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통영국제음악제 ‘SEASCAPE’ 리뷰

바다풍경 안은 통영의 새 미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통영 바다를 감싸 안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첫 음악제가 열렸다. 새 음악당에 대한 기대만큼, 새로운 시도를 요구받는 시간이다


▲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지휘하는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올해의 상주예술가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


▲ 작곡가 살바토레 샤리노와 티그란 만수리안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약 다섯 시간에 걸쳐 통영에 당도했을 때, 육지 끝에 걸려 있는 바다 물빛이 이곳이 통영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서울보다 먼저 온 봄, 꽃망울을 아낌없이 터뜨린 벚꽃, 왠지 주워 담으면 손에 그 빛깔이 물들어버릴 것 같은 동백꽃. 그 풍광에 나지막한 감탄을 자아내는 한편 기자의 시선은 윤이상의 아내 이수자가 쓴 ‘내 남편 윤이상’(창작과비평사, 1998) 속의 한 문장에 머물러 있었다.
“윤이상의 고향 통영은 ··· 봄이 무르익어 벚꽃이며 배꽃이며 앵두꽃이며 봄을 구가하는 온 둘레의 꽃들이 마당에서나 동네에서나, 그리고 농장 등성이나 산중턱에서 꽃바다를 펼치기 시작한다.”

올해의 주제는 ‘Seascape’, 바다를 담다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동과 서를 대표하는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바다풍경(Seascape)’이라는 주제 아래 통영에 모였다. 축제의 첫날인 28일,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는 3년 전부터 통영국제음악제를 이끌고 있는 예술감독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의 지휘로 윤이상의 ‘유동(流動)’을 선보이며 음악제의 개막과 통영국제음악당 정식 개관의 종을 울렸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던 TFO의 부활 아닌 부활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TIMF앙상블은 물론 폴란드 방송교향악단·크레메라타 발티카·오사카 필하모닉·NDR 심포니·멜버른 심포니·시드니 심포니 등 각국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이 뭉친 TFO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했다.
윤이상의 ‘유동’으로 포문을 연 리브라이히와 TFO는 손열음과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인 데 이어 2부에서는 브리튼 ‘네 개의 바다 간주곡’과 드뷔시의 ‘바다’를 연주했다. 29일에는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와 함께 모차르트 오페라 ‘황제 티토의 자비’ 중 ‘나는 떠나지만 돌아오라, 나의 사랑이여’와 ‘아! 이 순간만이라도’를 무대에 올렸으며, 이어 헨델의 수상음악 모음곡 2번과 3번, 그리고 전날과 같이 브리튼과 드뷔시의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의 단원들이 짧은 시간 동안 통영에서 이룩한 화합과 소통의 자세는 연주 내내 음악만큼이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이번 음악제의 주제인 ‘바다풍경’에 걸맞게끔 ‘바다’와 ‘물’을 표제화한 작품 중심의 선곡이 눈에 띄었다.

음악의 오늘과 미래, 공존 지대

통영국제음악제는 2011년부터 상주작곡가 제도를 도입하여 세계 각국의 작곡가를 초빙하고 있다. 그간 진은숙·하이너 괴벨스·호소카와 도시오 등 수많은 작곡가가 다녀간 바 있고, 이번 상주작곡가로는 이탈리아 출신의 살바토레 샤리노와 아르메니아 출신의 티그란 만수리안이 초빙되었다. 개막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통영국제음악제는 현대음악의 격전지이자 제2의 윤이상이 나와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라고 역설한 샤리노의 말처럼, 이번 음악제는 두 작곡가와 함께 새로운 현대음악을 잉태하는 역할에 많은 힘을 실은 듯했다.
28일과 29일에는 샤리노의 음악극 ‘죽음의 꽃’이 올랐고, 30일 ‘TIMF 레지던스 작곡가’ 무대에서는 미하우 클리우자의 지휘로 폴란드 방송교향악단 현악 앙상블이 샤리노의 ‘빛나는 이상과 도둑맞은 페이지’(2012)와 만수리안의 ‘레퀴엠’(2011)을 무대에 올렸다. 4월 1일에는 ‘나이트 스튜디오’에서 앙상블 모데른 아카데미 솔로이스츠가 메시앙·불레즈·헨체·만수리안·그리제, 그리고 윤이상의 곡을 선보였다.
두 상주작곡가의 참가, 그리고 음악제 기간 동안 선보인 작품들은 자국의 음악문화 ‘전통’을 어떻게 오늘의 음악으로 계승하는가에 대해 큰 시사점을 던지는 듯했다. 예를 들어 샤리노의 ‘죽음의 꽃’은 16세기 작곡가 제수알도가 선보였던 파격적인 불협화음의 전통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잇는 가교가 되는 요소가 작품 내 곳곳에 배치된 작품이기도 했다. ‘전통’과 ‘오늘의 음악’을 연결하려는 노력은 아르메니아 출신 만수리안의 작품에서도 느껴졌다.
31일는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가 있었다. 중국의 두 웨이(1978~), 한국의 박정규(1981~), 말레이시아의 즈화 탄(1983~), 싱가포르의 다이애나 소(1984~), 이상 4명의 젊은 작곡가들이 각자의 곡을 선보였다. 각 작곡가들의 곡을 통해 동아시아가 공유할 수 있는 음악적 전통과 음악사적 자산을 탐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8일과 29일에는 내한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뱅 온 어 캔 올스타의 무대가 있었다. 첼로·더블베이스·피아노·타악기·기타·클라리넷으로 구성된 이들은 클래식·재즈·월드뮤직은 물론 ‘음악’과 ‘음향’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영상을 사용하여 시각과 청각을 아우른 독특한 체험을 선사했다. 스티브 라이히는 물론 비디오 작업을 통해 ‘소리를 보는 체험’을 연출하는 크리스티안 마클리와 한국의 젊은 작곡가 김인현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양일간의 무대는 록 콘서트장과 실험영화를 상영하며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관을 연상케 했다. 현대음악에도 대중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 베베른·베토벤·리게티의 작품을 선보인 노부스 콰르텟의 리사이틀


