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루시네 하차투리안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3번

결코 이르지 않은 20대의 브람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8월 1일 12:00 오전

젊은 현악기 주자가 국제 콩쿠르에 우승한 뒤 리사이틀로 세계 순회공연을 다닐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면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떤 피아니스트를 반주자 또는 파트너로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2000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당시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고, 2002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2위,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에 입상한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에게는 세 살 손위의 누나 루시네 하차투리안이 있었기에 다행이다. 남매 듀오의 장점은 서로 다른 성격과 개성, 음악적인 장점을 십분 살려주면서도 모자라는 부분을 긴밀한 호흡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세르게이?루시네 듀오는 2006년 4월 호암아트홀 첫 내한 무대에서 국내 팬들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번 음반에서도 치밀한 앙상블과 여유가 느껴졌다. 음반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3번 전곡 앨범이다. 1879년부터 1888년 사이에 발표된 이들 세 곡은 중년 작곡가의 원숙함이 배어 있어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세르게이는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직후 EMI 클래식스과 데뷔 음반을 냈는데 여기에도 브람스 소나타 D단조가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레이블 나이브에서는 이미 네 장의 음반을 냈다. 시벨리우스·하차투리안 협주곡(에마뉘엘 크리빈/신포니아 바르소비아),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2번(쿠르트 마주어/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프랑크·쇼스타코비치 소나타,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등이다.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50세가 넘어야 비로소 브람스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28세에 불과한 세르게이의 나이는 브람스가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할 당시의 나이보다도 열 살 아래다. 세르게이도 50세가 넘어서 브람스 소나타에 재도전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의 연주 스타일로 미루어볼 때 지금도 이른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듣는 이로 하여금 자기 내면을 성찰하도록 하는 명상적인 분위기가 지금도 충분히 브람스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세르게이의 바이올린 연주가 다소 수줍음을 머금은 표정이라면 누나 루시네의 피아노 연주는 과감하면서도 단호하다. 피아노가 음악의 추진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음악에 숨 쉴 여유를 제공하고 음악적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미지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것은 바이올린의 톤과 다양한 음색이다.
브람스 소나타는 작곡자 특유의 탄탄한 음악 구조에 신경을 쓰다 보면 무미 건조하게 연주하기 쉬운데 하차투리안 듀오는 그 속에 담겨 있는 다채로운 표정과 낭만적 정서까지 읽어냄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전곡을 계속해서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군데군데 신선한 충격을 주는 대목이 많다. 선율도 매듭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따뜻한 연주다. 특히 소나타 2번 2악장의 명상적인 선율에서 세르게이의 매력이 돋보인다. 한 가지 흠이라면 때로는 음정 불안의 경계까지 자주 침범하는 아슬아슬한 비브라토를 자주 구사한다는 점이다. 비브라토는 호소력 짙은 감동이나 수줍은 매력으로 눈부신 연주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구사할 필요가 있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 세르게이 하차투리안(바이올린)/루시네 하차투리안(피아노)
Naive V 5314 (DDD)
★★★★☆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