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나눌 수 있는 인생은 축복이다, 지휘자 여자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4월 29일 8:00 오전

40th ANNIVERSARY

 

대전시향 예술감독·상임지휘자 여자경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인생은 축복이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악단과 그 너머를 준비하는 지휘자

 

남북한을 합치면 지역적 중심이 서울이지만, 남한만 보면 중심은 대전이다. 클래식 음악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환한 미소와 열정으로 기억되는 여자경이 작년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대전시향은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축하하며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교향악축제에 참가한 대전시향의 공연(4.13/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관람했다. 2부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악단을 완전히 장악한, 뛰어난 연주였다. 공연 뒤 큰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무대에 나온 여자경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그가 임기 동안 흘린 땀은 반드시 더 좋은 연주로 돌아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지 만 1년이다. 대전에서 느낀 점이 궁금하다.

‘편안함’이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한데 계속 생각나는 음식처럼, 단원들과 관객들로부터 도시 특유의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낀다.

대전시향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대전시향은 연간 약 85회의 정기연주와 기획연주를 무대에 올린다. 시리즈별로 콘셉트가 명확해 다양한 규모와 스타일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음악가에겐 정말 매력적이다. 다만, 대규모 프로그램을 연습할 때 편성 크기에 비해 연습실이 작아서 다른 연습실을 대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전 공연장 무대의 울림이 클래식 음악 공연장으로 적합하지 않아 실연에서 충분한 효과를 맛볼 수 없는 점 또한 아주 아쉽다.

악단의 발전을 위해 임기 중 최우선으로 삼는 과제는 무엇인가?

단원들이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각자 본인 파트의 임무에 충실하고, 동시에 큰 앙상블을 조화롭게 이룰 때 맛보는 행복감 말이다. 함께하는 관객도 만족해, 관람층이 더 다양해지고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대전시향의 불혹을 축하하며

5월 10일 창단 40주년 기념공연은 어떻게 기획됐나.

사무국과 함께 창단 40주년 기념 방안을 고민하던 중, 1984년 5월 2일에 열린 창단 연주회를 오마주하는 형식으로 준비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지금까지의 대전시향 첫 발걸음을 기억하고 성장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았다.

1부에서는 베토벤 3중 협주곡을 무대에 올린다. 곡 자체도 아름답지만, 바이올린·첼로·피아노의 협연은 대전시향이 추구하는 소통과 화합을 상징한다. 협연자로는 정하나(바이올린)·심준호(첼로)·송영민(피아노)이 함께한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정하나는 악단의 초대 지휘자 故 정두영(대전 침례신학대 교수 역임)의 차남이다. 초대 지휘자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더했다. 2부에서는 창단연주회 프로그램이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며 대전시향의 첫걸음을 추억한다. 대전시향의 처음을 기억하시는 오랜 팬분들이 객석을 빛내주신다면, 축하와 격려를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대전시향과의 리허설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각 파트끼리 서로의 소리를 잘 들으면서 조화로운 연주를 하는 것이다. 좋은 오케스트라는 파트 간 앙상블이 잘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다. 대전시향을 지휘자에 따라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기가 탄탄한 오케스트라로 만들고 싶다.

 

자연스럽게 걷게 된 지휘자의 길

지휘자라는 꿈을 영글게 한 경험은 무엇이었나?

그저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학부 과정으로 작곡과에 진학했다. 당시 우연히 오페라 작업에 피아니스트로 참여했고, 한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 지휘과에 입학했다. 빈에서 유학 중에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연스레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빈 국립음대에서 레오폴트 하거(1935~)를 사사했다.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있다면?

귀한 가르침을 정말 많이 받았다. 레오폴트 하거는 빈 국립음대에서 빈 정통 클래식 계보를 잇는 마지막 교수였다. 수업 시간에 하신 거의 모든 말씀을 악보에 써놓았는데, 그 내용들은 지금도 유용하다. 매우 엄격하면서도 다정한 스승이었다. 정년퇴임이었음에도 마지막 제자인 나의 졸업을 위해 한 학기를 더 수업한 후 학교를 떠났다.

그중에서도 “악보에 없는 딴짓 하지 마라. 연주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늘 생각하고 그것을 즉시 하라”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실제 오케스트라 앞에서 어떻게 리허설해야 효과적인지 가르쳐주셨던, 내 지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너무나 그리운 선생님이다.

국·공립 관현악단을 처음 지휘했을 때는 언제였나?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다. 처음 만난 KBS교향악단과 2009 교향악축제에 참여했는데, 지휘자가 리허설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이 교향악단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청중이 없으면 무대도 없다’는 지론으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언젠가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평생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모든 공연마다 공연장에 처음 오는 관객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무대를 준비하자고 다짐한다.

클래식 음악이 일반 대중에 가까워질 방법에 관해 늘 고민한다. 저서 ‘비하인드 클래식’은 작품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자는 생각으로 구성했다.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 해설도 내게 큰 기쁨이다. 관객과 눈을 맞추면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공연의 즐거움도 배가 된다.

음악이 아닌, 열중하는 취미가 있나?

요리와 제빵이다. 메뉴를 정하고,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고, 보기 좋게 차려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 기쁨을 느낀다. 이 과정은 지휘자의 일과도 매우 흡사하다. 베이킹은 몇 년 전에 독학했다. 코로나로 인해 연주가 줄줄이 취소되던 시기엔 빵집을 내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 정도다.(웃음)

K-클래식의 발전을 위해 제언한다면?

연주자는 본인이 아닌 관객을 위해 무대에 오르는 사람임을, 지휘자는 본인이나 관객이 아닌 연주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좋겠다. 음악은 혼자 즐겨도 좋지만, 더불어 나눌 때 더 큰 기쁨과 생명력이 있다. 우리 음악인들은 특별한 재능과 음악 인생을 선물 받았으니, 참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대전시립교향악단

 

여자경(1970~) 한양대와 동대학원을 거쳐 빈 국립음대에서 레오폴트 하거를 사사했다. 저서 ‘비하인드 클래식’ 출간,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 해설 등을 맡았고, 2023년 난파음악상을 수상했다. 강남심포니 상임지휘자 역임 후 2023년 5월부터 대전시향의 예술감독·상임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대전시향 제364회 정기연주회 (창단 40주년 기념)

5월 10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베토벤 3중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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