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김동균·박지은·이영수

오직 음악이 만들어준 변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발달장애청소년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서울시향 수석 박지은의 행복한 만남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다리는 것. 발달장애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를 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이다. 하나의 사회로 비유되는 오케스트라는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소리를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해줬다.
플루티스트 이영수·김동균은 발달장애청소년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단 멤버다. 현재 한예종 음악원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인 전문연주자로서의 길을 누구보다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지난 2006년 창단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연간 30여 회 이상의 연주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오로지 발달장애청소년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해외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이들의 음악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란 자폐·지적장애 등 또래와 비슷한 신체발달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적 능력이 낮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성 장애를 말한다.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다른 사람과 원활하게 대화를 하고 어울려 지내는 사회성이 부족한 발달장애아동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오케스트라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5분도 채 앉아있지 못했던 아이들은 두 시간에 가까운 공연뿐 아니라 연습 시간에도 자리를 지키며 진지한 모습으로 음악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타인을 배려하면서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음악을 통한 협동과 조화를 하나씩 체득해나가는 중이다. 더 나아가 아이들은 음악학도로서, 전문 연주자로서 각자의 꿈을 선명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영수는 하트하트재단이 기획한 ‘위드(With) 콘서트’를 통해 생애 첫 리사이틀 무대를 가졌다. 저명 연주자가 발달장애 연주자의 멘토로 함께하는 이날 공연에는 플루티스트 박지은과 피아니스트 박진우가 영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 앙상블 연주를 선보였다. 이후 아이들의 음악 멘토로 지속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박지은과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플루트 단원인 이영수·김동균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오직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음악을 대하고 있는 두 사람의 현재를 박지은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 박지은

플루티스트 박지은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음악이 건네는 감동”

저는 요즘 12월에 있을 조금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공연인지, 제가 왜 그 연주에 함께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죠? 제가 만난 특별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할게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아이들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플루트를 연주하는 이영수·김동균이에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두 친구도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행동은 어린아이 같아요. 영수는 어디에서 만나든 “박지은 선생님!” 하고 부르면서 달려와요. 주위 사람들이 보든 말든 두 손을 모아서 하트도 그려주고, 어깨도 주물러줘요. 만나서 반갑다는 표현이죠. 처음엔 그런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지,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사라졌어요. 제 의지로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먼저 손을 내밀고 서로가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보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이젠 누군가 이 친구들이 발달장애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딱히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예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랄까요. 보면 볼수록 음악을 하는 비장애인 아이들과 다른 점을 잘 모르겠어요.
지난 10월에는 ‘위드 콘서트’를 통해 영수와 처음으로 함께 연주를 했어요. 그전부터 영수가 어떤 아이이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건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주를 앞두고 나니 영수가 솔로곡을 어떻게 연주할지, 우리가 서로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지 궁금증도 생기고 걱정도 되었어요.
공연 당일, 영수는 자신이 맡은 곡들의 악보를 모두 외워서 뚝딱 연주해냈어요. 집중력뿐만 아니라 음악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드는 모습을 보니, 잠깐이나마 염려했던 제 생각이 영수에게 미안하게 느껴졌어요.
그날 영수의 솔로 연주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앙상블 능력이 참 대단했어요. 앙상블은 서로 잘 들어야 하잖아요. 비장애인조차도 앙상블을 할 때면 패닉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가 하는 연주 말고도 다른 사람의 것을 듣고 맞춰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영수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어요. 호흡 맞추는 것이 몸 안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느낌이었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훈련을 잘 받아선지, 본래 능력을 타고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기다릴 줄 알고, 다른 사람과 연주를 탁월하게 맞춰내는 모습이 정말 놀라웠어요. 영수와 동균이가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그래서 더더욱 들었어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성실하게 연습하고, 순수한 마음과 감정이 음악에 그대로 담겨 표현되니까 어떤 면에서는 비장애인 친구들보다 더 뛰어난 부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고 외적인 요소에 방해를 많이 받잖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은 순수하게 음악만을 보고 그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좋아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오히려 제가 배우는 점들이 많죠. 저는 궁금해요. 이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음악세계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말이에요.
음악은 결국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잖아요. 저 역시 다른 연주자들과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실어낼 무언가가, 그것이 음악이라서 참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요. 이 아이들도 똑같지 않을까요. 음악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는 거죠. 비장애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재능으로 만들어내는 음악 말이에요.
대개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잘 모르니까, 먼발치에서 그저 막연하게 하는 생각들이 오해와 편견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이 아이들은 무대에서 무엇과도 닮지 않은, 따뜻함과 감동을 세상에 전하고 있어요.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완주하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더 걸릴 수 있겠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대하는 모습 그 자체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함께하는 기성 연주자들에게도 깨달음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2월에 있을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연주회도 기꺼이, 즐겁게 참여하겠다고 얘기했고요.
하나님이 아이들에게 선물로 준 재능이 좋은 인연과 주변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통해 아름답게 싹을 틔우고 있어요. 누구나 그렇듯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이 친구들에게 더 많은 음악 멘토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


