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 주자가 박자 세다 놓쳐서 심벌즈를 못 쳤대.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내려왔다네. 하하하!” 타악기 주자들을 놀리는 짓궂은 농담이다. 이 우스갯소리 중 극소량은 사실이고,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같은 경우 타악기 주자들이 각자 심벌즈·트라이앵글·큰 북 하나씩만 맡으니 말이다. 그것도 3악장까지는 내내 쉬다가! 하지만 바쁠 땐 악기 연구, 악기 준비에 심지어 제작까지 해야 하는 직업이다.
악보에는 단순하게 ‘종’으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해석에 따라 어떤 종을 준비해야 할지는 타악기 주자의 몫이다. 세종문화회관 옆에 위치한 서울시향 연습실에 들어가니 ‘악기 찾아 삼만리’ 사연을 제각각 간직하고 있는 담긴 타악기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모여 있는 악기들은 모두 말러의 10개 교향곡에 등장하는 타악기들! 드라마틱하고 진중한 소리를 좋아하는 정명훈 지휘자는 특별히 자신이 원하는 음색을 찾기 위해 무수한 악기를 새로이 제작했다. 악기에 대한 공부와 본능적 감각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색채를 제안해내야 하는 타악기 주자의 존재는 오케스트라 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말러 교향곡의 타악기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해준 서울시향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한국 오케스트라 중에 타악기 수석이 서울시향에만 없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자랑하는 말러 교향곡에서 때로는 약방의 감초처럼, 때로는 주인공이 되어 툭 튀어나오는 타악기는 연주회 때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러 악기들에 묻혀 뒤에 콕 박혀 있는 타악기가 잘 보이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공부해두자. 알고 보면 더 잘 들리는 타악기 세계로 안내한다.
탐탐 말러 교향곡 2번에는 여러 사이즈의 탐탐이 등장한다. 1번 교향곡 3악장 끝부분에도 탐탐이 나온다. 중국의 악기인 동라(銅鑼)가 유럽으로 수입되어 오케스트라용으로 만들어진 대형의 공(gong)을 이르며, 탐탐은 음색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에드워드 최는 탐탐의 크기가 충분히 커서 탐탐의 음정이 오케스트라 전체와 맞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탐탐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징 같은 둔탁한 어두운 음색이 특징인데, 크기가 너무 작으면 음정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아 오케스트라의 음과 겹쳐버린다는 것이다. 탐탐의 활약이 궁금하다면 말러 1번 3악장에 등장하는 탐탐의 솔로를 기대하자.
베이스 차임 5미터 가량 되는 높은 베이스 차임은 어느덧 서울시향 말러 교향곡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악보에는 낮은 벨(low bell)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며, 지휘자에 따라 벨의 종류를 결정해야 한다. 정명훈은 깊고 낮은 소리를 내기 위해 엄청나게 큰 베이스 차임을 주문해 사용한다. 드라마틱한 시각 효과도 고려했다. 베를린 필은 좀더 높은 음정이 나는 벨 플레이츠(bell plates)를 사용한다. 말러 음악세계에 대한 책을 집필한 철학자 아도르노는 여기의 종소리를 “기독교식 종소리가 아닌 중국인들의 장례를 치를 때나 나옴 직한 것”으로 표현했는데, 그의 표현대로 장례를 치를 때나 나옴 직한 엄중한 소리에는 이 높디높은 시커먼 베이스 차임이 적격이지 않나 싶다. 에드워드 최는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다. 이제 연주를 많이 하다 보니 익숙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연주 때는 괜히 좀 떨릴 때가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권유로 망치를 들고 흔들거리는 사다리 위를 올라가보니 손이 떨려서 망치를 휘두르지 못할 만큼 아찔했다.
카우 벨 말러는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을 그려내고 싶을 때 카우 벨, 즉 워낭을 사용했다. 찰랑찰랑 소리가 청량해보이기만 하는데, 카우 벨도 종류가 매우 다양하단다. 에드워드 최는 “제각각 음정이 다 다르다”라며 카우 벨을 휙 돌린다. 벨 뒤에는 몰래 메모라도 해둔 듯 음정이 사인펜으로 큼직하게 적혀 있다. 음정을 미리 정해놓고 연주하는 악단도 있고, 랜덤으로 여러 악기를 울리는 경우도 있다. 워낙 종류도 다양하고 카우 벨마다 나타내는 음색도 달라 말러는 자신이 지휘를 할 때마다 카우 벨을 챙겨다녔다 한다. 말러 교향곡 6번과 7번에 등장하는데, 7번은 무대 밖에서 연주하니 실물이 궁금하다면 6번 교향곡 연주회 때 잘 챙겨 봐두시길.
벨 플레이츠 벨 플레이츠는 기본적으로 교회 종을 흉내 내 연주용 악기로 제작한 것이다. 서울시향에서는 말러 7번 연주 때 사용한다. 사실 에드워드 최는 아바도가 지휘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DVD를 보고 말러 2번 교향곡에서도 벨 플레이츠를 준비했다. ‘벨’이라고만 간단히 적혀 있는 악보를 보고 많은 타악기 연주자들은 고심하며 선례를 공부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게 전통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준비된 벨 플레이츠 소리를 듣자마자 “아니야,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말러 교향곡 2번 공연 시에는 염광여자고등학교에서 교회 종을 두 개나 빌려다 연주한다.
