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들’ ‘아름다운 것들’

보이는 음악 들리는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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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 ‘그날들’ 유준상·김정화·지창욱

주크박스 뮤지컬의 완성도는 대중적인 음악과 더불어 새로 쓰인 대본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올봄, 두 편의 새로운 주크박스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 고(故) 김광석의 노래들을 엮은 ‘그날들’과 양희은이 직접 출연해 디제이 형식으로 자신의 곡을 소개하는 ‘아름다운 것들’이다. 4월 4일~6월 30일, 대학로 뮤지컬센터 대극장(‘그날들’)·4월 24일~6월 2일,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아름다운 것들’).

뮤지컬과 관계없이 쓰인 유명 작곡가의 히트곡을 모으고, 여기에 새로운 드라마를 부여해 만든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이라고 한다. 기존 히트곡 중에서 뮤지컬로 재활용할 목적으로 해당 곡들을 골라낸다는 점에서 컴필레이션 뮤지컬(compilation musical)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수의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동일한 작곡가의 곡을 사용하며 이런 경우 트리뷰트 뮤지컬(tribute musical)이라는 표현도 쓴다.
20세기 초반, 서구 뮤지컬의 역사가 집약된 뉴욕 브로드웨이 28번가는 악보출판사 밀집 지역이었다. 당시는 뮤지컬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본이 일상화되기 전이었고 싱글 히트가 가능한 개별 곡을 작곡하던 송 플러거(song plugger)들이 출판사에 소속되어 무작위로 곡을 써서 악보로 발표하던 시대였다. 그중 한 명인 조지 거슈윈이 당시에 발표한 곡들을 엮어 새로운 대본으로 만든 뮤지컬 ‘걸 크레이지’(1930)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창기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엘비스 프레슬리 등 많은 유명 가수들이 곡을 쓴 제리 리버·마이크 스톨러 콤비의 곡으로 만든 ‘스모키 조스 카페’(1996)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형식을 따르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꾸준히 발표되어왔다. 이런 작품들은 강력한 플롯이 존재하는 정통 뮤지컬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별미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1999년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든 ‘맘마미아!’가 런던에서 초연되고 큰 인기를 얻자 모든 게 달라졌다. 그 이후 대서양 양쪽에서 기존 가수의 히트곡을 모아서 만드는 작품이 봇물 터지듯 나오게 된 것이다. 보이 조지·비치 보이스·존 레넌·로드 스튜어트·엘비스 프레슬리·밥 딜런·빌리 조엘·블론디·퀸 등 셀 수 없이 많은 가수들의 음악으로부터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졸속 기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가수의 명성까지도 욕되게 한 작품이 부지기수였다. ‘주크박스’라는 말은 사실 이러한 트렌드를 언론과 평론가들이 다소 낮춰 부르는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토니상과 같은 주요 시상식에서도 찬밥이었다. 기존의 뮤지컬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 작가·작곡가·대본작가가 머리를 싸매고 고생을 하건만, 이들은 한가하게 히트곡이나 고른다는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새로 작곡된 뮤지컬과 같은 창의성을 영영 기대할 수 없을까? 물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비록 기성 음악을 사용하더라도 그 음악이 작품 안에서 명확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다면 또 다른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무대에서 만나는 고(故) 김광석과 양희은의 노래
우리나라 창작뮤지컬 제작진도 2000년대 중·후반부터 주크박스 뮤지컬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우림·동물원·이영훈·오태호 같은 단일 아티스트의 곡으로 짜인 작품들이 선보였고 ‘달고나’ ‘젊음의 행진’처럼 특정 시대의 가요를 모아 만든 뮤지컬도 있었다. 특히 이문세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영훈 작곡가의 ‘광화문 연가’는 2011년 대형 뮤지컬로 만들어져 초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완성도는 대중적인 음악과 더불어 새롭게 쓰인 대본이 기존의 곡 구성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의 한국적 주크박스 뮤지컬은 저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그 틀을 찾아가며 완성도를 점차 높이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막하는 두 작품 ‘그날들’과 ‘아름다운 것들’은 각각 고(故) 김광석과 양희은의 노래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먼저 ‘그날들’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등 흥행작을 만들어낸 작가 겸 연출가 장유정이 선보이는 5년 만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본도 김광석이 부른 곡만 사용했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 구성으로 채워져 있다. 극은 1992년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를 한창 준비 중인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대통령의 막내딸 한나와 수행 경호원 대식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돌발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호과장 정학의 앞에 대통령 전담 요리사 운영관이 20년 전의 사건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정학은 꺼내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진실을 떠올리게 된다. 독특한 설정의 미스터리 멜로와 고(故) 김광석의 서정적인 노래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이질감을 최대한 줄이고 드라마틱하게 어우러질지가 관건이다. ‘이등병의 편지’ ‘변해가네’ ‘나무’ ‘서른 즈음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먼지가 되어’ ‘그날들’과 같은 고인의 익숙한 노래들을 유준상·오만석·강태을·지창욱·최재웅·방진의·김정화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반면 ‘아름다운 것들’은 가수 양희은이 직접 출연하며 디제이 형식으로 자신의 곡을 소개하는 특별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포크 음악을 대표하는 양희은은 올해 데뷔 42주년을 맞은 베테랑 가수로 이 뮤지컬에서 자신이 불렀던 노래 스물두 곡을 115분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제작진은 이메일을 통해 일반인들의 실제 사연을 모집하여 선별해 대본에 반영했다고 한다. 우리가 평소 남편과 아내,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첫사랑의 추억·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화해·부부의 이야기·노년을 맞은 이들의 꿈 등 다양한 인생 이야기들을 디제이 양희은의 소개로 음악과 함께 소통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뮤지컬을 통해 소개될 곡들은 ‘아침이슬’ ‘상록수’ ‘아름다운 것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세노야’ ‘들길 따라서’ ‘백구’ 등 중장년층이 사랑하는 곡들이 망라되어 있다. 양희은의 뮤지컬 출연은 지난 2011년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 데뷔 40주년 기념 뮤지컬로 초연된 ‘어디만큼 왔니’에 이어 두 번째다. 베테랑 음악감독이자 이번에 처음 연출에 도전하는 구소영과 뮤지컬계에서 다수의 작품을 쓴 작가 이희준의 콤비 플레이라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한다. 양희은·정이주·신문성·성열석·윤시영 외 다수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두 작품이 앞으로 한국 창작뮤지컬의 수준뿐 아니라 주크박스 뮤지컬의 전반적인 완성도까지도 향상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도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조용신(뮤지컬 연출가·칼럼니스트) 사진 이다엔터테인먼트·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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