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트 오이스트라흐 1957년 중국 공연 실황

거장의 성실한 모습 담은 19일간의 기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3월 1일 12:00 오전

1957년 10월 4일, 러시아 바이올린 거장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10월 6일에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얌폴스키와 함께 한 첫 공연부터 22일의 마지막 리사이틀에 이르기까지, 오이스트라흐의 중국 여정이 네 장의 음반에 담겼다. 오이스트라흐는 19일간의 중국 체류 기간 동안 베이징 인민극장과 상하이 대극장 등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등 잘 알려진 바이올린뿐 아니라 프로코피예프의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라이트와 불가리아의 작곡가 블라디게로프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연주하며 중국 청중을 매료시켰다. “깊은 감동을 받은 청중이 계속 박수를 치는 바람에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는 앙코르로 다섯 곡이나 연주했으며, 음악회는 예정보다 40분이나 늦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은 여전히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오이스트라흐의 공연이 얼마나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음반에는 청중의 박수와 환호 소리를 담겨 있지 않지만, 오이스트라흐의 훌륭한 연주와 그의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의 집중력이 느껴진다.
어떤 무대에서나 결코 퇴색하는 법이 없는 오이스트라흐의 최고급 바이올린 톤은 이 음반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는 중국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협주곡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중앙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에서도 오이스트라흐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클뤼탕스와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고상한 톤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거친 음색과 위태로운 앙상블이 때때로 그의 연주에 방해되기는 하지만 협주곡 연주에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잘 맞춰주는 오이스트라흐의 음악적 배려를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롭다. 오케스트라가 한 박자 느려지더라도 오히려 오케스트라 연주에 박자를 맞추는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에서 그의 따스한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중국 청중에 대한 그의 배려는 공연 프로그램에도 엿보인다. 이 음반에는 수록돼 있지 않지만 오이스트라흐는 중국 공연 당시 중국 작곡가 마쓰충(馬思聰)의 론도 1번도 포함시켰는데, 당시 언론은 오이스트라흐가 이 곡을 처음 연주해보는 까닭에 다른 어떤 곡보다도 연습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당시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로 존경받고 있었음에도 어떤 곡이라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전문 연주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오이스트라흐의 프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10월의 베이징은 날씨가 추운 편이었음에도 오이스트라흐는 그의 등이 땀으로 젖을 만큼 열심히 연습했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한시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는 그의 성실함은 이 음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피아니스트 얌폴스키와 함께 연주한 러시아 레퍼토리와 브람스의 소나타 등에서 더욱 빛난다. 차이콥스키의 ‘명상곡’과 ‘왈츠 스케르초’ 같은 짧은 소품에서 그와 같은 고귀한 아름다움과 러시아적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을까! 활을 현에 밀착해 조금의 빈틈도 만들어내지 않는 초점 있는 톤이야말로 오이스트라흐 특유의 밀도 높은 톤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결코 그의 톤은 인위적이거나 둔하지 않으며 오히려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기에 놀랍다. 놀라운 힘과 섬세한 묘사력을 갖춘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라이트에서 재치 있는 음악으로 표현되며, 쇼송의 ‘시곡’에선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롭고 신비로운 음악으로 표현된다.
얌폴스키와 함께 연주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연주는 특히 돋보인다. 1악장 초반 신비로운 제1주제에서 약간의 글리산도(끄는 음)로 미묘한 표정을 살려내면서도 결코 과장되지 않은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 연주는 고귀한 아름다움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때때로 그의 비브라토는 마치 울먹이듯 풍부하면서도 느려지기도 하지만, 급격한 포르티시모(매우 크게)로 음악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빠르고 폭넓은 비브라토로 불을 뿜듯 강렬한 색채를 만들어낸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는 피아니스트 얌폴스키와 함께 연주했는데, 이는 당시 중국 연주회의 사정상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듯하다. 피아노 반주로 듣는 협주곡에선 오이스트라흐의 고상한 바이올린 톤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에서의 꿈꾸듯 아름다운 톤은 일품이다. 물론 실황 공연이다 보니 기교적인 3악장에선 약간의 실수도 있긴 하지만, 그 순간에 오히려 오이스트라흐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어서 미소 짓게 된다.
오이스트라흐의 1957년 중국 공연 실황 음반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역사적 음반이란 점에서 우선 가치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19일간의 중국 체류 기간 동안 어떤 무대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거장의 성실한 모습에 더욱 감동하게 된다. 지금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음반을 통해 현대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진정한 음악가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오이스트라흐는 언제나 우리에게 강한 영감을 전해준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블라디미르 얌폴스키(피아노)/리더룬(지휘)/중국중앙교향악단 외
CRC HCD 0955 (4CD, A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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