▲ 김동균

이영수·김동균의 이야기
“천 번의 연습이 주는 기쁨”

이영수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다. 영수의 꿈은 해외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다. 어릴 적 또래 아이들이 말문을 틀 시기에, 영수는 다른 사람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한 가지 행동만 반복하는 발달장애 증상을 보였다. 그러던 중 2006년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플루트를 접하게 됐다. 음악과 오케스트라 연주로 채워지는 생활은 좁은 시선으로 작은 세상을 보던 영수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음악 때문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영수에게 조금씩 생겨났다. 기초생활을 이어가기에도 빠듯한 형편에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때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연주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다. 그런 영수의 꿈은 전국학생음악콩쿠르 최우수상(2007·2008)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결실을 맺으며 서서히 짙어지고 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으로는 처음 음악대학 진학의 꿈을 이룬 영수는 백석대·숭실콘서바토리를 거쳐 올해 특수교육대상 특별전형으로 한예종 음악원에 입학했다. 천 번의 연습이 오늘을 있게 한 것처럼, 앞으로 전문사 과정까지 마치면 외국 연주자들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며 해외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것이 요즘 영수의 꿈이다.
올해 스물한 살인 김동균은 한예종 특수교육대상 특별전형 첫 입학생으로 이영수보다 한 해 앞선 2012년에 입학했다.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자폐성 장애가 발견된 동균이는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을 같이 받으며 자라왔다. 그러던 중 중학교 1학년 무렵 우연한 기회에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폐 성향으로 늘 혼자 있던 동균이에게 평생을 함께할 친구가 생긴 순간이었다. 음악은 동균이에게 “더 잘하고 싶다”라는 의지와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콩쿠르에서도 비장애인과 겨뤄 순위에 오르는 실력을 갖추게 된 데에는 오로지 음악에 대한 즐거움과 성취감,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악을 시작하면서 줄곧 “나는 한예종에 다닐 거야”라고 말하던 동균이는 그 말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내고 있다. 요즘 동균이의 꿈은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온 그 힘으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음악의 깊은 바다를 향해 헤엄쳐가는 중이다.


▲ 이영수

“여럿이서 다른 악기를 가지고,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 재밌다”라고 이야기하는 영수와 동균이는 가을부터 시작한 목관 워크숍을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으로 꼽았다.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경쟁하듯이 줄줄 읊어대더니, “합주를 하면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두 사람은 매일 대여섯 시간씩 개인 연습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엄마가 좀 쉬었다 하라고 말해도 그날 계획한 목표치에 다다르지 않으면 쉽사리 악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연습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연습이 더 재밌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저 음악이 좋고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한 아이들. 천 번 만 번의 연습과 노력 끝에 오른 무대에서 쏟아지는 갈채는 아이들에게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고 싶다는 다짐과 용기를 심어줬다.
오늘 그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모든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고 있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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