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내한하는 안무가 필리프 드쿠플레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무용·마임·서커스의 영역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안무가 필리프 드쿠플레.
화려한 비주얼, 예술과 상상력이 집약된 ‘파노라마’로 한국의 관객들을 찾아온다

형형색색의 의상, 무대 공중을 가르는 무용수들의 서커스, 춤에서 드러나는 유머까지. 무한한 상상력과 기발한 창조성으로 무장한 프랑스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필리프 드쿠플레가 자신의 DCA 무용단과 함께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LG아트센터에 내한한다. 무용·마임·서커스의 영역을 넘나들며 신체의 시각적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하는 그의 독특한 작품관은 정규 예술교육이 아닌 유년 시절 경험에서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무용 공연을 자주 관람했던 드쿠플레는 몸을 이용해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시작은 13세 때 마임을 배우면서 실현됐다. 몸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이 흥미로웠던 그는 정규교육을 그만두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아니 프라텔리니에게 서커스를 배웠다. 하지만 반복적인 서커스와 마임 연습에 지루함을 느낀 드쿠플레는 앙제 국립 현대무용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미국의 현대무용가 얼윈 니콜라이스를 만나게 되고, 빛·소리·조형물 등 무대 연출에 주목하는 그의 스타일은 이후 드쿠플레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격적으로 무용을 안무하기 시작한 드쿠플레의 초기 작품들은 프랑스의 보수적인 예술가들로부터 ‘너무 가볍다’거나 ‘정체불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껏 등장한 적 없었던 독특한 스타일과 원색적인 의상, 화려한 서커스가 융합된 공연이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굳건히 지켜나갔고,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의 개·폐막식 연출을 맡아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독특한 구조물의 등장,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의상과 화려한 무용, 서커스가 융합된 연출은 디테일을 잘 살리면서도 현장예술의 역동성을 보여준 연출로 기록되고 있다. 무용에 있어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정립한 그는 지금까지 영화·광고·뮤직 비디오·태양의 서커스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연출가로 성장하며 화려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드쿠플레, 과거부터 현재까지
1999년 ‘샤잠’, 2000년 ‘트리통’을 선보인 이래 오랫동안 한국을 찾지 않았던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그간 안무했던 자신의 작품을 조합한 ‘파노라마’. 안무에 있어 스타일을 고착시키거나 한 번 시도된 형태는 반복하지 않는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스타일의 작품이다.

“저는 ‘파노라마’를 통해 새로운 무용수들과 제가 좋아하는 발상을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첫 작품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발전시켜왔던 아이디어를 모아서 재창조를 시도했습니다. 마치 가수들이 자신의 예전 히트곡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옛 향수만 불러일으키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파노라마’(2012)는 데뷔 이후 30년간 다양하게 안무 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983년 바뇰레 안무 대회에서 안무상을 받은 ‘텅 빈 카페’(1983)와 처음으로 만든 댄스 비디오 ‘점프’(1984)는 지금까지 다시 공연된 적이 없어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품이다. 이들은 “1980년대의 그래픽과 영상, 초기 스타일의 안무가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드쿠플레는 설명했다. ‘코덱스’(1986) ‘데코덱스’(1995) ‘샤잠’(1998) ‘트리통’(1990)은 드쿠플레와 DCA 무용단이 여러 번 해외 투어를 가졌던 대표작으로, 화려한 의상과 기묘한 동작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티트 피에스 몽테’(1993)와 ‘아이리스’(2003)에는 독특한 서커스 기법이 활용됐고, 그림자극에서 영감을 받은 ‘솜브레로’(2006)는 영화촬영 기법으로 제작된 무용 작품이다.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아홉 개의 작품들을 조합하는 과정에 대해 드쿠플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각각의 작품이 초연 당시의 무용수들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무를 재구성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각 요소를 결합하기 위해 몇몇 작품들의 안무와 의상을 뒤섞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예를 들어 ‘파노라마’에는 ‘트리통’의 한 장면과 ‘솜브레로’의 그림자극, ‘샤잠’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들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이 더욱 주목 받는 것은 무용수의 움직임과 표현에 영상과 테크놀로지를 다방면으로 활용해 현대의 기술과 예술을 조합하는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실제 무대에서 춤추는 무용수와 스크린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움직이는 신체를 동시에 무대 위에 구현하곤 한다. 드쿠플레는 이런 시도를 통해 “움직임을 확장하고 변형시켜 무대 위에서 마법을 창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최근 멀티미디어를 기반으로 관객 체험형 설치 작품 ‘옵티콘’을 전시하기도 했다. ‘옵티콘’은 멀티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를 실험·창조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로 현재 파리와 모스크바에 설치되어 있다.
그가 구상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데는 단순히 자신의 능력뿐 아니라 무용단과의 협업이 중요하다. 젊은 시절 창단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는 DCA 무용단은 매 공연마다 프로젝트 형태로 새로운 무용수들과 작업하는데, 그는 특히 무용수를 선발하는 데 애착을 갖고 있다.
“한 작품을 위해 공연을 함께 할 무용수를 선발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도전적이면서도 제게 자극을 주는 일입니다. 저는 강한 개성을 가진 무용수들을 좋아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마법을 부릴 줄도 알아야 하니까요. 제 무용수들은 단지 춤을 추는 것뿐 아니라 다른 형식의 예술에 대해 개방적이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고 예술적 감성을 공유할 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작품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다방면으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드쿠플레는 지금도 종종 자신의 안무작 ‘솔로’로 직접 무대에 선다. “작품을 만들고 무용수들을 지도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무용수이기도 하다”라는 그의 열정과 욕심이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글 김태희 인턴 기자(thkim@gaeksuk.com)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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