심벌즈 심벌즈도 종류가 다양하다. 다 같은 심벌즈인 줄 알았더니 오케스트레이션에 따라 심벌즈의 높낮이를 결정해야 한단다. 악보에는 딱히 어떠한 음색을 내라고 적혀 있지는 않는데, 에드워드 최는 이에 대해 “타악기 연주자들은 그런 면에서 창조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라며 자랑스레 말했다. 심벌즈의 크기가 크고 두께가 두꺼우면 무겁고 닫힌 소리가 나고, 크더라도 두께가 얇으면 가벼운 소리가 난다. 넓은 소리, 큰 소리 등 지휘자가 지시하는 바에 맞춰 악기 창고에 진열된 여러 종류의 심벌즈 중 알맞은 것을 간택해야 한다. 서울시향은 30여 쌍의 심벌즈를 보유하고 있다. 말러 교향곡 8번과 9번의 클라이맥스는 심벌즈가 담당한다.
해머 웬만한 여성은 한 번 들기도 쉽지 않은 거대한 해머(망치)는 말러 교향곡 6번의 상징이다. 첫 연습 때는 이보다 작은 크기의 악기를 사용했으나 정명훈은 훨씬 과격한 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떡메 같은 해머!
에드워드 최에게 관객석에서 듣기에도 소리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직접 치는 연주자는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타악기 자리가 제일 안 좋아요”라며 운을 뗀다.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타악기 주자들은 호른 바로 뒤에 위치하는데, 호른 벨이 뒤에 있어서 그 큰 소리가 타악기 주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와 괴롭단다. 그래서 연주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귀마개를 끼고 있어야 할 정도라고. “그래서 해머를 치는 순간엔 호른 주자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거군요”라고 말하자 장난스럽게 껄껄 웃는다.
베이스 드럼 베이스 드럼은 곧 큰북인데, 우리가 아는 큰북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란다. 우선 가죽 피(皮)인지, 플라스틱 피인지가 구분되며, 채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서울시향이 가죽 피를 고집하는 이유는 따뜻하고 동그란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습기 조절이 안 돼 관리가 어렵다는 것.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물에 젖은 수건을 넣어 집어넣기도 하고, 공연 중에 음정이 올라가지는 않나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채의 종류가 여러 개인 이유는 소리의 볼륨과 음색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채에서 나는 소리는 다소 가벼운 편인데, 정명훈 지휘자는 무겁고 어두운 소리를 요구할 때가 있어 나무 대신 쇠파이프가 박힌 채를 새로 제작했다. 에드워드 최는 이를 위해 청계천 근처 철물점에서 파이프를 직접 사왔다.
실로폰(위)과 글로켄슈필(아래) 실로폰은 쇠, 마림바는 나무라고 외워뒀다면 둘 중 무엇이 실로폰인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여기 있는 실로폰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쇠로 만든 실로폰을 사용하는 오케스트라도 많지만 서울시향은 나무를 고집한다. 실로폰은 튜닝과 울림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따로 있으며, 수십 종류의 채로도 음색을 달리할 수 있다. 오페라 ‘마술피리’ 같은 경우엔 가벼운 음색을, 뒤카의 ‘마법사와 제자’ 같은 곡에는 매우 크고 거침없는 소리를 내야 한다. 특히 서울시향은 현대음악 시리즈를 진행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러 종류의 채를 구입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금속판을 가진 글로켄슈필은 밝고 긴 잔향이 특징이며, 나무 판으로 구성된 실로폰은 울림이 짧고 나무 소리가 나는 것이 차이점이다.
슬레이 벨 말러 4번, 플루트와 함께 밝고 경쾌하게 교향곡의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의 주인공이다. 보통은 한 개의 슬레이 벨을 준비하지만, 서울시향은 특별히 다른 한 종류를 더 주문했다. 세워져 있는 어두운 색 슬레이 벨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다소 둔탁한 소리가 난다. 그래서 에드워드 최는 부천시향의 타악기 연주자 이규봉에게 악기 제작을 부탁했다. 이규봉은 타악기 주자이면서 악기를 수리하고 제작하는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단다. 이규봉은 에드워드 최의 주문을 받아 불교에서 기도할 때 사용하는 악기와 장신구들을 인사동에서 구해와 특별히 제작해주었다. 따라서 1악장에서는 알록달록한 슬레이 벨에서 나오는 한없이 경쾌한 소리가, 같은 멜로디가 신경질적으로 변형되어 나오는 4악장에서는 검은색 슬라이 벨에서 나오는 거친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색을 입힌다.
슬랩 스틱 말러 5번에서 쫓기는 듯 “타타탁탁 타다탁탁” 나오는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슬랩 스틱이다. 원래슬랩 스틱은 한 개만 사용할 수도 있는데, 좀더 리드미컬한 소리를 재빠르게 연주하려면 한 손에 하나씩 끼고 연주해야 가능하다고. 테크닉을 뛰어넘는 소리를 요구 받으면 악기를 개발하고, 개량해가며 해답을 제시해줘야 하는 게 타악기 연주자의 운명이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