, 반대로 우리 연주자가 북한에 갈 수도 있다. 지휘자 교류도 고민해보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대립하더라도 문화는 물꼬를 터서 남북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전쟁, 그리고 국립극장의 70주년. 기념비적인 공연인데, 준비에 있어서 부담감은 없었나.
솔직히 표현하자면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한 번 공연으로 어떤 판도의 변화를 예상하긴 힘들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다 보면 어느 순간 남과 북이 연결되리란 기대감으로 임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협연자가 신선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무대에 올랐다. 안은미는 여러 경로로 수집한 북한춤의 기본 동작을 토대로 자신이 재해석한 춤을 선보인 바 있다. 대니 구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필라델피아에서 자란 연주자여서 우리 음악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했다.
2018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안은미의 북.한.춤’을 봤다. 당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번 프로그램 대부분이 무거운 작품이어서 안은미의 춤이 함께하면 신선한 기운이 더해지리라 예상했다. 미국에서 성장한 대니 구는 이번이 국악관현악단과의 첫 협연이었다. 서양 오케스트라가 매끄럽다면, 국악관현악단은 걸쭉한 느낌이다. 대니 구 역시 색다른 경험에 놀란 듯 보였다. 그런데 ‘옹헤야’ 특유의 박자를 아주 잘 타더라. 아무리 해외에서 자랐어도 한국인의 피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지휘자의 시각으로 북한 음악을 분석했을 때 흥미로운 지점은.
보통 북한은 기존에 존재했던 선율을 새롭게 오케스트레이션 한다. 그래서인지 관현악 작품들을 보면 우리 색깔이 더욱 진하게 묻어 나온다. 반면 남한의 젊은 작곡가들은 한국적인 느낌보다는, 신선한 것에 집중하는 듯하다. 일례로 남한 작곡가들이 해외 작곡 콩쿠르에서 발표한 곡들을 들어보면 한국인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독일 작곡가의 작품인지, 남한 작곡가의 작품인지 잘 모르겠다. 이 땅에 사는 작곡가들이 우리에게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남북 음악 교류를 통해 북한 작곡가들은 남한의 다양한 음악 어법에서 영감을 얻고, 남한은 전통을 모티브로 삼는 북한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얻으면 어떨까.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체감한 것이 있다면.
공허했다. 이러한 공연을 북한에서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북한에서 메아리 같은 반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북한 음악 발굴에 있어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도 궁금하다.저작권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통일부에 신청하는 걸로 알고 있다. 저작권료도 지불해야 하는데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공탁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음악이라는, 어쩌면 추상적인 이 장르가 과연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음악은 소리다. 소리는 안 보인다. 그런데 어디에나 있다. 나는 음악이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바람이 모여 태풍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은 울림을 시작으로 나중엔 큰 파동이 일어날 것이다.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극장


겨레의 노래뎐 주요 연혁
2000년 3월 17~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한상일 | 지휘 김재영황해도 민요 ‘태질소리’ ‘에밀량’(편곡 원일) 외

2001년 3월 16~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한상일 | 지휘 한상일김옥성 ‘압록강’, 백창우 ‘남누리 북누리’ 외

2002년 3월 15~1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한상일 | 지휘 김경화최성환 ‘아리랑 환상곡’(편곡 이인원), 김희경 ‘돈돌라리’ 외

2003년 3월 29~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한상일 | 지휘 김경화최재선 소해금 협주곡 ‘봄맞이’, 김대성 ‘산유화 환상곡’ 외

2004년 3월 29~30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예술감독
최상화 | 지휘 최상화북한 민요 ‘사설 난봉가’ ‘연평도 난봉가’(편곡 이용탁) 외

2005년 3월 17~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최상화 | 지휘 이용탁박범훈 ‘겨레의 대합창-천둥소리’ 외

2006년 10월 19~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황병기 | 지휘 김홍재황병기 ‘통일을 위한 대합창-우리는 하나’ 외

2007년 6월 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황병기 | 지휘 김홍재김옥성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외

