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일병 구하기
90대가 된 내가 기고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내 생애 또 한 번의 모차르트 기념일을 마주하거나 관련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하다. 야호! 기념일 혹은 모차르트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존재는 이미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에 있으며, 둘 중 어느 것도 사라질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이들 각각은 대중의 취향을 왜곡시키는 힘이 있다. 이들이 결합하면 세계의 문화 가치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하다. 나치는, 모차르트가 죽어 빈에서 이름 없이 매장된 후로부터 150년이 흐른 1941년 축제를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한 사실(모차르트와 ‘그를 기념함’이 만났을 때의 파급력)을 나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요제프 괴벨스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변치 않을 명확한 진실인 독일인의 우수함(우리 모두 그 변치 않는 명확성의 결과를 기억한다)을 구현했다 주장하면서 “훌륭한 아들들을 잊은 나라는 그들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라고 외쳤다.
에릭 레비가 그의 저서 ‘모차르트와 나치’(Yale, 2010)에서 언급했듯이, 1941년의 축제는 모차르트의 아리아인적 우월성과 그 문화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려는 관점 하에 독일제국에 의해 조직되고 재정이 지원됐다. 독일인이 지배하는 땅에서 모차르트는 끔찍하고 피할 수 없는 음악의 소리였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해였던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인 1956년, 마치 무결점 대자의 베들레헴이 그러하듯 어떠한 정치적 논쟁 없이, 작곡가가 태어난 잘츠부르크의 부흥이 목격됐다. 이번에는 모차르트가 나치 선전에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연합 매체에 의해 공포된 것이다. 모차르트의 모든 음들이 형언할 수 없는 천상의 완벽함이라고 주장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부터 브루노 발터에 이르기까지, 모차르트에 관한 가장 훌륭한 전문가들과 해석자들에 의해 추방된 사람 또한 모차르트였다. 즉 모세에서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모차르트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음악은 장엄함과 신성함 사이에 놓여 있다고 믿었던 나를 동요시킨, 내 소년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성난 독일어 자음들이 아직도 들려온다. 나는 그때도 저항했고, 여전히 저항한다. 1956년 정화작업이 한창일 때, 잘츠부르크의 두 번째 아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축제를 장악하고 부와 결부시켰다. 카라얀은 그와 동료들을 위해 고전음악을 고수익 상품으로, 모차르트를 매표소에서 파는 상품으로, 잘츠부르크를 그의 기업을 위한 광고판으로 탈바꿈시켰다.
카라얀은 모차르트의 다음 기념해(서거 200주년)를 2년 앞둔 1989년 사망했으나, 그의 그림자는 마치 트로이의 헬레네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1991년은 세계적으로 모차르트의 열풍이 지속됐다. 한 레코드 레이블은 ‘전집 수집’이라는 따분한 유행과 음악 상업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견인하는 CD 46장짜리 모차르트 전집을 발매했다.
과도했던 모차르트의 해 끝에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릴렉스, 릴렉스, 릴렉스’라며 해로운 최면술사처럼 달콤한 밀어를 흘리는, 영국을 근거지로 한 방송 프랜차이즈 클래식 FM이 탄생했다. 우리의 뇌를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마비시키는 마취제로서 모차르트는 다시 선보였다.
프랑스의 귀 전문의 알프레드 A. 토마티는 모차르트 음악을 태아에게 들려주면 아이를 아인슈타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1991년, 귀가 얇은 정치인들은 그의 가설을 받아들였다. 책들이 출판되고 영화가 만들어졌다. ‘모차르트 이펙트’는 등록 상표가 됐다. 다행히도, 최근 엄청난 양의 연구는 특정 작곡가가 신동을 만드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돌팔이 의사의 이론에 반박한다. 그래도 여전히 몇 백만의 인구가 이 치명적이고 근거 없는 믿음에 매달리고 있다.
나의 마지막 모차르트 기념해는 (탄생 250주년인) 2006년 1월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에 의해 시작됐다. 습작부터 유년기의 작품까지 포함한 모차르트 오페라 22편이 잘츠부르크의 여름을 기쁘게 했다. 국회 도서관은 모차르트 자료들로 풍부한 지하 금고를 열었다. 유럽연합은 모차르트 주화를 주조했다. 그해 모차르트 관련 브랜드 판매액은 50억 달러(한화 5조3천억 원)에 달했다. 그 음악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이 보잘것없었다.
