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연주자 이태경, 두 현의 편안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월 18일 9:00 오전

NEW RECORD
해금 연주자 이태경

두 현의 편안함

해금 연주자 이태경

2집 음반 ‘해금, 가까이 듣기’를 우리 삶에 가까이 놓아보다

 2019년에 발매한 ‘위대한 사랑(Great Love)’이 첫 음반이다. 해금으로 노래한 11곡 성가(聖歌)가 담겨 있다. 연주자의 신앙심이 반영된 선곡이다. 하지만 종교적 내용을 떼놓고들어보면 해금은 편안한 노래를 부를 뿐이다. 일상의 공기에 흘려보내고 싶은 BGM의 감수성이다. 
국악기로, 국악으로 일상의 감각과 감수성을 건드리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러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국악이 현대인의 감성과 떨어져 있다는 ‘걱정’, 하지만 그 간극은 음악가의 시도와 노력에 따라 좁혀질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이 익혀온 전통음악 어법을 활용하는 ‘실천’이 이들을 움직이게 한다. 이태경도 그러한 음악가 중한 명이다. 자신의 해금 소리가 여러 사람의 일상에 소중하게, 아니, 보다 편안하게 놓이길바란다. 

기악곡의 꽃 ‘산조’의 향 
 이태경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다. 판소리의 고장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추억 속 남원은
“상여 지고 노래하며 밭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무슨 날이 되면 풍물패를 이끌고 안녕을 빌어주러 집 앞에 왔던 사람들, 노래하며 모내기하던 동네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국악기를 처음 잡은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집에 선물로 들어온 산조 가야금이었다. 이후 전주로 이사하면서 전북도립국악원에서 가야금과 판소리를 배웠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곳은 전주예술고등학교였다. 전공은 가야금이었다. 하지만 가야금에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금에 눈길이 갔다. 그 첫 만남에 대해 그는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것 같았고, 운명 같았다”라며, “마치 해금을 만나기 위해 국악의 길을 돌고 돌아온 것 같았다”라고 말한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숙명여대, 단국대학교에서 배움의 길을 이어나갔다.
이태경은 한 해마다 하나의 음반을 내놓는 ‘1년 1음반’을 계획 중이다. 1집 ‘위대한 사랑’이 2019년의 산물이라면, 이번 음반은 그 두 번째 약속을 지킨 2020년의 결과물이다.  
이번 음반의 두 축은 산조와 민요가 잡고 있다. “산조는 전통음악 가운데 기악 독주곡의 ‘꽃’이고, 민요는 여럿이 주고받으며 부르는 민중의 노래”라는 점에서 두 음악을 넣었다. 
수록된 지영희류 해금 산조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를 기본 뼈대로 하여 흐른다. 하지만 그 뼈대 위로 붙는 살이 남다르다. 장고 대신 피아노, 기타, 더블베이스, 드럼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해금 소리는 날카롭다. ‘깽깽이’라는 된소리 어감의 악기답게 그 소리는 튄다. 하지만 이태경의 이번 음반을 들어보면 알게 된다. 이질적인 소리들 가운데, 해금은 여러 악기를 중재하고 보듬고 부드럽게 섞이며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 속에서 이태경의 해금 소리는 편안하다. 듣는 이의 귓가로 순치되어 날아든다. 해금은 “많은 것을 품고 있는 큰 바다”와도 같다고 말하는 그만의 지론(持論)이 해금 소리로 들려오는 순간이다. “속이 보이지않는 깊은 물과도 같다”는 해금은 서양악기들과 함께 아늑한 해저의 세계를 유영하기도 한다. 악기들 사이로, 그리고 산조와 서양음악이라는 양분화된 음악 사이로 “이질감 없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그러면서도 지영희류 해금산조만의 화사함과 경쾌함이 돋보인다. 
굿거리 대목도 인상적이다. 이 대목은 근대에 태어난 해금 산조 중에 유일하게 지영희류 해금 산조에만 있는 장단이다. 유일무이한 이 대목을 이태경은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더블베이스가 현을 퉁기고, 드럼이 짚어주는 맥박 속에서 해금이 매끄럽게 유영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대목에서 더블베이스는 서양악기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장고의 가면을 쓴다. 더블베이스가 산조 반주의 새로운 악기(?)로 등단하는 순간이다. 

이태경 2집 ‘산조와 민요-해금, 가까이 듣기’
해금 SOLO를 위한 ‘한량’(1악장 유유자적·2악장 일장춘몽·3악장 흥청망청)/
군밤타령/방아타령/꼭두각시/시고산타령/지영희류 해금산조/아리랑연곡

아픔의 빗장을 해금(解禁)하는, 해금
2000년대부터 ‘해금 시대’가 열린 것은 확실하다. 지금도 해금은 여러 국악기 중에 가장 많이 지목되고 선택된다. 자신만의 시대를 잘 이끌고 걸어온 해금은 지금, 더 많은 음악문화와 공존하고 제 몸을 섞는다. 해금이 갈 수 있는 길도 많아졌고, 연주자의 선택권도 넓어졌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이태경은 해금이 선사하는 ‘편안한 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해금을 든 ‘편안한 여인’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길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과 바람이이번 음반을 채우고 있다.   
‘한량’ ‘방아타령’ ‘아리랑연곡’은 민요의 어법을 재구성한 곡들이다. 기타나 피아노의 편안한 아르페지오가 서문을 열고 해금과 교감한다. 해금의 소리는 튀지 않는다. 여러 악기들을 부력(浮力) 삼아 제 목소리만 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순열’된 소리를 위해 연주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이태경은 이번 음반 이후에도 여러 악기를 징검다리를 삼아 전통음악을 현대로 당겨오는 일을계속할 것이다. 편안한 음악 만들기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이번 음반이 나온 때가 시대의 아픔(코로나)이 배어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다음의 작업도 기대된다.
“이렇게 코로나의 시대가 올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유년기에 들었던 상엿소리, 안녕을 빌어주던 풍물 소리, 할머니가 불러 주시던 민요나 자장가 등 노래가 함께 하던 일상의 기억과 소중함을 해금으로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저와 아이가 함께 편하게 듣고 부를 수 있는 음악을 기획하고해금으로 그 노래들을 불러볼 예정입니다.”
이태경에게 해금은 따듯한 물 같은 존재이다. “다른 악기나 장르와 만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소리를 담아주고 품어주며 빛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금은 큰 바다, 속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속과도 같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해금 소리는 곧 모성(母性/母聲)인 셈이다. 세상에 많은 소리를 품어주는 어미(母)의 소리(聲)인 것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프로덕션 고금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