2009년 4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예술감독
황병기 | 지휘 원영석김대성 ‘애국의 길’, 황병기·성동춘 ‘통일의 길’ 외

2020년 6월 17일 롯데콘서트홀예술감독
김성진| 지휘 김성진손다혜 ‘하나의 노래, 애국가’, 양승환 ‘작은 평화’ 외


남북 민족예술을 연구하다
북한음악자료실 여는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김희선

김희선 ©심규태(HARU)국립국악원 안의 국악연구실은 국립국악원을 떠받치는 숨은 공신이다. 4개의 예술단(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창작악단)이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국악을 전할 때, 국악연구실은 학술연구·교육·아카이빙을 통해 국악 전승을 위한 밑바탕을 제공한다.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박물관 및 악기연구소 운영도 국악연구실의 몫이다.

2016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으로 임명된 김희선은 그간 북한 음악 연구를 진두지휘해왔다. 그는 북한 음악에 대해 “미래 공동체의 자산”이자 “영감의 보고”라고 단언한다. 2013년부터 발간해온 북한 공연예술에 관한 단행본 ‘한민족음악총서’ 8집(2019)에서 재일동포 원로예술가 구술채록을 내며, 연구대상도 넓혔다. 북한 음악을 포함한 중국·일본·소련 및 중앙아시아로 흩어진 한민족 음악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전통음악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고 있다”며,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 음악 유산은 앞으로 미래 공동체의 자산이 될 것”이라 강조한다. 한뿌리에서 뻗어 나간 가지를 모으고 대조해, 우리 소리의 근원과 성장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처럼 국립국악원은 남과 북, 한국과 세계, 국악과 국민, 과거와 미래를 잇는 허브다.

국악연구실과 대중의 소통창구는 국악박물관. 1995년 개관하여 국악 유물과 악기를 전시해온 이곳은 첨단 시청각자료를 갖춰 2019년 8월 재개관했고, 8월에는 복합문화공간 ‘공간이음’이 문을 연다. 분리됐던 도서관·자료실·전시 기능을 통합해 이용자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국악연구실에서 내부적으로 운영해온 북한음악자료실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라 관심을 끈다.

국악은 우리의 전통음악이라는 인식 때문일까. 국악연구실에서 북한 음악, 나아가 재일동포 등 디아스포라 음악을 연구한다니 생소하게 느껴졌다.
북한 음악 연구는 기본적으로 근현대 한국음악사를 완성하는 작업이자 잃어버린 반쪽을 채워 넣는 작업이다. 이미 근현대 음악사 연구가 활발한데, 국악이 조선 시대에만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눈을 세계로 돌리는 순간 국악연구실이 해야 할 과제가 분명해졌다.

북한 음악에 관해서라면, 국립국악원은 1990년대부터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2013년부터 북한의 공연예술에 관한 학술자료를 엮어낸 단행본 ‘한민족음악총서’를 발간하고 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인가?
북한 내에서는 사회주의 이념 때문에 객관적인 연구가 불가능하고, 세계 학술계는 관심은 높으나, 기초 연구자료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측 학계에서는 2000년 이후 전문 연구자들이 축적해놓은 연구들이 꽤 있었다. 이를 모아 북한 음악 연구를 소개한 개론서 ‘북한의 공연예술(Korean Musicology Series 10: Performing Arts of North Korea)’(2020)을 발간했다. 북한 공연예술에 대한 세계 최초의 영문 책자다.

취임 직후 북한 자료 수집에 착수했다. 민감한 북한 자료를 다루기 위한 특수자료 취급인가를 취득해 적극적으로 임했는데.
북한 연구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자료 접근성 문제다. 직접 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개별 연구자가 알음알음 자료를 구하다 보니,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지기 어렵다. 민간학계가 할 수 없는 일에 국가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현재 북한은 해외로 반출되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여력이 없다. 우리 문화재를 국내로 들여오는 것은 국립국악원의 사명이기도 하다.

