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x 장영규

전통음악에 가하는 긴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비빙은 국악이 아닌데요.”(장영규) “저는 ‘국악’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꼭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는 것은 그냥 ‘음악’입니다.”(이태원) 섭외는 정확했다. 하지만 장영규와 이태원은 아니란다. 이들은 각각 비빙(Be-Being)과 고물(古物)의 음악감독이다.

질문에 ‘국악’이라는 말이 담길 때도 조심스러웠다. “저기… 두 분이 생각하는 국악…”이라 하면 문장 속에 눌러앉은 ‘국악’을 어김없이 제거한다. 연말이 되면 두 작곡가에게 전화가 온단다. 모 방송국의 이름이 박힌 상을 수여하는 주최 측이다. 그럴 때마다 장영규나 이태원이나, 그리고 전화를 건 이나 곤란하고 불편하단다. 상 앞에 ‘국악’이라는 말이 떡 하니 붙어 있기 때문이다(그래도 나는 이 인터뷰에 ‘국악’이라는 말을 적어야겠다. 끊임없이 그 주소지를 거부하는 자들의 주소를 적는 것. ‘오늘의 국악’은 여기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장영규 스타일’과 ‘이태원 스타일’

장영규가 이끄는
비빙의 음악은 “전통(음악)이냐 아니냐라는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비평적 관점을 제시하는 음악(장영규)”이다. 음악동인 고물(古物)을 이끄는 이태원의 작품 또한 “열려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두 작곡가의 무대는 어디까지가 국악의 경계인지를 묻게 된다. 그 안에서 오늘날의 국악의 중력과 자장의 반경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이태원의 말대로, 비빙과 고물의 음악은 그 “비평의 지점”을 끊임없이 묻는, 꽤나 불편한 음악들이다.

앞서
보았듯 장영규는 비빙을 이끌고, 이태원은 음악동인 고물을 이끈다. 두 사람 모두 각 단체의 ‘작곡가 겸 음악감독’이다. 비빙은 가야금(박순아)·피리(나원일)·해금(천지윤)·타악(신원영)·소리꾼(이승희)으로 구성되었다. 음향감독(오영훈) 또한 연주자의 몫을 하기에 빼놓을 수 없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은 비빙. “처음에는 ‘비빙’이 아니었습니다. 안은미의 ‘춘향’ ‘심포카 프린세스 바리’ 등을 통해 만난 음악가들이었죠. 춤에 음악적인 레이어를 하나 더 만들어주면서 공유했던 체험들이 큰 역할을 했고,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제가 예전부터 이끌던 어어부 프로젝트의 또 다른 연장선이기도 했고요.” 춤의 살을 붙여주던 ‘음악인’들은 이제 그들의 음악만으로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였다. 불교음악 프로젝트 ‘이(理)와 사(事)’, 가면극음악 프로젝트 ‘이면공작’, 그리고 궁중음악 프로젝트 ‘첩첩(疊疊)’이 그 결과물. 색채 또한 뚜렷했으니 누군가는 ‘반복’되는 음악들이 연출하는 유희의 분위기에 취했고, 누군가는 전통음악계에 미니멀리즘이라 했다. 다섯 개의 국악기가 당당히 무대를 채우지만, 객석이 동종 업계(?) 사람들로만 채워지지 않는 것도 비빙이 일군 신풍경이다. 국악은 물론 무용부터 영화음악까지 다양한 이들이 객석을 채운다.

2005년에
창단한 고물은 가야금(홍예진)·대금(고진호)·피리(배승빈)·해금(박연지)·장구(홍상진)·철현금(김솔미)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태원 감독은 음악의 구성 외에 대본을 맡는다. 고물은 ‘국악’이라는 음악에 관한 논쟁을 일으키는 데 부지런하다. ‘국악에 관한 세 가지 논쟁’ ‘가곡에 접근하는 일곱 가지 방법’과 그 후속작인 ‘한 노래의 삶과 죽음’ 등의 공연 제목만 보아도 음악의 ‘삶과 죽음’에 대해 ‘논쟁’하고 ‘방법’을 묻는다. 이미 국악계에 승인되고 암묵적으로 합의된 지점들을 타깃으로 삼아 끊임없이 긴장을 준다. “제 작업은 ‘비평으로서의 공연’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보통의 공연은 비평을 당하는데, 공연이 비평을 하고 있는 것이죠.” ‘논쟁’ ‘방법’이라 불리는 공연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국악 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좌석에 안착시킨다, 국악계에 대한 비판의 어조를 직시하게 만든다. “비의나 상징으로 덮어져서 보지 못하는 현실을 들춰내는 것입니다. 판단을 하면서 듣게 하고, 비의·상징으로 덮어진 현실에서 복원보다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관객에게 묻습니다. 계속 묻죠. 왜 당신에게는 사유·성찰·확인이 없느냐라는 것을.” 꽤나 불편하게 만드는 ‘비평-공연’인 셈이다.