이러한 과잉 흥분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모차르트는 음악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퇴행적인 영향력이라는 피에르 불레즈의 구호를 나는 강력히 지지했다. 음악사에서 발명가ㆍ기술자는 바흐ㆍ하이든ㆍ베토벤ㆍ바그너ㆍ말러ㆍ쇤베르크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흥이었다. 1970년대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이었던 불레즈는 연주 프로그램에서 모차르트를 하이든으로 대체했다. 그 전범이 여전히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누군가가 냉정한 ‘돈 조반니’로부터 쇤베르크 12음렬의 예견을 찾아냈다 할지라도, 모차르트는 어떠한 음악적 양식도 이전의 테두리를 넘어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는 지나칠 정도의 순응주의자였으며, 보수적인 작곡가였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모차르트는 누군가가 보편적인 인간 문명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두 타(two doszen)의 작품들로 일반적인 문화 – 작은 야상곡부터 그가 살아서 끝내지 못한 레퀴엠의 마지막 음까지 – 를 비축하는 데 기여했다. 630개 중 두 타이지만, 하이든보다는 한 타 많으며, 관객들에게 순간적인 따뜻함과 수용을 일으키는 작품들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곡가이자 방송인 앤드루 포드는 이 관점을 자신의 새로운 에세이 콜렉션 ‘Try Whistling This’(Black, Inc.)에서 강조한다. 모차르트가 몇몇 작곡가들만이 달성한 ‘듣는 이를 집중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고 기술한다. 한편 작가는 우리가 일단 모차르트 음악을 ‘신에게서 온 만병통치의 소리’라고 믿기 시작하면, 듣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라고 전한다.
금욕적인 불레즈조차 약하게 만들어 결국 1980년대 그가 모차르트를 지휘하게 만든, 밤낮으로 요란한 모차르트 선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숭고한 가치의 음악에 투자하거나, 모차르트가 출산의 고통을 덜어주고 실험실 쥐들의 뇌세포를 자극한다고 주장하면(이 효과에 대한 논문들이 있다), 음악은 음악이기를 중단한 채 실업률 통계와 축구 경기 결과와 같은 따분한 세속사의 한 부분이 된다. 머지않아 모차르트가 암을 고칠 수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될 것이다.
나의 직업이 지닌 도전은 그러한 따분한 오해에서 음악을 구출하고, 일상의 지루함에서 우리를 구하는 음악의 재능을 복원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정치와 산업이라는 테이블의 핀볼로 만들 다음 기념일까지, 우리가 모차르트를 대중매체와 시장경제에서 되찾을 시간은 채 30년도 남지 않았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지금 모차르트를 구해야 한다.
번역 이윤희(인디애나 음대 박사)
Saving Private Mozart
It dawned on me with great relief the other day that, unless I’m still writing strong in my 90s, I will never have to observe or partake of another Mozart anniversary so long as I live. Yippee!
I say that not to disparage anniversaries or, indeed, Mozart. Both have a recognised stall in the marketplace and neither is likely ever to be dislodged. However, each has the power to distort mass taste. Put together, they can – and do – wreak untold harm on the world’s cultural values.
The Nazis understood this all too well when, in 1941, they launched a jamboree in the 150th year after the Mozart’s death and his nameless burial in Vienna. ‘A nation that forgets its great sons does not deserve to own them,’ cried Josef Goebbels, claiming that Mozart’s music embodied the supreme German quality of relentless clarity (and we all remember the consequences of relentless clarity).
The 1941 fest was, as Erik Levi points out in his book Mozart and the Nazis (Yale, 2010), organised and financed by the Reich with a view to establishing Mozart’s Aryan supremacy and their own cultural legitimacy. In the lands under German occupation, Mozart was the imposed sound of music, odious and ineluctable.
