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랑자의 화려한 기록, 누레예프 컬렉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누레예프의 56년간의 삶은 짧았지만 풍요하고도 화려했다. 고양이는 9개의 삶은 지녔다지만 누레예프 역시 여러 삶을 누렸다


▲ 1984년 파리 오페라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입었던 로트바르트 의상

세계적인 발레 무용가, 레퍼런스가 된 안무가이자 아트디렉터, 말년에 실현해낸 음악가로서의 삶, 그리고 놀라운 컬렉터로서의 열정적인 삶. 루돌프 누레예프의 삶을 한자리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추모의 장소가 발족되었다. 올해 10월 19일부터 물랭 무대의상 박물관에는 누레예프 컬렉션이 영구 전시로 자리 잡았다.
10월 19일부터 관객에게 공개된 이번 전시는 전날인 18일 물랭 시 시장, 프랑스 문화성 관계자들, 누레예프재단 회장과 누레예프의 친구들이 모여 기념 테이프를 끊었다. 그중에는 누레예프의 마지막 동반자였던 샤를 쥐드(보르도 그랑 극장 발레단 예술감독)도 있었다. 누레예프는 생전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경력을 추모하며 박물관이나 전시 형태로 나의 이름이 전승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러시아에 사는 그의 가족, 특히 여동생들과 누레예프 재단 간의 유산상속 투쟁이 치열했다. 그중 누레예프 재단이 700점을 확보하게 되어 서거 20주년이 되는 올해 그의 염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대를 앞서간 누레예프의 시선
누레예프 컬렉션은 총 350제곱미터에 세 개 파트로 전시된다. 첫 파트는 발레 무용가로서의 경력에 관한 것이다. 어두운 조명 가운데 반짝이는 진열 케이스 속에는 누레예프의 하얀 토슈즈와 그가 입었던 발레복들이 들어있다. 대부분 비단 같은 섬세한 천들로 만들어진 까닭에 조명장기 노출에서 오는 손상을 피하기 위해 교체되며 전시될 예정이다. 이중 1962년 ‘호두까기 인형’ 공연 중 파드되에서 입었던 코발트색 의상을 볼 수 있다. 누레예프는 어깨가 무척 넓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 3막에서 입은 초록 벨벳 장식의 푸르푸앵, ‘라 바야데르’에서 입은 은색 레이스의 하얀 벨벳 의상은 그야말로 오트 쿠튀르 못지않은 작품이었다.
그 의상들을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발레 의상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레예프 몸에 맞게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이 좀더 구속 없이 출 수 있도록 옷을 개조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팔을 높이 드는 데 지장이 없도록 소매가 올라갔고, 허리 위로는 길이가 짧아졌다. 누레예프 파트너들의 의상도 함께 전시되었는데, 일명 “누레예프 튀튀”라 불리는 의상도 특이했다. 종래의 짧고 둔부가 보이는 납작한 튀튀가 약간 길어진 형태였다. 누레예프는 발레리나들의 둔부가 노출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 이러한 튀튀를 고안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무용수들이 입던 반바지를 벗어던지고 편안한 타이즈 차림으로 춤추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누레예프였다. 남성의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즈 차림은 당시로서는 상상 밖의 발상이었다.