▲ ‘아시아 쇼케이스’에서 TIMF 앙상블을 지휘하는 최수열


▲ 뱅 온 어 캔 올스타의 기타리스트 마크 스튜어트

윤이상 음악의 회춘을 위하여

이번 음악제의 상주예술가는 노부스 콰르텟과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였다. 노부스 콰르텟은 그 멤버를 살펴보더라도 2007년 경남국제음악콩쿠르(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 입상했던 김재영이 제1바이올린을, 2011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입상자인 김영욱이 제2바이올린을 맡고 있어 여러모로 음악제에 잘 어울리는 단체였다. 4월 1일에는 노부스 콰르텟과 카사로바의 무대가 있었고, 2일에는 노부스 콰르텟의 단독 무대로 베베른·베토벤·리게티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2일에는 2011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청이 리사이틀을 가져 축제에 젊은 열기를 더했다.
한 가지 보태자면 향후 상주예술가들의 손끝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퍼져 나오기를 바란다. 음악제에 초청되는 예술가는 음악제의 취지와 의의를 표상하는 존재와도 같다. 따라서 초청 받은 예술가나 단체는 축제의 의의를 간파하여 그 취지와 자신의 음악세계를 균형감 있게 잡아가는 것이 최선의 의무일 것이다. 윤이상의 작품 중에는 1960년과 1988년에 초연된 현악 4중주 3번과 4번이 있으며, 그 외에도 피아노 독주나 성악곡들이 있다. 물론 현대음악은 연주자나 청중 모두 익숙하지 않다. 작곡가 특유의 주관적 실험을 익혀야 하기에 연주로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이 다른 레퍼토리에 비해 오래 걸린다는 난점이 있다. 하지만 ‘상주’라는 제도의 명칭에 걸맞게 그 제도를 이용하여 음악제의 지원을 받으며 윤이상의 곡을 연습하여 선보이는 것은 어떨까. 젊은 연주자들이 모였을 때 생겨나는 시너지 효과와 윤이상 음악의 접속은 새로운 음악적 산물을 낳을 수 있는 가능태이기도 하다.

더 넓은 음악의 바다를 향해

콘서트와 음악극, 클래식과 현대음악 사이로 눈에 띈 것은 4월 2일에 선보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한국의 작곡가들’, 그리고 3일 폐막 공연으로 오른 ‘윤이상을 만나다 Vol.3’이었다. ‘한국의 작곡가들’은 다섯 명의 작곡가들이 쓴 국악 관현악을 선보이는 무대였고, ‘윤이상을 만나다 Vol.3’은 윤이상을 소재로 하여 연주와 영상, 춤이 어우러진 무용작품이었다. 지난해는 소리꾼 이자람이 ‘나이트 스튜디오’에서 판소리 ‘적벽가’ ‘흥보가’와 자신이 작창한 ‘사천가’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전통음악 또한 이 음악제가 갖춰나가야 할 장르임을 암시한 무대였다. 다만 앞으로 전통음악에 자리를 내어준다면 이번과 같이 창작국악보다는 윤이상의 ‘예악’(1966)에 상상적 근간이 되었던 조선 궁중음악이나 정악·민속악 등 고전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선보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음악제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통영국제음악당의 개관이었다. 직사각형의 구조를 갖춘 1천3백 석의 콘서트홀은 날아갈 듯한 갈매기를 상징하는 건물의 외형과 달리 원목의 속살을 내세운 고급스럽고 아늑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무대 높이가 높아 앞 열의 좌석에서 감상 시 고개를 젖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2층과 3층에 위치한 발코니석은 난간으로 몸을 있는 힘껏 빼야 무대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음악제 기간 동안 1층과 2층 객석, 합창석은 물론 3층 발코니석까지 두루 앉아볼 수 있었는데, 냉난방 시설이 고르지 않았는지 각 자리마다 기온 차이 또한 심했다. 음악극과 앙상블, 쇼케이스 및 리사이틀이 진행된 3백 석 규모의 블랙박스는 서울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과 비슷한 구조였다. 음향적으로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비가 와서 관객의 동선이 음악당 내부로만 제한되고 사람들이 몰리자 이 천혜의 요새에도 약점은 드러났다. 공연과 공연 사이에 휴식을 취할 만한 장소가 부족했고, 커피 한 잔을 구매할 때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인파를 예측하지 못한 주최 측과 운영진의 준비가 허술했던 것이 사실이다. 음악당은 올해 11월까지 클래식 음악·재즈·국악 등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애정을 갖고 통영국제음악당을 드나드는 이들은 편의시설에 대한 문제점들을 두루 지적할 것이다. 그것을 신속히 개선하는 운영진의 움직임이 중요할 듯하다. 2002년부터 역사를 써온 통영국제음악제가 앞으로 ‘멀리’ 내다보는 시선과 함께 통영을 ‘순하게’ 끌어안는 자세를 유지하며 힘찬 날갯짓으로 도약하기를 바란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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