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악은 옛 모습대로” 런던에서 고음악을 꽃 피워온 이들을 드디어 만날 시간이다. 6월 18~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영국 작곡가 하면 퍼셀ㆍ본 윌리엄스ㆍ엘가ㆍ브리튼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영국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음악 소비국가다.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일찍부터 공개 연주회의 전통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 시절에도 유럽 본토의 음악가들의 희망 사항은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는 것이었다.
런던에 있으면 매일 저녁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로열 페스티벌 홀ㆍ바비칸 센터ㆍ위그모어 홀 등에서 세계적인 연주자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동시에 열리니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지 결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영국은 오늘날에도 명실상부한 클래식 음악의 메카다. 런던 심포니ㆍ런던 필하모닉ㆍ로열 필하모닉ㆍ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만 네 개나 있다. 모두가 연주 기량만으로 평가하는 냉혹한 무대에서 살아남은 민간 교향악단이다. 여기에 BBC심포니ㆍBBC콘서트 오케스트라ㆍ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보태면 일곱 개로 늘어난다. 어디 그뿐인가. 전 세계를 누비면서 순회 공연 중인 체임버 오케스트라도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한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를 비롯해 런던 클래시컬 플레이어스ㆍ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ㆍ체임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 등이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체임버 오케스트라보다 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고음악 앙상블이다. 계몽시대의 오케스트라ㆍ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ㆍ뉴 퀸즈 홀 오케스트라ㆍ킹스 콘소트ㆍ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ㆍ런던 헨델 오케스트라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은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Academy of Ancient Music 이하 AAM)이다.
AAM이 1976년 첫 내한 공연에 이어 2001ㆍ2011년 이후 네 번째로 서울을 찾는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와 처음 왔을 당시에는 창단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다. 국내에서도 고음악 연주는 퍽 생소한 분야였다. 그래서인지 첫 내한 무대도 서울 정동 세실극장이었다. 최근에 서울을 찾은 것은 2011년이었는데 현 음악감독 리처드 이가가 리더로 함께 왔다.
6월 18~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AAM 공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베즈노슈크가 객원 리더를 맡는다. 공연 첫 날인 18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임선혜가 협연하며, 19일엔 바이올리니스트 보얀 치치치가 함께 호흡을 맞춘다.
18일 프로그램은 매우 특이하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발디 ‘사계’의 각 악장 사이에 계절에 맞는 오페라 아리아를 선곡해 부르는 식이다. 봄에서는 퍼셀의 ‘요정 여왕’ 중 ‘보라, 항상 고마운 봄이 왔도다’ 등 다섯 곡의 아리아, 여름에는 헨델의 ‘오를란도’ 중 양치기 처녀 도린다의 아리아 ‘사랑은 바람처럼’, 헨델의 ‘에치오’ 중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는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중 클레오파트라의 아리아 ‘폭풍 속에서’를 들려준다. 순수 기악곡과 오페라 아리아로 묘사된 계절의 추이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다. 둘째 날인 19일에는 바로크 협주곡과 모차르트의 실내악을 즐길 수 있다. 코렐리ㆍ헨델의 합주 협주곡, 퍼셀의 샤콘 G단조,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 하이든의 바이올린 협주곡 C장조, 모차르트의 ‘아다지오와 푸가’, 세레나데 13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등을 들려준다. 비발디의 ‘사계’는 대개 한꺼번에 연주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각각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네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각 작품 사이에 계절별로 잘 어울리는 별도의 음악을 삽입하는 특이한 프로그래밍은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시도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크레머는 아스토르 피아솔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를 편곡한 모음곡을 삽입했다. 피아솔라의 ‘사계’도 비발디의 ‘사계’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음악이다. 비발디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소네트 가사를 중간에 낭송하는 무대 연출도 가능하다.
AAM은 1726년 런던에서 출범한 단체다. 글자 그대로 옛날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옛날 음악’이란 팔레스트리나의 합창곡이나 헨델의 오라토리오였다. 19세기에는 음악회에서 생존 작곡가의 작품 못지않게 작고한 음악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AAM의 존재 이유는 점점 사라져갔고, 결국 유명무실한 단체로 역사 속에 사라졌다. 1973년 하프시코드 주자 겸 지휘자ㆍ음악학자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AAM이라는 이름을 내건 앙상블을 출범시킨 것은 18세기부터 옛 음악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AAM은 옛날 악기를 사용할 뿐 연주 방식이나 연주의 감동은 여느 악단 못지않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