북한 관련 자료는 그 희귀성 때문에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고 들었다. 처음엔 수집을 위해 따로 편성된 예산도 없었을 텐데.
자료 수집은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무모한 시도다. 워낙 정보가 제한적인 데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음악 전문가인 국립국악원 천현식 학예연구사의 공이 컸다. 자료의 가치와 구입 시기를 판단하는 데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주었다. 그 외의 연구자들도 자기 일처럼 도왔다. 민간의 학술 활동을 돕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빠짐없이 수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좋은 민관 협력 사업의 모델이 됐다.

그렇게 수집한 북한 공연예술 관련 자료가 1만5천여 점에 이른다. 북한 공연예술에 한해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총 11만 점을 보유한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도, 민족예술 관련 자료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국립국악원의 북한음악자료실 자료는 단행본·신문·잡지·팸플릿·영상·음원·사진·회화를 총망라한다. 민족음악에 서양음악을 종속시킨 북한 음악의 특성상, 민족음악 외에도 작곡가 윤이상, 북한 교향악 관련 자료까지 구비했다. 얼마 전엔 일부만 소장했던 북한 음악잡지 ‘조선음악’을 완전한 세트로 수집해, 2016년에 발간됐던 ‘한민족음악총서5:북한‘조선음악’총목록과색인’의 증보판(2020)을 냈다. 북한의 유일체제화 이전 시기(1950~1960년대) 이뤄진 논쟁을 볼 수 있는 귀중한 1차 사료다.

북한 민족음악 기획전 콘셉트 사진

북한음악자료실 개실을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쌓아만 두어서는 의미가 없다. 연구자·창작자·연주자에 의해 활용돼야 한다. 2016년부터 자료 수집과 동시에 개실을 준비해온 이유다. 자료가 들어오는 대로 내용을 파악하고, 분류체계를 만드는 작업을 병행했다. 앞으로 디지털 콘텐츠 변환 작업이 남아있다. 지금의 예산 편성으로는 무리가 있어서, 우선 급한 자료부터 조금씩 디지털화하는 실정이다.

 

 

일반에 공개된 자료들이 어떻게 활용될까.
이를 통해 아마 수백, 수만 편의 논문이 나올 것이다. 국악뿐 아니라 국문학·음악학·문화인류학 등에서도 연구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공연예술 창작자들이 와서 보고 작품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북한을 소재로 한 드라마·영화를 포함해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원천자료로 쓰일 것이다. 앞으로 국립국악원의 ‘효자상품’이 될 것으로 본다(웃음).

국립박물관 공간 이용 투시도

북한음악자료실 개실과 이를 기념하기 위한 북한민족음악기획전 ‘모란봉이요, 대동강이로다’(8.7~12.6), 창작악단(8.7)과 민속악단(8.11)의 연계 공연, 학술회의 ‘북한의 민족음악유산’(9.12~10.10)이 잇따라 열리기도 한다.
악보·음원 등 학술자료의 활용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국악자료실이 가진 원전 악보를 음악으로 만들고자 연주단에 협업을 제안했다. 창작악단과는 북한 음악 중에서도 선동적이거나 너무 대중적인 음악은 배제하고, 학술적인 시선을 가미한 연주회를 기획했다. 민속악단은 대표적인 북한의 민족악기인 퉁소 연주와 서도소리를 선보인다. 전시에서는 북한음악자료실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달라진 남북한의 음악을 보여줄 예정이다.

 

사실 북한은 오랫동안 금기시된 영역이다. 북한 문화예술을 정치선전용이라고 경시하거나, 희화화하는 경향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 국립국악원의 움직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실제로 2019년 민족가극 ‘춘향전’ 필름을 상영했다가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만큼 북한은 오랫동안 두려운 존재, 언제라도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통일을 전제한다면, 동질성 회복을 위해 문화적 간극을 좁히는 일은 꼭 필요하다. 사상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민족예술은 가장 쉬운 발걸음이고. 남과 북이 만날 때면 항상 아리랑을 앞세우지 않았나. 아리랑을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이유는, 나도 결국 이 땅에서 나왔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는 그들하고 원래 형제였기에. 민족예술이 주는 감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랜 분단의 역사만큼, 남과 북의 민족예술 또한 너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민족예술에 있어 남측은 보수적으로 보존을 지향했다면, 북측은 창작이 핵심이었다. 그 차이를 처음 확인한 것이 1985년 남북 예술단 교류 행사다. 서로에게 충격이었고, 각자의 음악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후 남측은 악기개량에 힘쓰고, 북측은 다시 전통음악의 원형에 주목하는 등 영향을 주고받았다. 민족문화는 한민족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계속 만나왔다.

