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임선혜

나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6월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의 내한 공연에 앞서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르네 야콥스의 지휘로 파리 살 플레옐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임선혜를 만났다. 헨델의 아리아로 그녀가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을 때 2천여 명의 관객은 신성하고 숭고함과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객석에는 열띤 환호 대신, 마음으로부터의 박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성악가로서 느끼는 고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신선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고음악의 매력이에요. 시대적인 차이가 상당해졌고 옛날의 방식을 똑같이 고증할 수 없으니, 결국 지금의 감정에 맞게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고음악은 개인적인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그너의 작품은 곡이 쓰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전통과 기록이 남아있고, 어떻게 연주하면 좋은지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데 고음악은 열려 있어요. 그래서 같은 곡이어도 야콥스와 민코프스키를 보면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오는 거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음악을 들으러 오는 거고요. 고음악계에는 알지 못하면 끼어들기 힘든 마니아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상당수 사람들이 “나는 고음악을 듣는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오거든요. 고음악을 하는 음악가들 역시 그렇거니와 스스로가 해석해야 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지적이고 전문적인 취미를 가진 동료들이 대다수예요. 건축사에 가까운 디자인을 하거나 소믈리에 수준으로 와인을 아는 친구들도 있고,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연구를 하거나 정당 참여위원으로 활동하고, 또 글을 쓰는 친구들도 있어요.
고음악을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는지 궁금합니다.
가톨릭 신자인 것이 고음악과 오라토리오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크리스천 문화권에서 자라지 않은 동양인이 어떻게 가톨릭 신자가 됐는지 신기해 했고, 또 어떤 이유에서 제 음악이 감동을 주는지 궁금해했어요. 여기에 제 신앙이나 미사에 자주 참석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면 그들은 더욱 놀라워하죠. 이런 것들이 알려지면서 제 신앙에 기반한 음악적 해석이 여러 사람들에게 좀더 확신을 주게 된 것 같아요. 르네 야콥스는 오라토리오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곡을 할 때, 언제나 저를 불러요. 가톨릭 분위기를 알고 있는 성악가가 노래를 할 때 느껴지는 특별한 분위기가 관객에게도 전달된다고 말하면서요. 헨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죠. 동양인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왔던 유럽인들도, 제 음악을 들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나 봐요.
유럽에서는 한국 출신의 성악가들을 두고 “목소리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이 인상적”이라 평하더군요.
체구가 작은 동양인의 소리가 주는 남다른 힘에 놀랐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하더군요. 예를 들어 베이스 연광철 선생은 힘 있는 소리뿐 아니라 가사를 표현하는 음악성과 해석력이 뛰어나요. 콘서트 무대에서도 존재 자체로 그 캐릭터를 만들어내죠. 저는 고음악을 하기 때문에 음량 면에서는 좀 다르지만, 지향점은 비슷해요. 집중을 통해 소리를 멀리 전달하고 신성한 울림을 갖는 것처럼 말이죠.
올해로 데뷔한 지 14년이 됐습니다. 그 전까지의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저는 조수미 선생님을 보면서 꿈을 꾸고 대학을 간 세대예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당시 선생님의 권유로 1학년 때 전국 콩쿠르에 나가서 상을 탔던 기억도 있어요. MBC TV ‘우리들의 노래’에 나가서는 2등을 했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레슨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제 목소리를 들으시더니 “너는 성악해야 한다”라고 말하셨어요. 그제서야 확신을 갖고 성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남들보다 시작은 많이 늦은 셈이죠. 저희 어머니도 목소리가 굉장히 좋으신데, 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걸 평생 아쉬워하셨대요. 그래서 “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그만둬도 좋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어요. 음대에 진학해서는 음악가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늘 고민했어요. 유학 길에 오르기 한 달 전까지는 새로운 곳에서 제대로 지낼 수 있을지 걱정돼서 매일 밤마다 울었죠. 그런데 독일에 와서는 무척 빨리 적응했어요. 첫 유학 생활이자 외국 생활이기도 하고, 장학금이 연장되면 2년을 더 지낼 수 있으니 그 기회를 활용하자는 마음이 컸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한국에 들어가 다른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데뷔하게 됐죠. 1999년 말이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셋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렸죠. 필리프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 무대에 대타로 설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수락하면서 모든 게 시작됐어요. 그땐 그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카를스루에부터 브뤼셀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악보를 달달 외우고, 도착하자마자 노래를 불렀어요. 처음엔 헤레베헤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저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했을 때도 긴장하기는커녕 대답도 곧잘 했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좋게 봐서 그 이후로도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중이 보는 성악가의 화려함 이면에는 고독한 부분도 많겠지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외로움조차 느끼지 못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만큼 고독의 시간도 저에겐 필요해요. 예술가에게는 고독이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약이에요. 한없이 올라갔다가도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려왔을 때야 비로소 가장 나다워지는 느낌이에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다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요. 커리어가 한창 쌓일 때는 잘 모르지만, 어느 정도 유명세가 생기면 그 속도는 점차 줄어드는 게 정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 속도를 유지하려고 할 때 정말 힘들어 하죠.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음악이 무엇이기에 내 인생을 다 투자했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돼요. 관객은 그저 무대 위 공연만 보니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음악가의 내면과 굴곡은 발견하기 힘들죠. 하지만 레코딩과 달리 실황 공연은 그 음악가의 내면을 바라보는 순간이잖아요. 짧은 시간 동안 그 안에 있는 것이 뿜어져 나오니까요. 마음속 무언가가 뚜렷이 보이지 않더라도, 전달되는 것은 분명하기에 음악은 내면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음악가들은 누구보다도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까칠해지고, 어느 하나에 몰입하고 집중하다 보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에요. 시기와 질투의 대상도 많고요. 그런 감정들이 나에게 가시가 되어 박히면, 그걸 또 다른 사람에게 주기 마련이죠.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고, 저 역시 그 방법을 많이 배우고 있어요.
