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김수인, 그가 뜨니, 판소리가 뜨고, 창극이 뜬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4월 29일 8:00 오전

RISING STAR

 

그가 뜨니, 판소리가 뜨고, 창극이 뜬다

소리꾼 김수인

 

 

국립창극단원이자 그룹 ‘크레즐’의 멤버로 활약하는 젊은 예술가의 포부

 

국립창극단 ‘나무, 물고기, 달’

고운 한복 저고리 끝 커다란 부채를 너울너울, 고수의 장단과 추임새에 맞춰 넘실넘실 노래를 쏟아내는 것이 소리꾼의 모습이렷다.(얼쑤!) 비단 소리꾼이라 함은 폭포수 아래 바위 하나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콰르르 떨어지는 폭포의 소리를 뚫을 때까지 ‘춘향가’ 눈대목만 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우리네 착각일 테지.

물론 이 소리꾼의 전통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오늘날의 소리꾼은 이 예스러운 문장들만으로 정의되기 부족한 듯싶다. 이들은 오히려 일찍이 1인 종합예술인이었던 소리꾼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통의 한계를 넘은 이 시대의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길 꿈꾼다. 하여 노래와 춤, 연기를 모두 갖춘 소리꾼들이 모여 있는 국립창극단에서 이러한 스타 소리꾼 탄생의 명맥이 계속되는 것은 분명 우연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소리꾼’에 대한 정의는, 이들의 행보가 확장되는 범위까지 계속해서 넓어질 것이다.

사실 2010년대, 국립창극단에서 ‘이몽룡’ 하면 떠오르는 이는 김준수였다. 실력과 캐릭터, 인지도 면에서 대체자를 찾기 어려웠다. 2022년, 그가 국립창극단 ‘리어’ 초연에서 리어 역을 맡을 만큼 깊어졌을 때, 새로운 라이징스타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리어’의 에드먼드 역을 맡았던 막내 단원 김수인(1995~). 그는 같은 해 김준수와 창극 ‘춘향’의 이몽룡 역으로도 더블 캐스팅됐다. 훤칠한 키에 소년미가 엿보이는 얼굴, 무대를 가득 채우는 몸짓과 미성이 묻어나는 음색은 ‘확신의 주인공’이었다. 2023년 3월, 많은 스타 성악가를 탄생시킨 JTBC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 4’에 보기 드문 ‘국악인’으로 등장한 그는, 창극 배우 무대를 다른 장르와 함께 꾸려내며 대중 인지도까지 확보했다. ‘요즘 소리꾼’ 유파답게 “준수 형은 늘 내 동경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롤 모델”이라며 맑은 미소를 드러내는 김수인. 이 젊은 소리꾼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소리의 품에서 자라난 기억들

국립창극단 ‘리어’

“처음부터 소리꾼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하시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고 자랐고, 정식으로 배운 건 네 살 때쯤부터였습니다. 글을 아직 읽지 못할 때라,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것을 따라 부르는 식이었죠.”

어머니이자 스승이었던 김선이는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흥보가 예능보유자다. 타고난, 소리꾼 집안의 신동인 셈. 앞서 우스갯소리로 ‘요즘 소리꾼’ 유파라는 별명을 붙여봤으나, 사실 김수인은 여러 유파 중 동초제 소리를 잇는 소리꾼이다. 동초제는 동초 김연수가 만들고, 운초 오정숙이 이어왔다. 김수인의 어린 시절 기억에는 오정숙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러 간 어머니를 따라나선 것이 남아있다.

“오정숙 선생님 댁에 엄청나게 큰 김연수 선생님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선생님이 어린 제 손을 꼭 잡고 그 사진 앞에 서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얘는 앞으로 소리할 애니까, 잘 봐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죠.” 동초제는 김연수가 1930년대 명창의 소리 중 좋은 것을 골라 짠 소리제다. 다른 유파에 비해 역사가 짧은 대신, 사설이 정확하고 장단 또한 다양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김연수는 국립창극단의 초대 단장이기도 하다.

“어머니로부터는 동초제 ‘춘향가’ ‘흥보가’를 배웠죠. ‘동초제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같이 가르치신 것 같아요. 가장 좋은 소리들로 만들었기에 현대에 맞는, 세련된 소리라고 생각해요. 시대에 따라 기술과 생활이 발전하듯, 저는 판소리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련미를 더한 ‘동초 가문’의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저도 가지고 있죠.”

오는 5월, 국립창극단 ‘절창Ⅳ’ 공연에서 김수인의 ‘동초제’ 춘향가를 만날 수 있다. 함께하는 조유아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불러 서로 다른 유파의 노래가 어우러질 예정. ‘절창’은 2021년 시작된 국립창극단의 기획 공연으로, 젊은 두 단원이 참신한 무대 위에서 판소리를 펼쳐내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으로 호평받고 있다. 김준수·유태평양, 민은경·이소연, 안이호·이광복에 이은 네 번째 공연으로 임지민이 연출·구성을, 김민정이 대본을 맡았다.

“지금은 ‘절창’ 공연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잡는 작업 중이에요. 연출가와 처음 만나 작업을 시작할 때, 무엇보다 저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알고 싶어 하셨어요. ‘어떤 소리를 부를 것인가’보다는, 김수인과 조유아라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셨죠.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어떻게 소리를 해왔는지도요. 아마 소리꾼 ‘김수인과 조유아’의 춘향가가 새롭게 탄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극단의 막내는, 하루하루가 깨달음!

크로스오버 그룹 크레즐

국립창극단이 ‘흥보씨’(2017)나 ‘패왕별희’(2019)와 같은 성공작을 쏟아내던 때, 김수인은 중앙대 전통예술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높은 음이 나오지 않아 발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대학생 김수인은, 군 제대 후 복학해 한승석 교수에게 배우며 소리의 맛을 깨달았다.

