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 폴란드 뎅비차 생
1959 ‘다윗의 시편’ ‘에마나치오넨’ ‘스트로펜’으로 폴란드 작곡 콩쿠르 석권
1960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작곡
1962 무반주 합창음악 ‘슬픔의 성모’ 작곡
1992 광복 50주년 기념해 교향곡 5번 ‘한국’ 작곡
2002 피아노 협주곡 ‘부활’로 9.11 테러 추모
2013 바르샤바에서 탄생 80주년 페스티벌 개최
펜데레츠키는 국내 음악팬들에게 친숙한 작곡가다. 우리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바탕으로 한 그의 교향곡 5번은 1992년 한국에서 초연됐고, 지난 2009년 한폴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내한 공연에선 펜데레츠키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교향곡 8번을 연주하기도 했다. 공연 당시 이 교향곡에 담긴 ‘인생무상’과 ‘부활’의 메시지는 청중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고 객석 곳곳에선 열광적인 환호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대음악 연주회에선 드문 일이다. 현대음악이라면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시대에도 펜데레츠키의 음악만큼은 여러 음반과 음악회를 통해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동시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고 있는 작곡가 펜데레츠키, 그는 과연 누구인가?
바이올린보다 작곡이 더 좋았던 폴란드 소년
널리 알려진 작곡가들 중에는 음악가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지만 펜데레츠키는 그렇지 않다. 1933년 11월 23일, 폴란드의 뎅비차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펜데레츠키는 취미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틀에 박힌 방식의 피아노 교습은 그에게 별로 맞지 않았다. 반항적인 그를 가르치던 피아노 교사들은 그를 ‘다루기 힘든 학생’이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가르치는 일을 포기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내야 했던 펜데레츠키는 전쟁이 끝난 후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면서 음악에 급격히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 스타니스와프 다르와크는 군악대장으로 나중에 작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기도 했다. 아마도 펜데레츠키의 작품 속에서 현악기의 연주 기법이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관현악의 색채감이 뛰어난 것은 어린 시절 스승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년기의 펜데레츠키는 이른 새벽부터 바이올린 연습을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음악가가 될 생각은 별로 없었다. 음악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던 그는 엔지니어나 해군장교가 될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평생을 음악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크라쿠프 음악원에서 5년 과정의 바이올린 전공 과정을 단 2년 만에 졸업한 후 크라쿠프의 대학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면서 드디어 작곡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펜데레츠키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바이올린보다 작곡 공부에 더 몰두하는 것을 우려했지만 그는 주변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작곡 공부에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특히 교회음악에 심취해 옛 교회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여자 친구가 그에게 선물한 바흐 전집 악보를 틈틈이 들여다보며 바흐의 음악에 깊이 매료되기도 했다. 당시 펜데레츠키의 작곡 수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아르투르 말라프스키는 펜데레츠키에게 현대음악의 주요 흐름과 경향을 전수했으나, 말라프스키는 펜데레츠키를 만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운명을 바꾼 세 작품, 콩쿠르를 휩쓸다
스승 말라프스키의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은 펜데레츠키의 졸업 작품이자 첫 주요 작품이 되었다. ‘레퀴엠’이 1958년 크라쿠프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됐을 때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곡은 펜데레츠키의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1959년, 펜데레츠키는 세 곡의 주요 작품을 연달아 발표했다. ‘다윗의 시편’ ‘에마나치오넨(Emanationen)’ ‘스트로펜(Strophen)’이 바로 그것이다. 펜데레츠키는 이 세 곡을 폴란드 작곡가협회가 주최하는 작곡 콩쿠르에 출품했고, 세 곡 중 한 곡은 1위에, 나머지 두 곡은 2위에 입상했다. 당시 이 콩쿠르에선 익명으로 작품을 내도록 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여러 곡을 출품할 수 있었는데, 펜데레츠키가 입상을 휩쓰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한 사람이 하나의 작품만 낼 수 있도록 콩쿠르 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콩쿠르 입상으로 화제가 된 펜데레츠키의 초기 작품 중 ‘다윗의 시편’을 들어보면 매우 놀랍다. 이 곡은 매우 혁신적이면서도 친숙하고, 미래적이면서도 과거의 음악을 닮아 있다. 혼성합창과 현악기, 그리고 여러 타악기를 위해 작곡된 이 곡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마치 또 하나의 새로운 악기처럼 독창적으로 다뤄진다. 심벌즈를 비롯한 여러 타악기의 인상적인 연주에 이어 곧바로 절규에 가까운 합창이 들려온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와 쇤베르크의 ‘말하는 목소리(Sprechstimme)’ 기법이 혼합된 듯한 독특한 창법과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원색적인 리듬과 음색이 나타나는가 하면, 르네상스 종교 합창곡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무반주 합창부분에선 여러 성부들을 정교하게 엮어낸 대위법이 빛난다.
