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로 반대되는 것이 만났을 때 강렬한 불꽃이 튄다. 지난 12월 7일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2중주도 찬란한 불꽃처럼 빛났다. 서정적인 바이올린이 역동적인 피아노와 만나자 익숙한 곡들도 새롭게 다가왔다.
음악회 첫 곡으로 연주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K379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하는 2중주 소나타라기보다는 마치 피아노 소나타 같았다. 사실 모차르트 시대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본래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소나타가 아니라 바이올린 반주가 붙은 일종의 피아노 소나타이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돋보이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클라라 주미 강은 달랐다. 그녀의 곱고 깨끗한 바이올린 톤은 손열음의 피아노에 주도권을 내주며 그 어떤 꾸밈도 없이 모차르트 음악의 순수함을 전했다. 1악장의 느린 서주로 시작해 알레그로 섹션으로 넘어가자 피아노의 음 하나하나가 톡톡 튀어 오르듯 탄력이 붙었다. 탁월한 리듬감이 돋보인 손열음의 피아노는 모차르트 음악의 생명력과 즐거움을 한껏 뽐내듯 생기를 뿜어냈고, 변주곡 형식의 2악장에서 다섯 개의 다양한 변주가 진행되는 사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표현해낸 다채로운 표정은 청중의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정적인 바이올린과 동적인 피아노. 전혀 다른 성격으로 표현된 두 악기의 조합은 음악회 내내 독특한 감성을 전해줬으나 그것이 어느 곡에서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다. 슈베르트의 판타지에선 이 곡에 담긴 다양한 음향과 영적인 감흥이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판타지 ‘방랑자’와 마찬가지로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된 판타지 D934는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구성과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연주자에게 작품에 대한 깊은 통찰과 뛰어난 기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손열음의 피아노가 신비로운 트레몰로로 판타지의 제1부를 열자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이 맑고 깨끗한 톤으로 꿈꾸듯 주제를 연주했다. 곧이어 제2부에서 빠른 행진곡풍 주제가 연주됐을 때, 바이올린의 주제가 좀더 생기발랄한 리듬으로 표현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느린 제1부와 빠른 제2부의 음악적 성격이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제3부 변주곡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각 변주의 성격을 소화해낸다기보다는 기교적인 악구를 소화해내는 데 급급한 인상을 전해주기도 했다.
휴식 후 연주된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에선 두 연주자의 서로 다른 개성이 장점으로 작용해 이 곡의 현대적 음향과 독특한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때로는 타악기처럼, 때로는 현악기처럼 표현된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와 좀더 과감하고 다채로운 표정을 담은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 연주는 대단한 흡인력이 있었다. 특히 몽상적인 3악장에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 소리와 피아노의 레가토는 환상적인 음향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곡으로 후버이의 ‘카르멘 판타지’를 연주한 클라라 주미 강은 풍부한 비브라토와 강렬한 음색을 선보이며 화려한 연주를 들려줬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그녀의 음악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