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있어 같은 작품을 각기 다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연주자별로 듣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백스테이지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예술의전당 내 각 무대에는 2014년 한 해 동안 약 400회의 공연이 오르내리게 된다. 다양한 지휘자·오케스트라·연주자들이 예술의전당을 찾는데, 유명한 작품일수록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중 나에겐 2005년 4월의 11시 콘서트와 2013년 11월 베를린 필 내한 공연에서 연주된 ‘봄의 제전’을 두고 무대편성으로 치열했던 사람들에 관한 기억이 생생하다.
2005년 4월 14일에 열린 11시 콘서트는 당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보수공사로 인해 오페라극장에서 열렸다. 그때 오페라극장은 국립발레단이 ‘해적’을 한창 공연하고 있던 터였다. 국립발레단 공연을 위해 설치된 세트를 크게 변경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를 위로 올려 무대 레벨과 맞추고 그 위에 오케스트라를 편성했다. 콘서트홀과 같이 합창석의 부채꼴 벽이 없는, 조금은 황량한 공간. 모든 스테이지 크루들은 음의 누수를 걱정하면서 목관이 시작되어야 하는 출발점의 위치에 관한 선의의 논쟁으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120센티미터만 뒤로 가자니까, ‘봄의 제전’ 편성이 커서 무대가 터져나간다니까.”
“아니, 그럼 목관들이 너무 멀어. 안 그래도 뻥 뚫린 공간에서 객석에 앉은 관객한테 목관·금관·타악기 소리가 들리겠냐고!”
결국 이 논쟁은 처음 편성을 시작하려던 지점으로부터 120센티미터 앞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객석 쪽 무대 가장자리를 따라 현들을 전진 배치시키고, 동시에 좌우로 조금 더 길어지는 모습으로 말이다.
또 하나의 기억은 지난 2013년 11월 11일, 베를린 필 내한 공연을 앞뒀을 때의 일이다.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된 동료가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각양각색 오케스트라 편성표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기준으로 만들어보겠다며 욕심을 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오케스트라가 왔으니 더욱 신중하게 편성표를 만든다며 베를린 필의 크루들이 만들어놓은 무대에 들어가더니 종이 위에 편성을 손수 그리며 초안을 잡아나갔다. 보면대 위 악보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생소한 악기들의 이름을 물어보더니, 2조의 팀파니를 사용하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그에게는 정말 많은 것들이 새로운 모양이다. 그러더니 결국 질문을 하나 던진다. “클래식 음악에서 5관 편성 작품은 본 적이 없는데, 정말 그런 게 있나요?”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네 목관악기의 개수에 따라 ‘몇 관’이 정해지고, 이 관이 정해지면 그에 따른 현악기들의 규모 역시 대략은 가늠해볼 수 있다. 네 개의 목관악기를 각각 5개씩 편성하고 있는 ‘봄의 제전’은 이 악기들의 연주자만 계산해도 20명에 이른다. 이 음량을 맞추려면 자연스레 현악기의 규모 역시 커지기 마련이다. 혹여 19세기 후반의 작곡가 말러·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이 친숙하게 들렸더라도, 이 작품이 ‘5관’ 혹은 ‘6관’ 편성으로 연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편성표를 그려나가던 후배의 손놀림은 어느새 각 목관악기의 5관 편성 중 마지막 주자인 베이스 플루트·잉글리시 혼·베이스 클라리넷·콘트라바순 연주자의 위치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공연 당시엔 시간관계상 종이 위에 수기로 작성한 편성을 베를린 필 스테이지 크루들에게 보여줬다. 그 후 동료는 수기로 그렸던 무대편성을 다시 컴퓨터로 작업해 보관중이다. 우리가 만든 무대편성에 베를린 필의 소감은… 글쎄, 베를린 필과 조우할 날이 왔을 때 물어볼 생각이다.
사진 예술의전당·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동조는 현 예술의전당 음악당 무대감독이다. 9년 여의 기간 동안 1만 회 이상의 공연을 경험하면서, 날마다 클래식 음악이 주는 엄청난 기쁨을 누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