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공연수첩

'객석'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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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❶ 변하지 마라. 영국의 신사들이여!

킹스 싱어스 내한 공연

5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여섯 명의 영국 신사들이 무대에 올랐다. 킹스 싱어스는 젠틀한 미소로 청중의 박수에 화답하며 청량한 첫 화음을 내뱉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작곡가 해럴드 알렌·조지 거슈윈·콜 포터의 작품을 비롯한 전통 미국 영가·명곡으로 구성됐다. 해럴드 알렌의 ‘Get Happy’가 홀 안을 가득 메우며 공연이 시작됐다. 효과음부터 움직임까지 그들의 연출은 꼼꼼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위트 있는 제스처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킹스 싱어스만의 ‘무기’는 바로 이러한 유쾌한 연출로 대중과의 벽을 무너트린다는 것이다.

1부는 전반적으로 탄탄한 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그중 가장 시선이 갔던 멤버는 테너 폴 피닉스와 베이스 조너선 하워드였다. 킹스 싱어스 멤버로 17년간 활동한 테너 폴 피닉스는 멤버들의 개성 있는 목소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고, 조너선 하워드는 단단한 베이스와 재치 있는 애드리브로 그들이 그려내는 화음에 확실한 근음 역할을 했다.

2부는 멤버 간의 조화가 두텁게 이루어졌다. ‘When I fall in love’ 같은 대중의 귀에 익은 곡들로 분위기는 한층 자연스러워졌고, ‘Cheek to Cheek’은 바리톤 크리스토퍼 개비터스로 시작돼 카운터테너 데이비드 헐리가 이어받으며 전체 하모니에 이르기까지 담백하게 흘러갔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끝난 뒤, 킹스 싱어스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왔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어눌한 한국어로 진지한 애도를 표한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위로하는 추모곡 ‘M.L.K’를 선보였다. 엄숙한 무대에 눈물을 훔치는 청중들도 보였다. 이어서 1996년 한국어로 녹음·발매했던 ‘마법의 성’을 앙코르로 선보이며 공연은 마무리 됐다.

주기적인 멤버 교체 속에서도 킹스 싱어스가 46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굳건히 지켜오는 그들만의 이유 있는 고집 때문이다. 구성이 확실히 확립된 멤버 숫자(카운터테너2·테너1·바리톤2·베이스1)와 장르의 구분이 없는 음악 선택, 음악을 대중적인 느낌으로 해석하지만 가볍지 않게 전달하는 감각까지… 그들은 변함없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에서 혼돈되기 쉬운 방향성을 확고히 조절해왔다. 이번 내한 공연은 킹스 싱어스의 견고한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무대였다. 장혜선

❷ 소박한 절정의 순간, 챙!

극단 산울림 ‘챙’

6월 8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올해 산울림극장에선 클래식 음악이 자주 들려온다. 겨울 ‘베토벤의 삶과 음악 이야기’라는 테마로 가진 편지 콘서트에 이어, 여름을 앞두고 가진 제151회 정기공연 ‘챙’(작 이강백, 연출 임영웅·심재찬)이 그러하다. 클래식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에피소드 나열의 극적 구성을 갖추고 있는 작품들이다.

연극에서 보다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지만 음악극이 아닌 이상 극에서 활용되는 음악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그 한계를 어떻게 변형하고 확장하느냐가 극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챙’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어느 교향악단 심벌즈의 이야기를 다룬 극에 심벌즈 연주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에는 의문의 비행사를 당한 연주자 함석진 대신 그의 유품인 심벌즈, 함께 오케스트라 생활을 해온 지휘자 박한종(한명구 분)과 그의 아내 이자림(손봉숙 분)이 무대에 등장해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여기에 관객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설정된다.

본격적인 에피소드는 심벌즈 연주자인 남편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이자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사이사이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비롯해 브람스 교향곡 1번 등 다섯 작품이 극중 이야기와 어우러져 짤막하게 소극장에 울려 퍼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감정이 고조될 법한 부분에서도 배우는 그것을 담담하게 처리한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또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진짜 현실에 밀착된 느낌이 들었다. 많은 이들의 일상 대부분이 자연스러움과 단조로움의 반복이지 않던가. 그런 면에서 심벌즈라는 악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꽤 닮아 있다. 모두가 주목하는 앞 줄 보단 맨 뒤에 서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박자만 세고 있을 일이 많고, 심지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순간 클라이맥스에, 아무도 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소리로 감동을 주는 일은 모두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악기 연주자의 이야기인가 싶은 ‘챙’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처럼 연주자로 상징되는 인간에 관한 성찰과 함께 인생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극중 함석진이 단원들에게 전하는 유언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우화적으로 이야기해온 극작가 이강백의 메시지가 ‘챙!’ 울리는 지점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음악에 심벌즈가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 심벌즈는 침묵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내가 침묵 속에서도 연주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언젠가 나는 영원히 침묵하겠지요. 그때는 내 분신이던 심벌즈를 후임자에게 주십시오. 절정의 순간 챙! 울리는 심벌즈 소리가 영원한 침묵도 하나의 오케스트라 음악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김선영

 

❸ 움직임, 바흐의 선율이 되다

유니버설발레단 ‘멀티플리시티’

4월 25~27일 LG아트센터

과학적으로 설계된 바흐의 음악에 현대적 감수성을 지닌 두아토의 안무가 더해지면 어떤 무대가 탄생할까. 바흐의 음악과 그의 인생 전반을 담은 작품 ‘멀티플리시티’가 유니버설발레단의 무대에 올랐다. 협주곡·칸타타·소나타를 비롯한 23개 바흐의 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거장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흐로 분한 무용수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 대형으로 둘러앉은 무용수들이 음표가 되어 움직이는 첫 장면과 세속 칸타타 BWV205의 음률에 맞춰 물결치는 모습은 음악의 기쁨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남녀 군무 역시 안무가가 의도한 역동성과 낙천적인 모습을 잘 살려냈으며, 당대 스타일을 살린 의상을 입고 무대를 활보하는 여자 무용수들은 제법 빠른 박자의 안무도 놓치지 않고 소화해냈다. ‘토카타와 푸가’ BWV538의 오르간 연주에 맞춘 2막 남자무용수들의 군무는 비장미가 넘쳤고, 절제된 동작과 무대를 시원하게 가르는 점프는 바흐 인생 말기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바흐의 음표들이 춤추는 순간이 아닌 죽음이 등장한 때였다. 어두운 빛깔의 드레스에 백색 가면을 쓴 묘령의 여인은 모든 군무에 필적할 만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했다.

좋았던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의 듀엣은 안무가의 의도를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 나초 두아토가 가장 애정을 갖고 안무한 이 장면은 첼로가 연주하는 중후하고 매혹적인 선율과 음악을 몸으로 구현해내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궁극적으로 에로스를 완성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두 무용수는 음악에 몸을 맡기지 못하고 동작을 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파트너 간의 교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다소 폭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무용수들의 기량은 훌륭하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을 즐기지 못하고 고난도의 동작들을 해내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음 사이의 여유까지 표현할 겨를이 없었다. 2011년 킬리안의 ‘프티트 모르’를 처음 공연했을 때 관객들에게 선사했던 섬세한 완성의 감동이 ‘멀티플리시티’에는 부족했다.

이번 무대에서 원작의 완전한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나초 두아토의 전막 작품을 유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불어 이 작품이 무대에 다시 오르는, 지금의 기대감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할 날을 기다린다.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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