난해한 현대음악인 듯하면서도 고대 원시적 음향과 르네상스 교회음악의 분위기가 살아있는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특정한 음악 유형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매우 혁신적이면서도 여러 시대 양식이 자연스레 녹아있기에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한두 가지 익숙한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동시대 비극에 대한 위로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동시대의 감성을 담고 있어 더욱 친숙하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경험한 펜데레츠키는 동시대의 비극적인 사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화장실 벽에 스탈린에 반대하는 말을 적어 문제가 되기도 했던 그는 작곡가가 된 후에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자 했다.
사회 참여적 경향을 보여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한 사건으로 히로시마는 잿더미로 변했다. 그 사건 이후 15년이 지난 1960년, 펜데레츠키는 52대의 현악기로 히로시마의 비극을 고통스런 소리로 재현해냈다.
원폭이 투하되던 당시의 광경은 현악기의 갖가지 소리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현악기의 몸통을 손으로 치거나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결시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묘사하는 식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음악은 매우 전위적이지만 히로시마의 비극적인 사건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현악 오케스트라가 낼 수 있는 소리의 극한을 보여준 ‘히로시마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는 1961년 카토비체 작곡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면서 펜데레츠키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2002년, 펜데레츠키는 피아노 협주곡 ‘부활’로 9.11 테러의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2001년 테러 직후 작곡을 시작한 펜데레츠키는 2002년에 이 협주곡을 완성했고, 그해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의 피아노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낭만으로 돌아가는 노작곡가
그런데 만일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듣고 나서 그의 피아노 협주곡 ‘부활’을 들어본다면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동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사회참여적인 작품이지만 그 음악 양식은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다. 펜데레츠키가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완성하던 1960년대 초반은 펜데레츠키에겐 실험적인 시기였다.
팀파니와 하프 6대의 타악기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나클라시스’(Anaklasis, 1959), 플루트와 피아노·첼레스타·타악기·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포노그라미’(Fonogrammi, 1961), 혼성합창과 타악기 그룹, 현악기를 위한 ‘시간과 침묵의 차원들’(1960) 등의 작품들은 지금 들어도 매우 파격적이다. 이 작품들은 여러 현대음악제에 소개되며 주목받았는데, 당시 펜데레츠키가 시도한 전자음향과 테이프 등을 이용한 실험적인 시도는 매우 전위적이고 참신한 음향으로 나타난다.
반면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2002년에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부활’은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상시키고 있어 구시대 음악으로 되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이 피아노 협주곡이 ‘아나클라시스’를 작곡한 펜데레츠키의 작품이라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던 펜데레츠키의 성향을 보면 이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항상 시대의 요구에 민감했던 펜데레츠키는 1970년대부터 음향의 새로움보다는 음악작품의 논리적 구조와 낭만성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그의 교향곡 2번 ‘크리스마스 교향곡’(1980)에서부터 더욱 강한 낭만주의적 성향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흔히 ‘신낭만주의’라 불리는 이런 경향은 그가 완성한 8개의 교향곡에 강하게 나타나는데, 말러와 쇼스타코비치를 연상시키는 그의 교향곡들이 음악 애호가들에게 폭넓게 수용되는 것도 그의 음악에 담긴 낭만적 감성과 독특한 색채감 덕분일 것이다.
