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길예진

현대음악을 사랑한 피아니스트의 고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진은숙의 피아노 에튀드를 신보에 담은 길예진은 그 과정을
“영원히 그 정상에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산에 오르기”에 비유한다

길예진은 2010년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의 첫 한국인 상위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5월 파리 독주회에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테크닉과 그에 뒤지지 않는 감수성으로 현대음악에 아름다움을 불어넣으며, 리스트부터 메시앙, 리게티와 진은숙에 이르는 레퍼토리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최근, 현대의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4명의 작곡가, 메시앙·불레즈·리게티·진은숙을 담은 첫 솔로 음반을 낸 길예진. 나지 않은 길 위에서, 스스로 길을 내며 걷는 길예진을 베를린에서 만났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가 직접 들려준 피아니스트 길예진의 이야기.

나 길예진,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
현대음악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서울음대 피아노과 시절에 시작됐다. 관악기 클래스 반주를 많이 했는데 처음엔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했지만, 현대 곡들을 많이 만나면서 결국 현대음악의 재미에 푹 빠졌다. 초견이 빠른 편이기도 하고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많은 연주랄까. 아직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던 곡을 우선 악보로 만나고 동료 연주자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을 느꼈다. 당시 리게티 에튀드에 막 도전할 무렵이라 시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입시제도·커리큘럼의 영향으로) 사실 독일에 와서 현대음악을 제대로 접했다. 내가 좋아하고 자주 연주했던 작곡가들이 대부분 독일 출신이었다. 에센 국립음대에서 현대 레퍼토리로 유명한 베른하르트 밤바흐의 클래스에 들어갔다. 밤바흐가 말하길, 내가 오디션에서 리게티 에튀드를 치는 걸 듣고 제자로 삼아야겠다고 결정했단다. 진은숙의 에튀드를 발견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2010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콩쿠르 결선 연주 후, 지정곡 작곡가 필리프 위렐이 찾아와 그가 바라던 대로 연주를 해줬다고 인사를 해왔다. 내게 주어진 최고해석상보다 그의 행복한 얼굴에 더 기뻤다. 연주자로서, 작곡가가 가지고 있던 이상을 현실화했다는 것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를레앙 콩쿠르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얼핏 레퍼토리가 190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작품에 한정되어 있어서 다른 국제 콩쿠르보다 수월하지 않을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히려 더 어렵다. 현대 곡이 지닌 기술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고작 며칠 사이에 앙상블 연주로 진행되는 결선 지정곡이 나온다. 또한 예선부터 모든 라운드가 콘서트 형식이다. 중간에 적당히 끝내는 식이 아니라 마치 매번 연주회를 하듯 하나의 완성된 프로그램을 해내야 한다. 나이 제한을 42세로 한 이유가 이해가 간다. 결선에 올라서는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낯선 작곡가의 처음 보는 악보, 처음 만난 연주자들과 합을 맞춰 연주해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과제처럼 여겨졌다. 다른 콩쿠르를 여러 번 경험했는데도 전과는 다른 압박감이 밀려왔다.
마침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의 여자 피겨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연주 전날, 열아홉 나이에 온 나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도 완벽한 퍼포먼스로 자신을 증명해낸 김연아 선수를 보고 큰 용기를 얻었다. 금메달이라는 결과보다도 전 세계가 자신을 지켜보는 순간 닥쳐오는 두려움을 극복해내고,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고 절대적인 자유에 도달해 최상의 연기를 펼쳐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진은숙 피아노 에튀드 악보에 적힌 문구
만 5세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남들과는 좀 다른 길을 걸어왔다. 흔히 생각하는 예고 출신 전공자로 살아온 게 아니라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다. 혼자 피아노를 꾸준히 쳤지만 레슨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일을 따라 이사를 다니다 보니, 연고가 전혀 없는 낯선 곳에서 적당한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년 정도 피아노를 쉬는 동안 계속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을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 교육 환경 탓에 많은 선생님들이 어린 제자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준다. 반면 나는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보고 직접 음악적 질문들에 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 모든 해답은 악보 안에 있고, 작곡가가 다 결정해두었음을 어린 나이에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독학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때 경험으로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곡,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악보를 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진은숙 에튀드 악보에 나는 ‘인내심이 최선이다’라고 적어두었다. 처음엔 테크닉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지 에튀드 뿐 아니라 피아노 곡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테크닉과 음악성의 최고 지점에 도달한 작품이기 때문에 연주자로서 압도된다고 할까. 그만큼 이 작품이 어렵다. 이 6개 에튀드를 위해 들어간 시간과 노력은 다른 곡과 비할 수가 없다. 마치 오를 수 없는 산에 도전하는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테크닉을 손가락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음악적인 라인을 찾아 그림을 그려보고, 새로운 소리를 상상하면서 곡을 완성해나갔다. 에튀드이지만 동시에 이토록 정교하게 아름다운 곡에 그에 걸 맞는 연주를 한다고,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다. 미학적인 면에서 이 에튀드들은 이전에 전혀 들어볼 수 없었던 새로운 피아니즘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진은숙의 에튀드를 최근 음반으로 발매했다. 원래 오를레앙 콩쿠르 측에서 입상자에게 음반을 내주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음반(Solstice)은 따로 진행되었다. 오를레앙 콩쿠르 입상으로 프랑스 곳곳에서 자주 연주할 수 있었고, 내 연주를 인상 깊게 들었던 프로듀서 이베트 카르부가 먼저 음반을 제안했다. 2013년 9월 닷새간 프랑스 남부 베지에르의 한 성당에서 녹음을 했다. 하루에 거의 8시간씩 녹음했는데, 기력이 다 소진될 때까지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다.
진은숙 외에도 불레즈·리게티·메시앙의 작품을 수록했다. 리게티와 진은숙의 에튀드에 존재하는 서정과 아름다움, 불레즈의 구조 너머에 있는 메시지, 메시앙의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까지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았다. 메시앙은 심적으로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작곡가다. 음악을 듣는 순간 영혼이 아주 신성한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내가 자라난 종교적인 배경 역시 한몫하는 것 같다. 특히 이 메시앙의 ‘리듬의 에튀드’는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이 모두에게 일종의 ‘육체적 기억’을 남길 정도다.
실은 오를레앙 콩쿠르 입상 후 몇몇 레이블에서 연락이 왔다. 음반 업계의 불황과 제작비 문제가 겹쳐 결국 성사되지 않았지만,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음악으로 유명해지거나 대단한 커리어를 쌓는 것은 나의 우선 순위가 아니다. 지금껏 음악을 해온 이유는 장식과 포장, 연출로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가장 나다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피아노 앞에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요즘 내가 새롭게 발견한 장르는 실내악이다. 피아노의 세계 속에 오로지 피아노 한 대와 피아니스트만 존재한다면, 실내악은 더 외연이 넓다.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음악적인 부분뿐 아니라 타인의 세계관, 미적 기준, 음악을 풀어나가는 방식, 추구하는 지점에 대한 이해를 얻고 배울 수 있다.
특정 연주자로 규정되기보다 끝없이 외연을 넓혀가고자 한다. 현대음악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 사진 Jean-Baptiste M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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