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4일과 5일, 양일간 진행된 공연 첫날. 파보 예르비와 도이치 카머필하모니는 예술의전당을 충격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공연이 끝나자 “공연 봤느냐”라는 질문이 서울 공기를 떠다녔다.
첫날 공연 레퍼토리는 ‘피델리오 서곡’을 시작으로 베토벤 7번과 3번 교향곡. 소규모 편성의 ‘카머’ 필하모니는 서곡에서 다소 불안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작은 오케스트라로도 꽉 찬 음향을 선보였다고 말하기엔 무리였다. 그러나 7번 교향곡부터는 달랐다. 귀를 확 휘어잡는 오보에 음색과 플루트의 안정감 있는 박자감이 7번 교향곡의 줄을 뽑아내면서 끌고 갔다. 엑스터시를 이끌어내며 휘몰아치지 않는 단아한 음색이 일품이었다. 파보 예르비가 2012년 프랑크푸르크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왔을 때, 역동감 넘치다 못해 오케스트라 전체가 펄떡펄떡 뛰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더니 7번 교향곡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다이내믹을 조절하는 악장을 필두로,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가며 드라마틱한 서사를 만드는 낭만주의적 해석보다는 다이내믹 대비를 분명히 하는 분석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그 와중에 엄청난 새로움이 있었다. 붓점 처리를 절뚝거리며 굉장히 시각적으로 처리하는가 하면, 2악장 첫 프레이즈는 또 매우 길게 이어서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전 악장이 아타카로 이뤄진 양 끊지 않고 이어서 연주하더니, 결국 파보 예르비는 두 팔을 내리고 박자에 맞춰 경기병 같은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10분간 짧은 휴식을 마치고 온 이들은 3번 교향곡을 유례없이 빠른 스피드로 몰아쳤다. 곳곳에서 “헉” “풋”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충격적인 스피드였다. 현악기가 전위적이고 도전적이라면, 관은 모든 것을 받쳐주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다. 원을 빙빙 돌리면서 연주하는 바순이나 힘 빼고 출렁거리는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은 브레멘 악단 같은 느낌이었다. 박자를 늘였다 휘몰아쳤다 하며 앙상블이 어긋날까 심장이 쫄깃쫄깃하게 만들었으나, 결국은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앙상블을 맞추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마지막 음이 끝나기 무섭게 “타타타닥” 이어 받는 팀파니 연주는 서스펜스 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이었다. 4악장 또한 가히 충격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말도 안 되게’ 느리게 시작하더니 하행 선율을 차근차근 내려오면서 ‘후다다닥’ 갑자기 휘몰아쳤다. 악보에는 없는 트릴까지 넣어가며 변화무쌍한 베토벤을 선사했다.
공연 시작에 분명 존재했을 법한 호불호의 여지는 “언제 또 이렇게 재미있는 베토벤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탈바꿈했다. 공연이 끝나자 누군가가 고함을 치며 “브라보”를 외쳐댔는데,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베토벤 교향곡 4번과 5번을 연주한 5일 공연에서는 침을 튀겨가며 흥분의 리뷰를 쏟아낸 전날 관람객들을 양치기로 만들어버리듯 차분하게 연주해서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