오는 9월로 임기를 마무리하게 됐다. 국립국악원을 떠나며 아쉬운 점 혹은 앞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사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립국악원이 남측 대표로 평양을 방문해 북측과 직접 민족예술을 교류하는 대북 창구 역할을 하려 했다. 남북공동발굴조사, 남북공동편찬겨레말큰사전처럼, 다시 남북관계가 호전되어 함께 예술을 연구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북한음악자료실 개실 기념 연계 행사
➊ 북한민족음악 기획전 ‘모란봉이요, 대동강이로다’
8월 7일~12월 6일 국악박물관 기획전시실
분단 전후로 달라진 남북의 공연예술을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분단 이전 서도 소리를 유성기 음반에 기록된 명창 이정화·문영수·김진명 등의 소리로 들어볼 수 있다. 분단 이후 북한 민족음악에 대해 월북·재북 음악가, 민족가극, 민족기악, 민족무용 관련 북한음악자료실 소장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남북 음악 교류의 순간을 아카이브로 정리해 전시했다.

교향곡 제 1번
조선민족무용기본

➋ 북한민족음악 기획전 연계 공연
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한민족음악회-기록과 상상’
8월 7일 오후 8시 국립국악원 우면당
월북 음악인이자 가야금 명인 최옥삼(1905~1956) 작곡의 무용곡 ‘법성포 뱃노래’와 가야금 협주곡, 윤이상(1917~1995) 실내교향곡 1번 등을 국악기 중심으로 편곡하고 북한 악기 장새납 연주를 더해 창작악단의 색채로 재해석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는 박태영이 지휘를, 북한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이 사회를 맡았다.
②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북녘의 우리소리’
8월 11일 오후 8시 국립국악원 우면당
민족악단은 북한악기 퉁소를 사용한 독주곡 ‘도드리’와 기악 합주 ‘신아우’를 선보인다. 북한 작곡가 박예섭(1937~?)의 거문고 산조와 북한 민요 ‘기성팔경’ ‘온정맞이’ ‘절구질소리’와 월북음악인 안기옥(1894~1974)의 민족기악합주곡 ‘새봄’ 또한 들어볼 수 있다. 모든 연주곡의 원본 악보와 음원은 북한음악자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➌ 북한민족음악 기획전 연계 학술행사
① 학술회의 ‘북한의 민족음악유산’
8월 11일 오후 1시 국립국악원 우면당
이번 제6회 북한 음악 학술회의에서는 북한을 포함해 남한·중국·일본·소련 및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북한 민족음악 유산의 현황과 연구 성과를 살펴볼 예정이다. 북한음악자료실 자료의 체계적인 분류와 소개도 이뤄질 예정.
② 특강 ‘국악라키비움’ & ‘북한민족음악’
8월 8일~10월 10일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국악박물관 국악뜰
국악박물관 내 ‘공간이음’, 아카이빙 자료, 북한음악자료실 소장 자료, 한민족 음악인에 관한 다채로운 강의가 마련된다. 김희선을 비롯하여 이진원, 배은경, 김철웅, 최신아, 김지은 등 북한 음악 연구자, 기록학자, 음악가들이 강연을 이어나간다.

