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 내한 공연

이토록 다이내믹한 순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이 정도면 그 누가 당대연주를 마다하랴. 시대악기 연주는 국내 공연장 여건으로 인해 실연에서 늘 아쉬웠지만, 이번 공연에서 청중은 음반으로 듣는 감동 이상을 실제로 맛보았다.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은 대편성 오케스트라에서 들을 수 있는 혁명적인 스타일로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고음악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3월 5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성남아트센터

1967년 영국에서 데이비드 먼로우의 초기음악 콘소트에 의해 촉발된 시대악기 연주는 45년을 훌쩍 넘긴 지금 비주류에서 주류로 편입된 지 오래다. 하지만 국내 무대에서 제대로 이 그윽한 음악을 실황으로 즐기기는 어려웠다. 조르디 사발이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을 이끌고 드넓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나타났을 때 음반으로 듣던 감흥은 반감됐다. 2006년 12월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가 내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음량은 작았고 머나먼 3층 객석에서는 아르농쿠르의 격정적인 모차르트가 소리로는 전달되지 않았다.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의 내한 공연이 열린 3월 5일 성남아트센터. 그동안 말러·브루크너를 연주하는 대규모 공연장에서 당대연주를 시도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1천 석 규모의 기막힌 음향을 자랑하는 콘서트홀과 맞물려 오디오로 듣던 느낌 이상의 다이내믹하고 광폭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고음악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2003년 라이브로 녹음되어 2년 뒤 아르히프 레이블에서 라모의 ‘상상 교향곡’이 발매되자 입소문을 타고 민코프스키와 그의 악단은 단숨에 국내에서 당대연주계의 떠오르는 별로 등극했다. 따로 출시된 LP 음반은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즐거운 저녁입니다.” 객석을 향해 우리말로 첫 인사를 나눈 민코프스키는 너그러운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음악으로 대화하는 그는 글루크의 ‘돈 주앙, 혹은 석상의 연회’의 첫 곡 신포니아부터 격렬하게 요동했다. 마흔 명의 오케스트라 편성 가운데 무려 일곱 대의 저음악기를 배치한 효과는 대단했다. 세 명의 더블베이스 연주자가 무대 뒤 중앙에서 쏟아내는 저음은 객석 바닥으로 차고 올라왔다. 여기에 각 네 대의 오보에와 바순이 합쳐져 감칠맛 나는 옛 향기가 덧입혀졌다. 민코프스키는 사이사이에 직접 프랑스어 억양이 잔뜩 실린 영어로 해설을 곁들여 자칫 지루할 뻔했던 곡을 ‘음악극’으로 바꿔놓았다. 드디어 ‘상상 교향곡’이 전원극 서곡 ‘자이스’로 막을 올렸다. 오른쪽 출입문 바깥에서 둔중한 북소리가 들렸다. 최상의 음향 효과를 고려한 민코프스키의 아이디어는 악기들이 합세하며 고조되어 음의 폭풍을 몰아치게 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크리스토프 루세의 르 탈랑 리리크의 연주에 비해서도 엄청난 간극을 보여줬다. 또한 라모 오페라의 대가인 윌리엄 크리스티의 영상물에서 보았던 재치 있는 해석도 민코프스키 앞에서는 싱거울 정도였다. ‘르 보레아드’ 1막의 ‘콩트르당스’의 콘트라스트는 가히 압권이었다. 이 역동성은 ‘플라테’ 중 오라주에서 극대화됐다.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투티의 폭발력은 후기낭만 교향곡의 피날레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르 보레아드’ 4막의 가보트에서 두 명의 플루티스트가 기립해 연주하는 목가는 부드러움의 극치였다. 여기에 유명한 ‘암탉’이 곁들여져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해졌다. 폴림니의 입장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크리스티가 파리 가르니에 극장에서 보여주었던 앙코르는 민코프스키의 내한 무대에서도 재현됐다.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의 ‘야만인의 춤’이 다시 나오자 청중은 자연스레 박수를 치며 화답했다.
국내 공연장 여건으로 인해 실연에서 늘 아쉬웠던 시대악기 연주. 민코프스키는 잠자는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수면 위로 부상시켜 대편성 오케스트라에서나 들을 수 있는 혁명적인 스타일로 바꿔놓았다. 이번 내한에서 청중은 음반으로 듣는 감동 이상을 맛보았다. 이 정도면 그 누가 당대연주를 마다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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