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를 맞이해 빈 소년 합창단 500년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 김보미와 소년들의 경쾌한 발걸음이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 카펠마이스터는 그야말로 ‘멀티맨’이다. 일단 합창단원들과 무대에 오르면 카펠마이스터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지휘를 하면서 틈틈이 사회까지 본다. 공연이 끝난 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고, 소소한 건강 상태까지 체크하는 것도 모두 카펠마이스터의 몫이다. 빈 소년 합창단 카펠마이스터는 딱 하나만 잘하는 것만으론 안 되는 자리임에 틀림없다. 지난 2012년 9월, 빈 소년 합창단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500년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로 김보미를 택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빈 소년 합창단의 첫 한국인 지휘자이기도 하다. 빈 소년 합창단이 내부 출신을 지휘자로 선임하는 관례를 깨고 이 같은 파격을 택한 데에는 김보미에게서 실력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 아이들의 순수한 소리를 끌어내고 조화롭게 만드는 능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김보미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와 합창 지휘를 했다.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곤 부모의 뜻을 존중해 호텔경영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하지만 음악은 김보미를 본래 가야 할 길로 불러냈고, 그녀는 과감하게 자퇴를 택했다. 이후 연세대 교회음악과를 거쳐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합창지휘와 오르간을 전공한 김보미는, 빈 국립음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지도교수의 권유로 빈 소년 합창단 오디션에 지원해, 여성 지휘자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이지만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했기에 오늘의 자리가 허락될 수 있었다. 총 100여 명으로 구성된 빈 소년 합창단은 모차르트·하이든·슈베르트·브루크너 4개 반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그중 김보미는 모차르트반을 맡아 10~14세 나이의 스물여섯 명 소년들과 함께 거의 종일 생활한다. 카펠마이스터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지난해와 달리, 이젠 악보를 준비하거나 아이들과 연습하는 과정들이 익숙해지고 노련해졌다. 요즘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매일 저녁마다 열리는 공연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또 해외 투어에서 선보일 곡들을 준비하는 데도 한창이다.
“제가 아이들 앞에서 재롱부릴 때가 많아요”
1월 18~19일, 빈 소년 합창단을 이끌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오르는 지휘자 김보미를 전화로 먼저 만났다. 1년 중 3개월은 해외 투어를 다니고, 현지에 있을 때도 일요일이면 왕궁 미사에, 평일에는 오스트리아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순회 연주를 하는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 없이 무척 경쾌하고 힘이 넘쳤다. “빈 소년 합창단은 학교·기숙사·합창단의 세 시스템이 같이 맞물려 돌아가요. 아이들이 1년에 소화하는 곡은 200~300곡 정도인데 중세 교회 음악부터 세계 각국의 민요,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 주된 레퍼토리죠. 일주일에 서너 번씩 성악 테스트를 받고, 그와 별도로 악기를 배우고 음악 이론 수업도 들어요. 평소엔 축구도 하고 장난치면서 놀지만 연습 시간만 되면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죠.” 10개국에서 온 개구쟁이 소년들과 그녀의 나이는 꽤 차이가 나지만, 세대 차이를 느낀 적은 딱히 없다. 아이들과 놀 때는 정말 친구처럼, 연습할 때만큼은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선생님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그녀가 아이들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비결이다. 여기에 날마다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고, 합창단원으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김보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다. “합창의 가장 큰 매력은 한 목소리로 텍스트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요. 아이들이 음악을, 무대를 즐기면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힘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어요.” 빈 소년 합창단의 레퍼토리 중에서도 슈트라우스의 왈츠 곡들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합창단 활동을 하는 내내 부르는 단골 레퍼토리인데도 노래만 시작하면 모두가 눈빛을 반짝이며 신 나게 부른다고. 빈 소년 합창단 레퍼토리 가운데 김보미는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특히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어서다. 그중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모차르트의 ‘무한한 우주의 창조자를 찬양하라’이다.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이 창조자를 칭송하는 내용의 칸타타 형식의 작품으로 곧 있을 내한 공연에서 들을 수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역시 그녀와 합창단원들이 사랑하는 곡이자, 이번 무대에서 신 나는 분위기를 이끌어낼 곡이다. 더불어 한국에서 갖는 무대이기에 특별하게 준비한 곡도 있다. 이영조가 우리 민요 ‘아리랑’에 슈베르트의 가곡 ‘들장미’의 주요 동기를 가져와 만든 ‘아리랑 고개 위의 들장미’이다. 우리 고유의 선율을 빈 소년 합창단의 순수한 음성으로 듣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 해에 30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하는 합창단, 그것도 소년 합창단원들의 컨디션을 매번 최상으로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보미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리허설에서 단원들의 집중력을 하나로 모으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오히려 제가 아이들 앞에서 재롱부릴 때가 많아요. 매일 반복되는 연주 속에서 아이들이 무대를 식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만들려고 노력하죠. 동기부여를 시키고 에너지를 가장 높은 지점까지 끌어올리는 게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부분이에요.”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가장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일생의 목표라고 말하는 김보미. 빈 소년 합창단 카펠마이스터인 동시에 쇤베르크 합창단 솔리스트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현재 빈 국립음대에서 박사 과정으로 그레고리안 성가에 관해 연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중이다. 쉬는 날이면 요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지만 요즘 스케줄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래도 그녀는 “음악이 내겐 매일 먹는 밥”이라고 외친다. 그 긍정과 열정이, 지휘자 김보미와 빈 소년 합창단과의 만남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