“구체적인 발성 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목을 어떻게 쓸지, 심지어 입 모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말씀해 주셨죠. 남자 소리꾼에게서 배우다 보니 제 음역대에 맞는 소리를 구사하는 법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달까요. 예전에는 소리꾼들이 폭포수 아래에서 소리를 뚫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어져 왔다면, 이제는 판소리도 발성이나 음역대 등 구사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 체계가 잡혀있는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소리꾼이 되겠다는 결심이 서고 난 후,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를 본 김수인은 확신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전부 다 저곳에 있구나’. 입단 후 부지런히 ‘나무, 물고기, 달’(2021) 물고기 역, ‘리어’(2022) 에드먼드 역, ‘춘향’(2022) 이몽룡 역, ‘베니스의 상인’(2023) 바사니오 역에 올랐다. 이 무대는 여전히 선배들의 모습을 듣고 보는 배움의 터다.

“소리도 하고, 춤도 추고, 연기도 하고 싶었던 제게 국립창극단은 종합예술의 ‘끝판왕’이었죠. 국립창극단의 단원이 되고 ‘아, 재밌는 작품이란 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죠.(웃음) 올해 3월 재연 공연을 가진 ‘리어’를 앞두고, 초연 때 제 공연 모습을 모니터했는데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 보겠더군요. 그래도 마음 굳게 잡고 열심히 다시 공연 영상을 보면서, 민은경 누나의 모습을 정말 열심히 봤어요.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게, 무대 위에 깊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굳게 서서 소리하는 거거든요. 은경 누나는 그 작은 체구에서도, 딱 서서 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저런 깊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어요.”

10년 후의 소리꾼 김수인에 대해 묻자, 창극단에 대한 동경과 애정, 그리고 해사한 김수인의 매력이 뚝뚝 묻어나는 답변이 돌아온다.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아, 아닌가? 여전히 지금처럼 발랄한 소리꾼?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싶은데요! 저도 10년 후쯤엔 선배들처럼 카리스마가 생길까요? 코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나… 아니, 선배들은 어떻게 그렇게나 단단하게 서서 소리할 수 있을까요?”

 

김수인의 소리가 가는 길

지난해, JTBC ‘팬텀싱어 4’를 통해 김수인은 크로스오버 그룹 ‘크레즐’의 멤버라는 역할을 한 가지 더 얻었다. 바리톤 이승민·뮤지컬 배우 임규형·아이돌 가수 조진호, 여기에 국악인 김수인이 더해진 것. 김수인은 방송에서 타 장르 음악에 직접 작창한 가사를 선보이며 그룹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됐다.

“작창을 했을 때는 준수 형에게도 많이 물어봤어요. TV 프로그램 ‘풍류대장’에서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판소리와 다른 장르를 섞는 작업을 했던 경험이 많아 정말 실질적인 조언을 해줬죠. 김준수라는 사람은 개인 소리꾼이자 창극단 속 역할, 또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국악인으로서 역할을 모두 잘 해내는 ‘완벽형’ 인간인 것 같아요. 이자람 감독님도 제가 고등학교 때 많은 영향을 받은 분이에요.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면서도 개인 소리꾼으로도 ‘사천가’ ‘노인과 바다’와 같은 판소리를 계속해 내는 모습을 닮고 싶죠. 폭넓은 음악 세계에 대한 이해는 한승석 선생님께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국악인으로서 제가 영향 받은 사람들을 꼽자면, 이렇게 세 분이겠네요.”

대중화와 정체성 사이에서 정도를 가늠하며 걷는 일은, 전통에 빚을 진 모든 예술가의 숙제다. 국악계 또한 여전히 일면 강한 보수적 분위기를 품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의 소리꾼들이 이어가고 있는 폭넓은 시류를 더 이상 거부할 순 없다. 김수인은 말한다. “소리가 가는 길, 그 본질과 선율, 5음 음계에 밑바탕을 둔 색채는 지켜져야 한다”고. “크로스오버 밴드 ‘두 번째 달’의 국악 프로젝트 음반 ‘판소리 춘향가’도 그 시도의 좋은 예잖아요. 판소리 그 자체의 매력을 살리면서, 굳이 다른 음악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거죠.”

‘크레즐’ 활동 이후,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김수인을 보기 위해 국립창극단 공연을 찾는 관객도 늘었다. “김수인 덕분에 국악을 알고, 국악을 알고 나니 창극을 알고, 창극을 알고 나니 ‘리어’ 9회를 전부를 관람하게 됐다”는 팬들의 소감은 그에게 창극단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운다. 인도네시아에서, 대만과 중국에서도 창극단의 공연을 보러온 관객을 만났다며, “그분들이 해외에서 오셨어도, 저는 떳떳하게 ‘우리 창극 공연, 정말 멋있죠?’라며 내 ‘본진’을 자랑할 수 있어 좋아요”라는 그의 이야기는 전통의 외연을 넓히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완성도를 끌어올린 작품의 힘을 느끼게 한다.

“판소리가 어렵거나 지루한 음악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창극단은 그 판소리의 재미를 잘 알려주는 곳이고요. 우리나라의 창극 공연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해요. 세계 대표 음악극이라고 했을 때, 오페라와 뮤지컬,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가 떠오르는 것처럼, ‘한국은 창극!’이라고 모두가 알 수 있을 만큼요. 저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창구를 열어나갈 테니, 지금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이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극장

 

Performance information

국립창극단 ‘절창Ⅳ’ 5월 17·18일 국립극장 달오름

김수인·조유아(소리)/조용수(고수), 최영훈(거문고), 황소라(가야금) 외/ 임지민(연출·구성), 김민정(대본), 박승원(음악감독), 이윤수(무대디자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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