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공연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월 11일 9:00 오전

EDITORS’S NOTE

기자 공연수첩

 

 

노부스 콰르텟

기분 좋은 긴장감!

노부스 콰르텟 리사이틀

12월 2일 용인포은아트홀

 

2020년 12월, 노부스 콰르텟의 첼리스트가 원년 멤버 문웅휘에서 이원해로 변경됐다. 앞선 11월, 국내 소속사와 문웅휘는 SNS를 통해 단원 교체 소식을 전했다. 문웅휘는 13년간 동고동락한 콰르텟을 떠나며 느낀 단편적인 소회를 적었다. 13년간 노부스 콰르텟이 쌓아온 존재감은 단순한 성과가 아니다. 워낙 실내악 역사가 짧은 한국이기에 귀감으로 삼을만한 선배 악단은 부재했다.

노부스 콰르텟을 향한 음악계의 기대 어린 눈빛을, 단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힘겹게 쌓아온 것들을 쉽게 놓지 않으려 이들은 청춘의 시간을 모조리 콰르텟에 쏟았다. 2018년 비올리스트 이승원이 김규현으로 교체된 것에 이어 첼리스트까지 바뀐 지금, 노부스 콰르텟의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 쏟아졌다. 고백하자면, 기자 역시 의심의 눈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이번 공연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앞날을 응원해 주고 싶은 연주였다. 용인포은아트홀에서 노부스 콰르텟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공연을 올렸다. 베토벤이 남긴 16개의 현악 4중주는 초기·중기·후기로 확연히 나뉜다. 초기(1798~1800)에 쓰인 여섯 곡, 중기(1806~1810)의 다섯 곡, 후기(1822~1826)의 다섯 곡은 작곡가의 정신적 흐름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이번 공연에서 노부스 콰르텟은 각 시기별 대표곡(5·11·12번)을 선별했다. 베토벤의 전기를 보여주려는 비장함이 느껴지는 선곡이었다.

제1바이올린을 번갈아 연주한 김재영과 김영욱에겐 역시나 원숙미가 가득했다.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활약 덕에 5번은 모차르트가 떠오를 만큼 명랑했고, 12번은 중후하고 강렬했다. 반면 비올리스트 김규현과 첼리스트 이원해는 다소 긴장돼 보였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익숙함이 주는 함정이 있다. 예술에 있어서 숙련된 연주자들이 과연 완벽할까? 익숙함이 때로는 형식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지 않은가. 이번 무대에서는 팽팽한 기운이 감돌아 깨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원년 멤버와 신입 멤버 사이에 흐르던 다층적인 감정,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모습은, 노부스 콰르텟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 원동력이 될 듯하다. 응집력이 더해진 이들의 사운드를 얼른 만나보고 싶다. 노부스 콰르텟은 분명 잘 해낼 것이다. 지난 시간 그래왔듯이.

콰르텟의 운명은 늘 위태롭다. 그래서 지속과 존속이 늘 큰 문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토대를 잘 갖춘 콰르텟은 젊은 음악가들이 거쳐 가며 성장을 도모하는 음악적 인큐베이터가 되어줄 수도 있다. 훗날 ‘노부스 출신’이라는 이력이 그들의 젊은 날의 음악 세계를 대변해줄 것이다. 글 장혜선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 ©yunikim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묵념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 정기연주회

12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조마조마했다. 공연 하루 전날 방역단계가 2.5단계로 강화되면서 공연 취소 공지가 줄을 잇고 있었다.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의 두 번째 정기연주회도 그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많은 이의 격려와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예술의전당도 발 벗고 나섰다. 대관료 부담을 덜어주고 이곳에 다시 음악이 흐르도록 했다. 네 명의 연주자는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공연을 전석 초대로 전환하고, 음악에 목마른 누구든 공연장에 함께 할 수 있게 했다. ‘두 자리 띄어 앉기’를 하고도 객석은 꽤 들어찬 느낌이었다.

2019년 창단한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는 첼리스트 박진영을 예술감독으로, 매해 세계 각국의 연주자와 폭넓은 실내악 레퍼토리를 소개한다. 이번 연주회에는 박진영, 데이비드 맥캐롤(바이올린), 채재일(클라리넷), 김태형(피아노)이 힘을 모았다. 이들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 ‘메멘토 모리’를 연주회의 뜻으로 삼았다. 그리고 상실과 삶의 끝을 마주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택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이 공연의 문을 열었다. 마음이 에는 선율들 사이에서도, 맥캐롤은 짧게 지속되는 D장조 발전부에 힘을 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잠깐의 희망, 그를 향한 갈망이 느껴졌다. 이어 김태형이 브람스의 작품들로 무대를 채웠다. 특히 브람스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 ‘오, 세상이여. 당신을 떠나야 하네’는 2분가량의 짧은 시간에도, 기교와 꾸밈없이 담담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큰 울림을 전했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서는 채재일의 섬세한 연주가 빛을 발했다. 객석의 몰입도가 한껏 높아진 순간, 그들이 두 시간 동안의 공연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비로소 들려왔다.