The next significant date, the 1956 bicentenary of his birth, saw the rehabilitation of the composer’s native Salzburg as the Bethlehem of an immaculate Godchild, free of political contention. This was, to a degree, the Mozart that had been promulgated by wartime Allied media as a counterweight to Nazi propaganda. It was also the Mozart borne into exile by his greatest experts and interpreters, from Alfred Einstein to Bruno Walter, men who preached that every note of Mozart’s was an ineffable, celestial perfection: from Moses to Mozart, there was none like Mozart
I still hear furrrry German consonants leaking from my boyhood wireless, enjoining me to believe in a music midway between sublimity and divinity. I resisted then and resist it still. While the 1956 purification was in full sway, a second son of Salzburg, Herbert von Karajan, seized control of the festival and yoked it to mammon. Karajan turned classical music into a cash cow for himself and his partners, Mozart into a commodity for sale by the box and Salzburg into an advertising hoarding for his enterprises.
Karajan died in 1989, two years short of the next Mozart anniversary, but his shadow fell upon it like Helen’s over Troy. The year 1991 was wall-to-wall Mozart worldwide. A record label issued Mozart entire on 46 CDs, fostering a nerdish fad for completism and a quantum leap in the commodification of music.
Out of the year’s Mozart glut was born Classic FM, a broadcasting franchise whose UK source, trickles sweet nothings into our ears while exhorting us, like a malign hypnotist, to relax, relax, relax. Mozart was recast on Classic FM as the ultimate anaesthetic, numbing our brains from cradle to grave.
A French ear doctor, Alfred A Tomatis, proposed that playing Mozart to the unborn would turn foetus into Einstein. In 1991 credulous politicians swallowed his hypothesis. Books were written and films made. The Mozart Effect ® became a registered brand. Mercifully, a welter of research in recent years has refuted beyond resurrection the quack Tomatis theory that one composer, and one alone, held the key to infant genius. Millions, nonetheless, cling to the pernicious myth.
My final Mozart anniversary was opened by the Austrian President in January 2006. All 22 Mozart operas, ephemera and juvenilia included, regaled the Salzburg summer. The Library of Congress flung open its vaults with a flourish of Mozartiana. The European Union minted a Mozart coin. The value of Mozart-branded sales that year was estimated at $5 billion. The musical value was, needless to add, negligible.
In an attempt to make sense of the hysteria, I took up the cudgels for the Pierre Boulez slogan that Mozart was a regressive force who added nothing to the development of music. The inventors and energisers in music history were Bach, Haydn, Beethoven, Wagner, Mahler and Schoenberg; all else was entertainment. Boulez, as music director of the New York Philharmonic in the 1970s, replaced Mozart with Haydn on its programmes.
His case still holds, up to a point. Although some find prescience in a Schoenbergian 12-note row at the cold heart of Don Giovanni, Mozart pushed no musical form forward beyond former borders. He was conformist to a fault, a conservative composer. On the plus side, he contributed two dozen works to what one might term the general human civilisation, the common stock of culture – from a little night music to the last notes of a Requiem he never lived to finish. That’s two dozen out of 630 works, but it’s a dozen more than Haydn and it is a rush of works that arouse instant warmth and acceptance from an audience.
Andrew Ford, the Australian composer and broadcaster, reinforces this point in a new collection of essays, titled Try Whistling This (Black, Inc.). Mozart, he writes, ‘knows how to keep us close to the edge of our seats’, something few composers ever achieve. Ford goes on to acknowledge, however, that once we start to believe that his music is ‘a sonic panacea from God, we might well lose our ability to listen at all.’
And therein lies the danger of the Mozart propaganda that is blared at us day and night, weakening even the ascetic Boulez, who has taken up conducting Mozart in his 80s. Once we invest music with supernal qualities, once we maintain (there are learned papers to this effect) that Mozart can ease childbirth pains and stimulate brain cells in laboratory rats, it ceases to be music at all and becomes a part of humdrum mundanity, along with unemployment statistics and the football results. Sooner or later, you will read that Mozart can cure cancer.
The challenge for my working life is to rescue music from such tedious misconceptions and restore its gift to elevate us above the irksomeness of everyday life. We have just under three decades left to reclaim Mozart from mass media and market economies before the next anniversary reduces his music to a pinball on the political-industrial table. There’s no time to lose. Save Mozart Now. 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