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무티와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로린 마젤과 함께 2월 6일과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오른다. 1월 25일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홍콩·베이징·상하이·톈진 등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다.
시카고 심포니는 이번 아시아 투어로 여섯 개 도시에서 여덟 차례 연주한다. 프로그램은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톈진·상하이),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 브람스의 교향곡 2번(베이징) 등이다. 홍콩과 서울에서는 두 프로그램을 이틀에 걸쳐 연주한다.
원래 예고됐던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모음곡 ‘요정의 입맞춤’ 중 디베르티멘토와 부소니의 ‘투란도트 모음곡’ 대신 드보르자크 교향곡 5번으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로 변경됐다. 스트라빈스키와 부소니는 무티가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손꼽는 작곡가들이다. 부소니는 이탈리아 출신이고 스트라빈스키도 이탈리아와 인연이 깊다. 둘 다 무티가 발굴해낸 보석 같은 작품이지만 국내 음악 팬들에겐 아직 낯선 작품이어서 기대를 모았던 곡들이다. 무티는 ‘투란도트 모음곡’을 1993년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로 녹음했으며 1996년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당시 이 곡을 들려준 바 있다.
초반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5번으로 바뀐 것은 무티의 건강 악화 때문이다. 시카고 심포니의 올해 첫 정기 연주회를 위해 1월 7일 시카고에 도착한 무티는 도착 직후 악성 독감 증세를 보여 이튿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베토벤·모차르트·브람스로 꾸며진 1월 10일부터 19일까지의 정기 연주회는 무티 대신 에도 데 바르트가 지휘봉을 잡았다. 아시아 투어 직전에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가 부소니와 스트라빈스키를 함께 연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티는 연주 직전 타이베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태는 이쯤에서 수습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악성 독감 치료를 위해 입원한 무티는 의사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당장 탈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독감부터 완치된 다음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의 농익은 화음과 더불어 참신한 레퍼토리를 기대했던 음악 팬들로서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프로그램에 이어 지휘자까지 뮌헨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로린 마젤로 바뀌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홍콩·베이징·상하이·톈진에서 시카고 심포니와 마젤이 짧은 기간이나마 몇 차례 연주를 한 다음 서울에 온다는 점이다(아시아 투어의 막이 오르는 타이베이 공연은 마젤의 뉴욕 필하모닉 지휘 일정 때문에 다른 지휘자를 물색 중이다). 4월 21·22일 마젤이 뮌헨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연주할 레퍼토리와 겹치는 곡이 없다는 점도 다행이다. 무티는 올해 72세, 마젤은 83세다. 하지만 마젤은 평소 테니스와 수영으로 다져온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로린 마젤이 시카고 심포니를 처음 지휘한 것은 1973년 2월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객원 지휘를 하면서 브람스·베를리오즈·슈만·말러·R. 슈트라우스·프로코피예프·스트라빈스키·시벨리우스를 연주했다.
시카고 심포니는 이번이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이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미국 교향악단의 ‘빅 5’ 중 뉴욕 필하모닉·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한국 땅을 밟았지만, 보스턴 심포니와 시카고 심포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서울 무대에 서지 않았다. 이번 공연으로 ‘빅 5’ 중 보스턴 심포니만이 남았다.
이번 공연의 특징은 협연자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무티가 9년 전 라 스칼라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도 그랬다). 미국에서 뉴욕 필·보스턴 심포니에 이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교향악단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이다. 시카고 심포니는 1891년 지휘자 시어도어 토머스가 주축이 되어 창단된 교향악단으로 미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음반을 남겼다. 1916년 5월 1~2일 뉴욕 에올리언 홀에서 녹음한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 비제의 ‘카르멘’ 춤곡, 바그너의 ‘로엔그린’ 전주곡, 그리그와 차이콥스키의 소품이 수록된 음반은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출시됐다. 시카고 심포니는 프리츠 라이너·라파엘 쿠벨리크·장 마르티농·게오르그 숄티·베르나르트 하이팅크·다니엘 바렌보임 등 전설적인 거장들이 음악감독 또는 수석지휘자로 거쳐 갔다. 2008년 런던에서 발행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음반잡지 ‘그라모폰’이 ‘LA타임스’ ‘뉴요커’ ‘르 몽드’ ‘디 프레스’ ‘데일리 텔리그라프’ 등 주요 국가의 유력 일간지 소속 음악평론가들의 투표로 선정한 ‘세계 20대 교향악단’에서 미국 교향악단으로는 가장 높은 5위에 올랐다. 2007년부터는 자체 레이블 CSO 리사운드를 통해 베르디의 ‘레퀴엠’(지휘 리카르도 무티),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와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말러 교향곡 1·2·3·6번,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지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와 ‘3악장의 교향곡’(지휘 피에르 불레즈) 등의 음반을 냈다. 시카고 심포니 단원 중 30여 명은 시카고 시빅 오케스트라 출신이다. 시카고 심포니 소속의 청소년 교향악단인 셈인데 시카고 심포니 단원들에게 매주 한 시간씩 개인 레슨을 받는 대신 출연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리카르도 무티는 시카고 심포니를 가리켜 테크닉 면에서 “완벽한 기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음악감독을 거쳐 간 다니엘 바렌보임은 “시카고 심포니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더 이상 나올 게 없는데도 지휘자로 하여금 무언가를 찾아 전해주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