두 번째 파트는 전기적인 요소, 즉 누레예프의 경력을 담은 흑백 다큐멘터리 필름 및 공연 사진들로 구성된다. 누레예프의 러시아 시절, 그의 가족과 첫 발레 선생님의 증언, 그리고 마고 폰테인과의 듀오 등을 담고 있다. 누레예프는 모슬렘 가족에서 태어났다. 백인 같지만 눈이 작은 동양계, 즉 타르타르 계통이다. 그 당시 러시아 지방에서 남자아이가 발레무용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그의 발레 선생님은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누레예프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누레예프의 이런 강한 성격과 개성은 세 번째 파트에서 더욱 잘 엿볼 수 있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스타로서 쉬지 않고 여행하며 출중한 오브제들을 모은 컬렉터로서의 누레예프가 들고 다니던 사각 가죽 여행가방과 오스트리아 국민 여권이 전시돼 있다.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던 모자 컬렉션들이 누레예프 팬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그 주변에 전시된 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동양계 양탄자와 숄, 그리고 기모노 컬렉션들이 눈부시기만 하다. 19세기 말 킬림 양탄자와 19세기 프랑스에서 제작된 양모 숄, 누레예프가 자주 등에 두르고 다녔던 겐조의 숄 또한 컬렉션 중 하나다. 마치 차곡차곡 접히는 거대한 육첩 병풍처럼 새들과 나뭇잎들로 구성된 금색 기모노, 주역 모티브로 장식된 20세기 중국 무대의상은 압도적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차판이라는 기모노형 베스트 역시 화려할 뿐만 아니라 연극적이다.
그 주변으로 여러 가지 금속 혁대 같은 오브제들이 보이는데, 특히 여러 가지 금속으로 된 찻잔 컬렉션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컬렉션 리스트는 섬유 계통과 오브제에 그치지 않는다. 누레예프는 도시 건축에 심취하여 건축 데생들을 즐겨 수집했다. 그중 베로나의 원형극장 건축 데생 3점, 1564년 당시 피렌체 지형 데생 등을 볼 수 있다. 그의 건축에 대한 관심은 연극화 과정을 담은 무대장치 데생으로 승화된다. 1674년 빈에서 공연된 안토니오 드라기와 J. H. 슈멜처가 작곡한 오페라의 무대를 그린 데생이 그것이다.
그중 압권은 누레예프의 살롱을 재현한 것이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는 센 강변에 볼테르라 불리는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무수한 컬렉션이 아파트 실내를 장식했고, 친구들과 나눈 파티는 그의 컬렉션만큼이나 화려했다고 한다. 누레예프는 정평 난 연극 무대장식가 에치오 프리제리오와 줄리아노 스피넬리에게 실내장식을 청탁했다. 화려한 무늬의 가죽으로 된 벽장식, 물색 바탕에 금박과 꽃무늬가 들어간 제네바 벨벳 소파, 그리고 천정과 벽을 구분하는 유리 진열장으로 장식되었다. 고증된 살롱은 하워드 하빌랜드라는 지역 예술가가 2주 만에 석회와 페인트로 다시 만든 것으로 아주 그럴싸했다. 그의 그림 컬렉션들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중 일부가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 16세기 프랑스 유채화 같은 젊은 청년의 초상화, 아킬레스의 나체를 그린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1984년에 그는 에이즈 선고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누레예프는 1980년대 말 지휘자로서 데뷔했는데, 뵘·캬라얀·번스타인 같은 마에스트로들은 한결같이 그가 지닌 음악성을 칭찬하며 지휘자로서의 길을 권유했다고 한다. 스모킹 옆에는 그의 지휘봉과 메트로놈, 그리고 20세기 호프베르크 사의 하모늄도 전시되어 있다. 그 뒤로는 파리 근교 생 주느비에브 데 부아스의 러시아인 묘지에 있는 그의 묘지 사진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무대의상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은 그의 컬렉션도 만날 수 있다

컬렉션이 완성되기까지
개막식 후 리셉션장에서 이번 컬렉션을 가능케 한 주역들을 만나보았다. 위그 갈은 누레예프가 파리 오페라극장 발레 아트 디렉터로 부임했을 때 극장장 롤프 리베르만 휘하에서 재직했었다. 그 후 그는 누레예프 재단의 주된 일원이 되어 이 프로젝트의 후원자들 중 한명이 되었다. 프랑스 문하성 소속의 프로젝트 담당자 중 일원은 이 프로젝트가 2008년에 시작되었지만, 당시 의상 보관실로 쓰이던 현재 전시실을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후원자는 이번 전시에 비디오 안전 시스템을 설치한 로베르 보네다. 그의 회사는 기능 메세나로서 기술을 제공하며 이 프로젝트가 합류하게 되었다. 그의 부인은 “아주 작은 우리 도시에 누레예프라니, 믿어지세요? 오늘처럼 명사들이 모이고 이처럼 많은 관객이 이곳에 왔다는 것이 기쁠 뿐입니다”라며 메세나의 중요성을 밝혔다.
1970년대부터 누레예프의 공연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은 팬 위그 라베는 또 어떠한가! 그는 누레예프를 보기 위해 아예 에어 프랑스에 입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드디어 런던행 비행기에서 누레예프를 만났다. 그리고 누레예프가 공연할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런던에 간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정작 위그 라베가 극장 앞에 도착했을 때 표가 완전히 매진되어 그날 저녁 공연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누레예프에게 메모를 남겼고, 누레예프는 그의 호텔에 답신을 보냈다. “당신을 위해 서서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오!”라고 말이다. 라베는 “서거 20년이면 팬들의 뇌리에서 흐려질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는 그의 진가를 다시 발견할 수 있지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누레예프의 진가는 무엇인가? 물랭 무대의상 박물관의 관장인 델핀 피나사는 이곳 박물관의 성격으로 보아 누레예프 전을 꼭 유치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자주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대의상을 기증받아 문화유산으로서 보존·전수하는 것이 그곳의 본질적인 임무니 말이다. 그녀는 이렇게 응답했다. “우리는 최근에도 도미니크 바구에 컬렉션 등을 기증 받았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기증 받은 모든 의상을 전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영구 전시를 하지는 않습니다(이곳 전시는 모두 단기전으로,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무대의상 전시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누레예프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라며 20세기 발레 사에서 그가 독보적인 존재임을 재차 강조했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Pascal Franccois/CN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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