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스 스타커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들은 것은 프랑스 콜마르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였다(공교롭게도 그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은 스타커 선생님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 마르크 코페였다). 기차 안에서의 세 시간가량 슬픔이란 감정을 지나 놀라울 정도로 깊은 공허함을 느꼈다.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치 내 존재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간 것 같은 지독한 쓸쓸함이었다. 최근 몇 주 동안 선생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의 준비를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고 나서도 빡빡한 일정을 예외 없이 소화해야 했다. 공연과 리허설 사이 심지어 악장과 악장 사이의 빈 틈에까지 그 공허하고 텅 빈 마음은 잦아들지를 않았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역체계가 가동을 하는 듯한 순간, 스타커 선생님과 얽힌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수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며 공허한 마음이 벅찬 감동과 감사로 물결치기 시작했다.
내가 첼로를 막 배우기 시작한 일곱 살 무렵 처음으로 서울에서 그분의 독주회를 보았는데,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면서 광채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무대에서의 당당한 기품과 위엄에 완전히 압도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밤 들은 소리는, 내 영혼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나 자신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소리의 이상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후 수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야노스 스타커라는 이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전설적인 존재로서 내게 남아있었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수학 시절 그분의 파리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었고, 스위스의 마스터클래스에서 운명처럼 그분의 제자로 발탁되어 19세에 인디애나 주립대로 떠나게 되었던 기억, 수많은 선생님의 연주와 클래스를 통해 배우고 첼로를 연마하던 시간들, 서울시향과의 데뷔 협연 무대에 당신의 안드레아 과르네리 첼로를 빌려주셨던 일, 그리고 그분의 조수로 가까이에서 뵈며 함께 나누던 소소한 일상들, 선생님 가족들과 댁에서 종종 가졌던 클래스 파티 등등… 수많은 기억들이 한데 뒤섞여 연주 여행 내내 불쑥불쑥 영상처럼 떠올랐다. 따뜻하고 진실한 인간미를 간직한 분이셨기에 그 문하의 제자들은 비단 첼로를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그를 삶의 멘토로 존경하고 의지하며 모시게 된다. 이 모든 추억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선생님이 떠나신 빈자리가 주는 상실감과 허전함을 극복하고 나를 일으키게 한다.
선생님이 떠나신 지 두 주가 흘렀다.
그의 연주를 듣고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분의 무한한 신뢰와 인정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의 예술성과 예술가로서의 자세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역경에 굴하지 않은 강인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삶의 모습을 지척에서 목도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그의 제자들과 음악인 및 그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분은 영원히 살아서 큰 가르침을 주실 것이다. 언제까지나.
2013년 5월 12일
첼리스트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