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타로의 ‘Autograph’

눈부신 스물세 개의 앙코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클래식 연주회에서 정식 프로그램 연주가 끝난 뒤의 앙코르 무대는 적지 않은 이야기를 청중에게 들려준다. “이제 끝났으니 안녕히 가세요” 하는 메시지와 “아직 제 얘기가 남았으니 들어주세요” 하는 서로 다른 메시지가 중첩되는 시간, 특히 독주자의 앙코르 무대는 청중으로 하여금 색다른 관심과 집중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공적인 무대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사적인 공간에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최상의 앙코르 무대는 청중에게나 연주자 자신에게나 하우스콘서트에서와 같은 친밀감과 더불어 무대 안팎의 경계에서 내면의 성찰을 만들어내는 무대일 것이다.
에라토에서 발매된 이 음반에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그간 자신의 연주회에서 즐겨 연주하던 앙코르 소품들이 담겨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는 타로는 중견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재에 대해 잠시 숨을 고르며 성찰한다는 의미를 이 음반에 덧붙이고 있다. 앙코르 무대가 갖는 독특한 사적 차원을 의식하여 깊이 있게 기획된 음반인 만큼 ‘앙코르 소품 모음’을 내세우는 여타의 상업적인 음반과는 뚜렷한 차별성이 느껴진다.
이 음반에 담긴 피아노 소품들은 그저 듣기에 편한 곡들도 아니고, 맥락을 잃고 무차별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포레·라모·상스·쿠프랭·샤브리에·비제를 비롯하여 풀랑크·사티·타유페르·스트라스누아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포진되어 타로의 프랑스적인 피아니즘과 조응하고 있으며, 음반 전체에서 풍기는 보헤미안적인 쓸쓸함의 정서가 러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남미를 배경으로 하는 소품들까지도 일관된 흐름으로 녹여내고 있다. 바흐에서 시작하여 바흐로 끝나는 다분히 의도된 선곡 또한 네 세기에 이르는 음악사적 스펙트럼을 폭넓게 펼쳐 보이는 동시에 깊은 명상의 계기와 여운을 만들어준다.
섬세한 타건으로 색채감 있게 펼쳐내는 화음이 돋보이는 타로의 피아노 연주는 힘들이지 않으면서도 작품이 표현하는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청중에게 전달해낸다. 피아노의 선율 파트와 반주 파트는 서로 다른 음색과 음량, 심지어 서로 다른 템포의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절묘하게 교차하고 습합한다. 고도프스키가 편곡한 생상스의 ‘백조’ 연주는 이 점에서 이 음반의 백미라 할 만하다. 오른손과 왼손을 넘나들며 때로는 하프 소리처럼, 때로는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처럼 펼쳐지는 화음은 명징한 대위적 선율에 반사하면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질로티가 편곡한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정령들의 춤’, 타로 자신이 직접 편곡한 비제의 ‘아다지에토’와 마지막 트랙 바흐의 ‘안단테’와 같은 느린 선율을 담은 편곡 작품에서 타로의 장점이 특히 잘 드러나는 듯하다. ‘우아한 인도’를 지휘하던 윌리엄 크리스티의 춤이 떠올라 미소 짓게 만드는 라모의 ‘야만인’이나 쿠프랭의 ‘틱 톡 쇽’과 같은 리듬감 있는 바로크 악곡들을 부드러우면서도 톡톡 튀는 피아노 음향으로 빚어내는 솜씨도 감탄을 자아낸다.
수많은 앙코르 곡이 있었던 멋진 콘서트를 후일담처럼 추억하는 청중들이 있겠지만 스물세 개의 앙코르 곡을 이어서 듣는 경험은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음반이 그 같은 체험을 안겨줄 수 있을 듯하다.

글 최유준(음악평론가)


▲ 알렉상드르 타로(피아노)
Erato 93413725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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