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네 부슈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파이가 택한 첫 솔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7월 1일 12:00 오전

차고 넘치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음반 목록에 깜짝 놀랄 만한 연주가 더해졌다. ‘더 이상 어떤 음반이 또 필요할까’ 하는 선입견을 무참히 깨뜨린 주인공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여성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네 부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이끄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필리프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작업에서 악장을 맡아 마니아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헤레베헤는 2011년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파이’의 첫 독주 앨범을 30년 지기인 이 여성에게 맡겼다. 독주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을 의식했는지 헤레베헤는 음반 내지에 직접 실력파 연주자를 소개하며 신뢰와 믿음을 심어준다.
1970년대 말 루마니아 출신 세르지우 루카(Nonsuch)로부터 시작된 작품의 시대악기 연주는 네덜란드의 거장 시히스발트 카위컨의 1999년 음반(DHM)으로부터 ‘주류’로 발전해 지금은 거트현과 바로크 활에 의한 연주로만 10종 이상을 꼽을 만큼 다양해졌다. 부슈의 신보는 다양한 해석의 스펙트럼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극단에 위치해 있다. 기름진 울림과 정확한 인토네이션, 중도의 빠르기, 특히 템포 변화가 예측 가능한 안정감은 헨리크 셰링(CBSㆍDG), 나탄 밀스타인(EMIㆍDG) 등 ‘낭만주의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하다.
주목할 점은 단단히 여문 프레이징이다. 보통 현대악기 연주와 시대악기 연주를 가르는 가장 일반적인 차이가 소리의 강도다. 루시 판 다엘(Naxos)이나 엘리자베스 월피시(Hyperion), 모니카 허짓(Virgin), 이언 홀로웨이(ECM) 등 섬세함을 앞세운 시대악기 연주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다. 현대악기에 가까웠던 레이철 포저(Channel)과 빅토리아 뮬로바(Onyx)보다 사운드가 윤택하고 볼륨감이 넉넉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음색의 미묘한 변화다. 포르테와 피아노의 섬세한 대조를 통해 디테일하게 악구를 다듬으면서 자신이 내지에 설명한 대로 “수없는 다이내믹과 아티큘레이션, 비브라토의 뉘앙스를 살리면서 이상적인 음영(light and shade)”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시종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템포가 더해지면서 마치 부슈의 연주는 바로크 바이올린을 사용한 현대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부슈가 현대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고, 현대 악단에도 오랫동안 몸담았다는 사실이 반영된 듯보인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인터뷰에서도 “현대악기와 바로크 악기는 일부 연주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정서의 표현은 같다”고 밝히고 있다.
세트의 백미인 파르티타 2번의 샤콘은 신보의 성격을 규정하는 본보기이자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연주 시간 15분의 템포는 웬만한 현대악기 연주와 비교해도 느린 편에 속한다. 물론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 가운데는 가장 길다. 연주자는 시가를 길게 유지하면서 모든 악구를 충분히 음미한다. 팽팽하고 두터운 보잉으로 긴장감을 전달하며, 변주가 진행할 때마다 미세한 템포 변화를 주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에피소드마다의 템포와 다이내믹은 단 한 순간도 대중의 기호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이지만 그 안에서도 개성이 살아 숨쉬고 있어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매력을 지녔다. 아무리 좋은 연주도 6곡 32개 악장을 듣다 보면 몇 개 악장은 예상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신보의 모든 트랙은 놀랍게도 대중의 취향에 잘라 맞춘 듯 모난 데를 지적하기 힘들다. 그 점에서 이츠하크 펄먼(EMI)의 세련된 해석을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도 준다.
파르티타 1번의 알망드에서는 이음줄을 충분히 이용하며 선율을 노래하다가 코렌테와 두블에서는 스피카토 풍으로 선명하게 멜로디를 새긴다. 소나타 1번의 푸가에선 악구를 꾹꾹 눌러 점성이 높은 느낌을 주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던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Orfeo)보다 한 수 위의 감흥을 준다. 파르티타 1번 사라반드와 소나타 2번 첫 악장 그라베 등 펼친 화음을 넓게 펴 바른 듯한 표현도 자연스럽다. 소나타 3번 푸가의 더블스토핑에서 들리듯 상하행 선율의 대위 밸런스도 훌륭하다. 파르티타 2번 지그에서 음의 모자이크는 빈틈이 없다. 파르티타 3번 프렐류드의 명쾌한 아르페지오 음형과 마지막 악장의 선명한 강약 대비는 청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파르티타 3번의 론도 형식 가보트처럼 일부 악구에 바로크 장식음을 적절히 삽입해 시대악기 연주의 차별성도 부각시켰다.
신보는 현대적인 음색으로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에서 시대악기 연주의 레퍼런스로 꼽히는 포저의 1999년 음반과 닮아 있다. 하지만 포저가 주지 못한 청각적인 쾌감과 개성이 있다. 녹음도 훨씬 세련되었다. 바로크 악기로 잠시 ‘외도’한 뮬로바에 비해선 중용의 미덕이 더 돋보인다. 알리나 이브라기모바(Hyperion), 이자벨 파우스트(HMF) 등 최근 나온 현대악기 호연으로 비교 범위를 넓혀도 경쟁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 크리스티네 부슈(바이올린)
PHI LPH 008 (DDD, 2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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