이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방법론에 골몰해 있는 사이 우리는 많은 걸 잃고, 잊었다. 이들의 음악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 상실을 곱씹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 감각마저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내면에 희미해져 가던 불씨가 다시 일었다. 무대를 마주하고 음악을 듣는 시간, 그 의미를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글 박찬미

 

 

작은 아씨들 ©서울시뮤지컬단

연말, 따뜻한 안식처

서울시뮤지컬단 작은 아씨들

11월 24일~12월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고전 각색의 과제는 원작 시대상을 오늘날 감수성에 맞추는 것이다. 알코트의 자전 소설 ‘작은 아씨들’은 자주적인 여성을 그린다. 원작을 읽다 보면 19세기와 21세기 여성의 언어가 이리도 닮아있다는 게 놀랍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원작의 메시지는 각색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겠다.

다만 각색에는 여러 과제가 따른다. 각색가들은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공연에 맞게 압축해야만 한다. 자연스레 지난해 개봉한 영화 ‘작은 아씨들’이 떠올랐다.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호평을 얻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두 시기를 자유롭게 뒤섞어 상상의 즐거움을 준다. 반면 뮤지컬에 참여한 한아름 작가는 극중인물인 ‘조(Jo)’의 내레이션으로 사건을 속도감 있게 전개시켰다. 플롯은 다르지만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려는 공통점이 보였다.

영화와 뮤지컬의 공통점은 캐릭터 설정에도 있다. 두 버전 모두 네 자매의 독특한 개성을 다뤘다. 특히 눈에 띄는 역할은 막내 ‘에이미’이다. 원작에서는 ‘조’의 존재감이 압도적인데, 거윅의 영화는 에이미의 비중을 크게 둬 이목을 끌었다. 뮤지컬에서도 에이미와 조를 비슷한 비중으로 두어 주체적으로 성장한 여성의 모습에 힘을 줬다.

작곡·작사를 맡은 박천휘는 다양한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28개의 넘버는 캐릭터에 맞춰 장르를 다르게 설정했다. 첫째 메그의 허영심은 왈츠로, 둘째 베스의 수줍음은 차분한 클래식 음악으로 표현했다. 부푼 꿈을 지닌 조와 에이미는 대중음악을 써서 150년 전의 이야기에도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뮤지컬은 ‘집’이 주는 힘이 강했다. 무대는 작은 다락방이 있는 네 자매의 집이 중심이다. 이후 꿈을 찾아 떠난 뉴욕과 파리를 지나 다시금 집으로 돌아온다. 네 자매는 서로에게 다정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거센 성장통을 겪으며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집이란 공간은 온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한가운데에도 가족 단위 관객이 유독 많이 보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표하는 훈훈한 ‘가족 뮤지컬’이 될 듯하다. 글 장혜선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 ©국립극단

짐작보다 가벼운 블랙 코미디

국립극단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

12월 3일~7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주인공 형진은 시민단체 부대표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쳤지만, 50대의 그에게 남은 것은 회의감이다. 그때와 달리 현실은 더욱 모호해지고, 이상은 가벼워진 듯하다. 젊은 세대의 개인화되고 유희화된 시민운동을 형진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때는 함께 구호를 외쳤으나, 번듯한 사회구성원이 된 대학 동기들을 보며 자책한다. 그런 그에게 대학 시절 독재정권에 희생된, 친구 윤기가 홀연히 찾아온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위로해줬던 김수영의 시를 읊어주기 위해.

유혜율 작가의 연극 데뷔작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는 국립극단 상시투고제도 ‘희곡우체통’을 통해 발굴됐다. 2019년 접수된 186편 중 낭독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공연화됐다. 희곡우체통 우체국장 김명화는 “시대의 흐름을 담백하게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각과 언어가 신뢰를 주었다”고 평했다.

김수영(1921~1968)의 ‘사랑의 변주곡’(1967)을 포함해 ‘그 방을 생각하며’(1960), ‘봄밤’(1957), ‘달나라의 장난’(1959)까지 총 4편의 시가 삽입됐다. 한국전쟁 이후 닭을 기르며 창작에 집중한 시기에 쓴 작품이다. 유 작가는 “생활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외로움과 비애를, 끝까지 버릴 수 없는 마음을, 마지막까지 반항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치열함을 모두 김수영의 언어에서 빌려왔다”고 밝혔다. 배우들은 독창처럼 외우던 시를, 대화처럼 주고받는다. 막바지에 이르러 시 ‘사랑의 변주곡’은 광장에서 서로를 스치는, 저마다 짐을 지고 사는 익명의 개개인을 아우르는 언어가 된다.

동화 작가 출신답게 인간사의 복잡함을 단순명쾌하게 드러낸 우화 같은 대사의 쓰임이 좋았다. 특히 세 친구의 술집 회동 장면과 광장의 보수 청년 캐릭터는 짧은 분량의 대사에 인간상을 집약해 보여주었다. 연출은 제55회 동아연극상을 받은 이은준이 맡았다. 극적인 사건 없이 흘러가는 작품에 디테일을 더했다. 드랙퀸 등 형진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 존재는 환상적으로, 죽은 윤기가 찾아온 상상은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형진과 윤기 두 사람의 교감에 집중했던 대본은 연극화되며 이 시대의 인간군상을 퍼포먼스처럼, 가벼운 블랙 코미디처럼 펼쳐낸다. 그 과정에서 김수영의 시는 연극 속 대사처럼 “가볍게” “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연극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지도 몰라”라는 말로 형진을 위로한다. 그렇다면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한 연극으로 남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 박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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