지난 2009년 내한한 펜데레츠키가 폴란드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선보인 교향곡 8번 ‘덧없음의 노래’(2007)는 죽음과 영생의 메시지를 담은 독일어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성악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과 매우 유사하다. 객석 위쪽에서 들려오는 베이스 트럼펫 소리는 말러 교향곡 2번에 등장하는 심판의 나팔 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활로 그은 탐탐의 음향과 대금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알토 플루트의 연주, 여러 대의 오카리나가 참여하는 합주는 말러의 교향곡과는 또 다른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작곡가 펜데레츠키는 난해한 현대음악을 수용 가능한 음악으로 바꿔냈다는 점에서 이 시대 현대음악 작곡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 80여 년간 특정 음악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꾀하며 시대가 요구하고 음악을 생산해낸 그는 진정 자유로운 음악가다. 그는 과연 또 어떤 음악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 그의 다음 작품이 몹시 기다려진다.
글 최은규
최은규는 부천필하모닉 제1바이올린 부수석을 역임하고, 현재는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음악의 기쁨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펜데레츠키 탄생 80주년 기념 내한 공연 리뷰
거장이 선보인 동시대 음악의 감동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인 2013년은 ‘현대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탄생 80주년이기도 했다. 지난 12월 펜데레츠키의 80회 생일을 기념하는 서울국제음악제가 16일부터 20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IBK챔버홀에서 펼쳐졌다. 음악제 마지막 날인 12월 20일, 거장 펜데레츠키는 직접 지휘봉을 잡고 그의 교향곡 7번 ‘예루살렘의 일곱 문’을 한국 초연했고,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는 펜데레츠키의 비올라 협주곡을 첼로 버전으로 연주했다. 그날 현대음악의 거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청중으로 예술의전당 주차장은 일찍부터 많은 차들로 꽉 들어찼다.
드디어 무대로 모습을 드러낸 80세의 펜데레츠키는 매우 건강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KBS교향악단을 이끌며 놀라운 음악세계를 펼쳐보였다. 아르토 노라스의 협연으로 선보인 첼로 버전의 비올라 협주곡은 1983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성음악은 아니지만, 3도 음정을 중심으로 한 모티브의 통일성과 환상적인 음향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첼로 연주를 맡은 노라스는 이 곡의 난해한 기교를 넘어서 이 복잡한 음표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명인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휴식 후 연주된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7번 ‘예루살렘의 일곱 성문’(1996년 작)은 작곡가가 직접 고안한 튜바폰이란 타악기가 등장하기에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석 뒤쪽 양옆에 배치된 거대한 튜바폰뿐만 아니라 합창석 중앙을 메운 국립합창단과 서울시합창단원들, 합창석 양옆에 배치된 관악 밴드, 무대 앞쪽에 자리 잡은 다섯 명의 독창자와 내레이터의 모습만으로도 이 곡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자 압도적인 합창이 터져 나왔다. 구약성서의 시편과 이사야서, 그리고 에스겔서의 ‘마른 뼈의 환영’을 내용으로 하는 가사와 색채감 있는 관현악이 한데 어우러져 신에 대한 찬양과 인간 구원의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됐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교향곡 연주가 모두 끝나자 펜데레츠키의 음악에 깊이 감동한 청중은 현대음악의 살아있는 거장에게 환호와 박수 갈채를 보내며 열광했다. KBS교향악단 단원들은 생일축하 음악을 연주하며 펜데레츠키의 80회 생일을 축하했다. 이번 공연은 이 시대 감성을 담은 이 시대 음악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새삼 일깨워준 값진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