정리 박서정 기자


남북 사이에 음악을 놓다
비무장지대에서 음악제 여는PLZ페스티벌 예술감독 임미정

2000년 처음 평양을 방문해 북한 음악가들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 이후, 임미정의 마음에는 항상 ‘남북이 함께’라는 키워드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이후 그녀의 활동에 중심이 되어 왔다. 2005년 하나를위한음악재단을 만들고 그린 콘서트, 평화 음악회를 이어온 것도, 2018년 강원도 양구의 국립DMZ자생식물원에서 ‘PLZ 이니셔티브’를 개최하고, 이듬해인 2019년 PLZ페스티벌을 시작한 것도 모두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서 맺은 결실이다.

PLZ페스티벌은 비무장 지대를 뜻하는 DMZ를 PLZ(Peace and Life Zone), 즉 평화와 생명의 지대로 인식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보다 훨씬 규모를 키운 올해 축제는 ‘소리 안의 소리여!’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강원도 인제군, 양구군에서 10일간 펼쳐졌던 축제가 올해는 7월부터 12월까지 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 등 강원도 내의 접경지역 5개 군에서 열린다. 또한, 이리나 보코바 전(前)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명예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되어 국제적인 교류와 성장을 도모한다.  페스티벌을 이끄는 임 감독은 언젠가 이 축제가 북쪽으로 확장되고, 또 그곳을 넘어 전 세계 음악인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전 세계 16개의 DMZ 지역은 물론, 분쟁과 어려움이 있는 모든 곳에 음악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PLZ페스티벌의 정신이 확장되기를 꿈꾼다고. 분쟁과 갈등, 고립의 아픔을 겪는 지금, 자연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의 메시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울림을 준다.

2000년 평양을 방문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떤 공연을 선보였는지도 궁금하다.뉴욕에 있을 때 재미 음악가 신분으로 방문했다.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협연했고, 북한 작곡가 윤충남의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를 연주했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보았는지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서 출국할 때에 공항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더라. 기분 좋으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국내 독주회에서 ‘아리랑’ ‘돈돌라리’ 등 북한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다. 그중 ‘아리랑’은 디지털 싱글 음반으로도 선보였다. 화려하면서도 흥이 나는 곡이라 누구나 좋아하는 것 같다.

현장에서 느낀 북한의 음악적 수준은 어땠나?
우리 민족의 뛰어난 음악 수준은 역시 동일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 러시아나 폴란드 등 동유럽의 클래식 음악 교육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체계도 잘 잡혀있다. 다만, 아주 다양한 접근을 하진 않는 것 같다. 대중의 이해가 중요하다 보니 창작곡은 절가(노래) 형식의 기악음악이 많다. 민족음악적인 성격이 강하달까.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많은 북한 연주자들의 공연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국제 콩쿠르에 나온 어린 학생들의 연주가 인상적이다. PLZ페스티벌의 큰 줄기는 생명과 평화다. 이 점이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칠 텐데.음악은 본래 생명·평화·자연·사랑·이성·휴머니즘 등의 고귀한 생각을 소리로 구현한 것이고, 클래식 음악은 몇백 년 동안 인간의 심오한 부분과 교감해온 가볍지 않은 창작물이다. 그래서 대부분 음악이 우리의 주제에 부합한다.

음악에 평화를 이끄는 힘이 있다고 보는가?
훌륭한 연주자로 박수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닌, 평화나 생명에 대한 염원의 마음을 소리에 담아서 연주한다면,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세상에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올해 PLZ페스티벌은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강원도 고성에서 첫 문을 연다.
고성군의 금강산 건봉사와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명파교회)를 찾을 예정이다. ‘금강산 가는 길’이란 주제로 금강산의 첫 사찰인 건봉사를 통해 금강산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건봉사는 신라시대 지어진 사찰로 부처의 치아사리가 보존된 곳이다. 이곳 ‘불이문(不二門)’ 앞에서 오프닝 공연(7.25)을 한다. ‘불이’란, 생과 사,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해탈의 경지를 말하는데,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인 ‘소리 안의 소리여!’를 시작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불이’와 ‘소리 안의 소리’ 모두 가장 근원적이고 심오한 철학의 지점을 건드린다.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질 프로그램도 기대되는데.
인제군에서는 꽃 축제와 연계해 ‘꽃과 음악, 그리고 님의 침묵’(10.3~18)이란 주제로 공연한다. 한용운의 정신을 담은 만해마을부터 백담사까지 가을꽃으로 가득한 곳에서 음악과 함께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양구군에서는 ‘디엠지에서 연주하는 시와 그림’(9.5·12/11월 중)을 주제로 박수근 미술관, 인문학 박물관, 장터 등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공연을 진행한다. 화천군에서는 문화예술회관을 찾아 전통적 공연 방식에 담은 클래식 음악을 선보이고(11.14·21), 철원군에서는 고석정과 수도국지에서 춤과 음악이 있는 독특한 공연과 포럼을 연다. 아픈 역사가 담긴 이곳에서 그 아픔에 대한 위로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대를 위한 영원한 노래’(8.22/10월 중)를 주제로 삼았다.