기지의 음들에서 미지의 음을 뽑아낸다

흔히 통용되는 ‘창작국악’은 작곡가가 있고 그가 만든 작품을 하달 받는 연주자가 있다. 이른바 톱 다운(top-down)이다. 하지만 장영규와 이태원은 다르다. “소리 자료들을 모으고, 뜻을 중심으로, 여기서 뜻은 실체라기보다는 어떤 감인데요, 그런 식으로 진행합니다.”(이태원) 연주자와 관객에게 관철시킬 ‘뜻’을 세우기보다는 모인 ‘소리 자료’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곡을 쌓아올린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올라가는 보텀 업(bottom-up) 방식이다. 그리고 그 ‘뜻’, 즉 감에 사로잡히는 주관과 거기서 생성되는 주관성이 창작의 원동력이다.

“비빙을
시작할 때, 하나의 국악기도 어려운데, 다섯 개가 모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매 곡마다 악보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체는 없었죠. 처음 ‘이와 사’를 할 때는 불교음악으로 시작했습니다. 선율을 놓고, 즉흥을 가미하며 악기별로 연주를 하게 했죠. 모르면 공부하고, 배움이 더해져 소리가 나오고, 각각이 ‘놀 수’ 있게 되더군요. 익숙해지면 결국에 주자들 자신의 ‘손버릇’이 나오죠. 그럼 저는 그 샘플을 채취하여 순서를 바꾸거나, 잘라서 어딘가에 덧붙이고 덧씌우기도 합니다. 뒤집기도 하고요. 배치와 재배치의 과정이죠. 말하자면 각 음악을 대할 때, 그 음악을 대하는 연주자들의 특이한 연주법과 변화된 음악을 샘플로 하여, 그것을 토대로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또 다른 구조를 덧입히는 방식이죠. 그래서 만약 연주자가 바뀐다면, 비빙의 음악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둡니다.”(장영규) 그러므로 비빙의 음악은 어떤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운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배열체이며, 단일체가 아니라 여러 상황의 힘이 역학하는 집합체인 것이다.

이태원과
고물 또한 마찬가지.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재료, 연주자, 제시된 재료에 대한 연주자의 이해, 구성자, 즉 작곡가가 있습니다(잠시 이태원의 말을 들여다보자. 그는 작곡 방식을 묻는 나의 말에 대답했을 때, ‘작곡’가를 맨 뒤에, ‘재료’와 ‘연주자’를 답변의 서두에 내놓았다. 주어진 소리 자료에서 곡을 길어 올린다는 그의 작곡 방식의 무의식이 드러난 대목이었다). 곡을 만들 때, 장영규 감독이나 저는 이런 4개의 항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서양음악은 작곡가에 의해 나머지 3개의 항이 통일되어 있는 방식이죠. ‘오더’를 내리죠. 하지만 저와 고물은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음악을 둘러싼 내외적인 것들을 이으면서 의미를 발생시키죠. 그 의미가 어떤 것을 향하고 있는지는 모든 과정이 끝나봐야 알 수 있습니다.”

서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 닮아 있는 것처럼, 장영규와 이태원은 음악적인 것을 넘어 인간적으로도 친분이 두텁다. “아는 만큼 바보가 됩니다. 기존의 질서, 그 아는 것으로부터 ‘프리’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장영규 감독의 음악입니다. ‘그럴 수 있네’ ‘저럴 수도 있네’ 혹은 노래의 가사를 몰라도 노래를 즐길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었죠. 한마디로 프리 프롬(free from)을 사유할 수 있게 해준. 그래서 저는 어디서나 장영규 감독을 ‘소비’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인터뷰 동안,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조심스럽게 꺼냈고, 살며시 적어넣었던 ‘국악’에 대해 생각해본다. 새로운 음악을, 새로운 국악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그 답을 얻기 위해 만난 두 작곡가. 그들의 음악은 단순히 기존의 공정에 의해 생산된 작품들과는 다르다. 추상적이고 난해하고 실험적이며 심지어 현실과 유리된 듯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독자적 공간에서 자신들의 창작 행위의 궁극적 근거를 성찰하는 데 전념하며 오늘의 국악이 처한 한계와 그 가능성을 묻는 음악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새로운 주소지로 정착하기 보다는 새로운 길로 끊임없이 홈을 내는 이들이기를 많은 이들이 바랄 것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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