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같은 지휘가 음악에 불을 지핀다. 청중의 가슴은 서서히 타오르다 처연하게 사그라진다.
6월 9일, 야닉 네제 세갱이 이끄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캐나다 출신의 젊은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6월 9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 선다. 이날 무대에는 네덜란드 작곡가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협연 장 기엔 케라스)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이 연주된다.
몬트리올에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야닉 네제 세갱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몬트리올 오페라의 합창 지휘·부지휘자·음악고문을 지낸 그는 로테르담 필하모닉에서 2005년에 처음 객원 지휘를 맡았고 2008년부터 수석지휘자로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2008년에 처음 지휘했고 2012년 샤를 뒤투아의 뒤를 이어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2009년 12월 31일 ‘카르멘’으로 데뷔했다. 세갱은 현재 런던 필하모닉 수석 객원지휘자도 맡고 있다. 내한 공연을 앞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난 2008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이후 5년 만의 내한 공연이다.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처음 맡았을 때다. 그때 한국 청중과 함께 보낸 소중한 기억과 감동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동안 다섯 해가 지났다. 오케스트라와의 교감이 더욱 깊어졌기에 이번 공연도 더욱 기대된다.
그 사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때 위기에 처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향악단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나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매우 각별한 사이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정말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우리는 필라델피아의 청중과 다시 끈끈하게,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된 뜨거운 열기를 세계 모든 사람과 곧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한국의 청중과도!
몬트리올 태생이다. 대다수 한국 청중은 몬트리올 심포니 정도만 알고 있는데, 실제 음악적 분위기는 어떠한가.
몬트리올은 문화적으로 엄청나게 풍요로운 도시다! 서울처럼 큰 도시는 아니지만 음악·오페라·무용·연극·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내가 지휘하는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Orchestre Metropolitain)는 독특한 소리와 개성을 자랑한다. 이 밖에도 몬트리올에는 두 개의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각자 독특한 사운드와 목표로 청중과 만나고 있다.
*몬트리올이 속한 퀘벡 주는 미국보다 오히려 유럽과 비슷한 분위기다.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 덕에 교회 합창단과 오르가니스트들이 많이 필요하다. 인구가 800만 명인데 오케스트라가 일곱 개, 대학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일곱 개의 음악원이 있다.
어떤 계기로 지휘자가 되기를 결심했나.
열 살 때였는데 정말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당시 나는 노래도 하고 피아노도 연주했다. 그러다 집단 속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지휘가 지닌 매력임을 알게 됐다.
지휘자가 되려면 어떤 소양을 갖추어야 하나.
우선 음악가가 되기 위한 소양을 갖춰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최고 수준의 연주에 필요한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어떤 악기든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요구되는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그 다음 독보력·화성법·관현악법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여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지휘자가 다뤄야 하는 악기의 실제는 개성이 강한 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19세 때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만났다. 그에게 무엇을 배웠나.
함께 하는 연주자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줄리니의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스물두 살의, 경험조차 하나 없는 나를 인간적으로 존중해주는 모습마저 믿기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질문하면 그는 항상 내가 내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끌어주었다. 그와 함께하면서 ‘내가 어떤 기분이지? 어떻게 노래하고 있지? 어떻게 음악을 쉽게 풀어가지?’라는 생각들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가르침을 받았다.
*세갱은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면서 번 돈으로 CD를 샀다. 우연히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골랐는데 이때부터 줄리니의 연주에 흠뻑 매료되어 줄리니 음반을 대부분 구입했다. 연주를 모두 들은 세갱은 줄리니에게 만남을 요청하는 두 차례 편지를 보냈다. 세갱은 1997년 여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열린 피아노 듀오 콩쿠르에 참가했다가 밀라노 연주에 초청받았고, 그 후 두 사람은 리허설이나 음악회에서 여섯 차례 정도 만났다. 세갱은 줄리니에게 지휘봉을 들고 레슨을 받은 적은 없고, 줄리니는 세갱이 지휘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샤를 뒤투아와의 인연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뒤투아와 같이 음악을 공부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1980년대 몬트리올 심포니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 보여준 그의 리더십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합창 지휘 경험이 오케스트라 지휘에 도움이 되나.
오케스트라 지휘는 합창 지휘나 그리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 지휘 때도 악절을 구분하는 프레이징 동작을 하기 위해 호흡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합창을 지휘할 때와 마찬가지다. 모든 기악곡은 성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음악의 뿌리는 노래에 있다.
자신의 지휘 동작이 좀 크다고 생각하지 않나.
지휘 동작이나 제스처의 크기를 사전에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휘를 하다 보면 저절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내 키가 좀 작은 편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공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차기 음악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메트는 정말 좋은 오페라단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최고의 음악감독 제임스 러바인이 아직도 건재하고, 그가 당장 사표를 내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비행기 안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나.
악보를 들여다보면서 공부하거나 가벼운 영화를 보고, 긴장을 풀면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처음 객원 지휘를 하는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어떤 말을 하나.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그럼 음악으로 서로 만나봅시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1~2년 안에 새로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이번 시즌에 난생처음으로 바그너 오페라에 도전하고 있다. 당장 다음 달부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을 지휘해야 한다.
지휘자가 갖춰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천재 작곡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것,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섬김의 자세로 이끌어가는 것, 가능한 단원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면서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성남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