다양한 장르와 연령대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한다.
우선 연주자들에게 축제에 대한 취지문을 보내고, 페스티벌의 정신인 평화와 생명의 의미를 공유하며 참여를 부탁한다. 올해는 이경선·김다미(바이올린), 김세일(테너), 박규희(기타), 박종성(하모니카), 아벨 콰르텟 등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가 외에도 발달 장애인 음악가로 구성된 드림위드 앙상블, 제이피 요프리(반도네온), 탱고 오케스트라 띠에라, 노름마치 예술단 등 여러 연주자가 참여한다.

PLZ페스티벌의 의미를 담아 북한 출신의 아티스트와 함께해볼 생각도 있는지.
남북의 연주자들이 함께하고, 또 북쪽 연주자들을 자유롭게 초대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2000년 평양 방문 이후 많은 활동에 있어 항상 ‘남북이 함께’를 키워드로 삼았다. PLZ페스티벌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만든 프로젝트이고. 언젠가는 이 축제가 북쪽으로도 확장되길 바라고, 또 전 세계로 퍼져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공감하는 평화문화캠페인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여기엔 음악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 그 시작이 바로 우리나라의 DMZ이고.

페스티벌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라고.
작년엔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올해는 아르떼 TV와 조원국 PD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음악으로 DMZ를 PLZ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담고자 한다. PLZ페스티벌을 준비하는 회의 과정과 공연 장면, 그리고 국방부와 유엔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에서의 음악회 추진 과정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PLZ페스티벌이 나아갈 방향성이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힘으로 교감할 수 있음을 믿으며 음악으로 평화에 대한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의 DMZ 지역에서 치유와 회복, 그리고 평화와 생명(Peace and life)이라는 희망을 음악으로 보여준다면, 그래서 아픔의 역사를 품은 전 세계의 많은 지역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인류가 함께 다짐하는 서약의 캠페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라 기자 사진 PLZ페스티벌


FESTIVAL PREVIEW 
제2회 PLZ페스티벌•소리 안의 소리여!

PLZ페스티벌은 스스로 분단과 냉전의 상처를 치유한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와 생명의 땅인 PLZ(Peace and Life Zone)로 인식시키고, 음악으로 전 세계에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만들어진 글로벌 문화운동이다.

2019년 처음 시작된 PLZ페스티벌은 올해 집행위원장 임미정(PLZ 예술감독·하나를위한음악재단 이사장), 특별고문 강금실(특별고문·강원문화재단 이사장·前 법무부 장관), 명예조직위원장 이리나 보코바(前 유네스코 사무총장) 등이 주축을 이룬 조직위원회와 평화지역으로 지정된 강원도 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 등 다섯 개 군의 협력으로 개최된다.

지난해보다 훨씬 규모를 키운 올해 축제는 ‘소리 안의 소리여!’라는 주제로 7월~12일까지 펼쳐진다. 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에서는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을 구성해 선보인다.