고음악뿐 아니라 올해 초 발매된 르네 야콥스/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가짜 정원사’에서는 상반된 성격의 세르페타와 비올란테를 모두 소화했습니다. 자신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무대에 올랐을 때 관객이 치는 박수가 매번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성스러운 아리아를 부르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리고 음악만 남죠. 그때 받는 박수와 발랄하고 대담한 연기로 인물에 몰입했을 때 받는 박수는 달라요. 제가 원하고, 제 영혼에 더 가까운 것은 완전히 내면에 들어가 성스러워지는 순간의 음악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발랄하고 화려한 연기로 여주인공이 될 수도 있어요.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는 것, 그만큼 음악에 몰입하는 것이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에요. 저는 동양인이고 체구도 작지만 표면과 내면의 폭만큼은 유럽의 어떤 가수들보다 넓다고 생각해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을 그려내는 것부터, 신성하고 숭고한 내면으로 들어가는 음악까지… 모두 제 것이거든요. 이 두 가지를 무대 위에서 잘 소화해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내면의 다양한 울림에 집중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들이 있나요.
저는 언제나 공연장과 리허설 사이, 다른 도시의 길 위에 서 있었어요. 유럽 고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동양인으로 10년 넘게 활동하다 보니, 매일 마주하는 얼굴들이 다 백인들이라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저 혼자만의 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노래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경험들을 통해서 무엇이 부족한지, 혹 넘치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재정립하는 시기를 만들자고 스스로 마음 먹었죠. 30대 중반을 지나면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좀더 적극적으로 살고 싶어졌어요.
앞으로 우리가 만날 소프라노 임선혜는 어떤 모습일까요.
주어지는 역할뿐 아니라, 제가 더 좋아하는 걸 찾고 싶어요. 이전까지는 누군가 저에게 알맞은 배역을 말해주고, 알아봐주는 것이 좋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으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그게 사실 가장 힘들고요. 그동안 힘들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미뤘어요. 하지만 올해에는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꼭 해내려고요. 이제 데뷔한 지 14년이 되었는데, 해가 바뀌기 전에 솔로 음반 녹음을 할 예정이에요. 요즘에는 건강을 위해 식단도 꼼꼼히 관리하고, 매일 운동도 해요. 또 요즘에는 한국 문학을 많이 읽고 있어요. 한때 언어를 익히려고 3~4년 정도 우리나라 책을 안 읽었거든요. 오랜만에 우리말로 되어 있는 책을 읽었을 때의 환희를 지금도 기억해요. 김훈ㆍ김연수ㆍ신경숙ㆍ공지영 작가들의 책을 읽고 있어요. 성악가는 다양한 삶을 살아내는 인생이기에, 악보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문학이 문장들을 통해 사람 내면으로 깊이 다가가는 것처럼, 제 목소리로 빚어낸 노래가 한 사람의 내면에 스며들었으면 해요. 그것이야말로 정말 긴 여운을 남기니까요.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 사진 빈체로

임선혜는 6월 1~2일 LG 아트센터에서 헤레베헤 지휘의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에서 독창자로 나선다. 이후 6월 18일, 아카데미 오브 에이션트 뮤직과 함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비발디의 ‘사계’의 각 악장 사이에 계절에 맞는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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