오프닝 공연이 열리는 고성군 공연의 주제는 ‘금강산 가는 길’이다. 금강산 건봉사와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를 찾을 예정으로, 금강산의 첫 사찰인 건봉사를 통해 금강산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인제군에서는 꽃 축제와 연계해 ‘꽃과 음악, 그리고 님의 침묵’이란 주제로, 양구군에서는 ‘디엠지에서 연주하는 시와 그림’을 주제로 박수근 미술관, 인문학 박물관, 장터 등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공연을 진행한다. 철원군에서는 ‘그대를 위한 영원한 노래’를 주제로 삼아 고석정과 수도국지에서 춤과 음악이 있는 독특한 공연을 연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디엠지에서 클래식을’은 화천군의 주제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대와 장르의 아티스트가 모였다. 오케스트라 데 나시옹(구 유엔 오케스트라)과 이경선·김다미(바이올린), 김세일(테너), 최은식(비올라), 김민지·심준호(첼로), 박규희(기타), 박종성(하모니카), 아벨 콰르텟 등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가 외에도 발달 장애인 음악가로 구성된 드림위드 앙상블, 제이피 요프리(반도네온), 탱고 오케스트라 띠에라, 노름마치 예술단 등이 참여해 풍성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미라 기자


북한 음악계 현황
음악은 똑같이 흐른다북한 출신 피아니스트 황상혁

황상혁은 북한의 엘리트 음악교육을 받은 수재이다. 열 살에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시작한 황상혁(1974~)은 14세에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에 입학해 1950년대 레닌그라드 국립음대에서 유학한 이경린을 사사했다. 1994년, 20세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졸업 직후 모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20년간 활동했다. 탈북해 남한에 온 것은 2014년. 황상혁은 “남한에 오기 전까지 한국 피아니스트에 대해 전혀 몰랐다. 백건우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며 남과 북의 음악적 교류가 단절되어 있음에 가슴 아파했다. 평화의 매개라 불리는 음악조차 남과 북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음악교육의 중심에 있었던 황상혁과의 대화를 통해 남한의 음악교육과 비교하며 북한 교육의 현주소를 꼼꼼히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서울대 음대 석사과정(2016~2019)을 수료했다. 교육과정에서 느낀 차이가 있다면.
우선 북한에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클래식 음악, 실용음악을 나누는데, 북에서는 그냥 다 ‘음악’이라 부른다. 전공에 있어서는 북한도 한국처럼 기악과가 피아노·현악·관악으로 나뉘는데, 이를 다시 ‘강좌’라 부르는 세부 전공으로 가른다. 예를 들어 피아노만 3개의 강좌로 나뉘는데, 1강좌는 피아노, 2강좌는 아코디언·전자 키보드, 3강좌는 노래 반주로 나뉘는 식이다. 학점제 또한 한국에 와서 처음 본 제도다.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북한 음악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지금은 평양음악무용대학이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으로 바뀌었다. 김원균(1917~2002)은 북한의 ‘애국가’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곡한 북한의 대표적인 음악가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은 소학교 4년, 예비반 3년, 전문부 3년, 학부 4년까지 총 14년제로 운영됐다. 현재는 학부가 5년으로 늘었고, 여기에 유치원까지 합하면 17년제가 된다. 북한 학생들의 러시아 유학도 꽤 많지 않은가. 러시아 음악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고, 유학도 활발했다. 교육 제도도 러시아의 체계를 많이 따랐고. 교향악단·발레단 공연도 정기적으로 이뤄졌다.

졸업 과정은 어떠한가.
북한에서는 졸업 연주를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한다. 졸업 심사위원도 교수들이 아닌 국가에서 따로 파견한 사람들이 맡는다.

이론적인 부분에서의 교육은 어떤가? 
북한에서도 이전에는 서양 음악을 바탕으로 이론을 배웠지만, 박정남이 ‘주체배합관현악편성법’이라는 북한식 관현악법 이론서(2000)를 만들어 우리 식의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배합관현악이란 북한식 개량 악기와 서양악기를 함께 편성하는 것을 뜻하는 관현악 연주법이다). 다시 말해 이론 교육도 북한 음악을 중심으로 하되 서양 음악은 참고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북한 음악이 뼈대는 잘 잡혀있지만, 여러 가지 제한 때문에 음악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아쉽다.

연주 레퍼토리의 한계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공부할 당시에는 외국곡 60~70퍼센트, 북한 곡 30퍼센트 비율로 공부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다. 거의 북한 작품만으로 공부하고, 외국곡은 콩쿠르용으로만 사용된다. 콩쿠르로는 예술개인경연이라고 딱 하나 있는데, 지정곡은 무조건 북한 노래이고, 자유곡으로 외국곡을 연주할 수 있다.  교육이나 연주에 있어 많은 부분을 북한 작품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레퍼토리가 필요할 텐데. 북한에는 교향곡·협주곡·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곡이 구축되어 있고, 또 이것을 각 연령대의 수준에 맞게 편곡해 선보이고 있다. 같은 멜로디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편곡되고 변화한다. 그 양이 얼마나 방대하고 다양한지 모른다. 이렇게 양적으로 불어나던 것이 이제는 질적으로도 수준이 높아졌다.  이토록 창작 음악에 열성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80년대 후반 동유럽이 쇠퇴하면서 북한의 음악교육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유학이 빈번했던 시절에는 유럽 음악도 많이 공부했는데, 이후에는 외국 음악을 참고는 하되 우리 음악을 더 살리는 데 목적을 두었다.이러한 변화에 정치적인 영향도 있는지.  김정일이 중앙당에 들어갔을 때 첫 임무가 영화·음악·미술을 활용한 선정·선동이었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 시기에 탄생한 북한 가극 ‘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을 통해 북한이 다른 서양 국가보다 더 뛰어나다고 선전했고, 직접 영화예술론·음악예술론·미술론·무용론 등의 책을 썼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정권을 잡으면서 문화예술 부분과 예술가들이 엄청난 신분 상승을 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활동 외에 개인적인 활동이 부각된 사람들은 가차 없이 퇴출당하기도 했다.

우리 음악을 살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었나? 
서양 악곡 형식에 북한 노래를 입혀 작곡하는 거다. 예를 들어 교향곡 ‘꽃파는 처녀’(1985)는 전체 4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인데, 가극 ‘꽃파는 처녀’(작곡 김연규·강기창)의 멜로디를 차용해 만들었다. 각 악장에 4개의 주제가 하나씩 들어있다. 북한에서는 교원이 되면 전공과 상관없이 무조건 곡을 써야 한다. 이것이 실적으로 쌓인다.

그렇다면 모든 공연에서 북한의 곡만 연주되나?
대학발표회나 ‘자질 향상’이라 부르는 전문가들의 공연에서는 서양 고전음악도 연주하지만, 일반 대중이 보는 음악회에서는 북한 작품만 연주된다.

공연에 대한 관객 제한은 없는지도 궁금하다.  
모란봉악단이나 청봉악단 같은 중앙단 관리 대상 단체는 오로지 정치 성향을 띠는 국가적 행사만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단 산하 악단의 공연은 일반 대중이 볼 수 없다. 그 아래로 문화성 산하 1급 단체들로는 만수예술단, 피바다 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인민보안성 협주단 등이 있다. 단체마다 성격도 뚜렷하고 할 수 있는 곡도 다르다. 예를 들어 만수예술단의 대표작인 ‘꽃파는 처녀’는 오직 이 단체에서만 공연하고,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오직 교향악만 연주한다. 역할이 모두 분리되어 있다. 악단에 들어가기 위한 오디션이 있는가. 음악대학이 하나뿐이라 모두 서로의 실력을 알고 있어 따로 오디션이 필요 없다. 중앙당 음악 단체에 필요한 사람들은 문화성 산하 예술단에서 차출한다. 일단 차출되면 무조건 가야하고, 일반 사람들과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된다. 좋은 집을 내주고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은 비공개로 외국에 보내주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앞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피아노 연주와 함께 지휘 활동도 하고 싶다. 탈북민을 위한 공연도 하고 싶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동으로 조금씩 이뤄가고 싶다.

 글 이미라 기자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