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Ⅰ·Ⅱ’

새로운 음악을 향유할 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4월 20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4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가 올해 9년차를 맞았다. 각각 1회의 실내악·관현악 공연과 함께 젊은 작곡가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 등으로 이뤄진 프로그램은 진은숙이 작곡가뿐 아니라 기획자로서도 얼마나 심도 깊은 치밀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는지 가늠케 한다.

4월 20일 실내악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요르크 횔러의 ‘게겐클렝’이었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브람스 인테르메조의 시작동기를 발전시킨 1악장에서 출발한다. 쾌활하고 신 나는 즉흥 리듬으로 도달한 3악장에서 횔러는 그의 스승 불레즈의 이름을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음으로 치환시킨 음을 토대로 다시 한 번 즉흥적 악상을 펼쳐나갔다. 독일 고전악파를 대표하는 브람스와 프랑스의 전후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음렬주의자 불레즈 사이를 음악으로 가로지르며 횔러는 자신의 음악이 어디에 기원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현대음악이 어디선가 난데없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해온 음악을 계승한 것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는 물론, 흔히 가장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브람스와 불레즈 사이에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사하면서 말이다.

4월 24일 관현악 공연은 청중들을 배려한 세심한 프로그래밍이 돋보였다. 음향적 효과가 돋보이는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의 ‘피토프라크타(Pithoprakta)’로 출발해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코’ 모음곡으로 1부를 채웠고, 2부에서는 서울시향이 공동위촉한 횔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항해’에 이어 첼리스트 이상 앤더스의 연주로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협주곡이 연주됐다.

밀도 높은 음향과 마치 휘황찬란한 색채의 팔레트 같은 악상 전개로 세계 초연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선사한 ‘항해’가 끝나자 감격에 겨운 작곡가는 무대 위로 올라가 지휘자를 끌어안으며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시력을 거의 잃은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내면의 소리에 의지해 작품을 써나간다”라고 말한 횔러는 곡을 쓸 때 상상했던 소리와 만났다며 서울시향의 연주에 만족을 표했다.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첼리스트 이상 앤더스였다. 첼리스트의 역량을 시험하는 난곡인 폴란드 작곡가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협주곡은 그 시작과 끝을 첼로의 독주로 열고 닫는다. 이상 앤더스가 빚어내는 첼로의 음은 단 한 점의 흠 없는 완전무결 그 자체였고, 그로 인해 초현실적인 인상을 자아냈다. 태초에 악기와 한 몸으로 태어난 것처럼 자유자재로 비르투오시티의 절정을 선보인 이상 앤더스에게 끝없는 박수가 이어졌다. 커튼콜 이후 이상 앤더스는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며 브리튼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칸토 프리모’를 연주했다. 절정의 기교가 돋보인 더블 스토핑과 함께 작품 속에 들어찬 비탄과 묵직한 슬픔은 공연장의 뜨거운 열기를 삽시간에 숙연한 그 무엇으로 승화시켰다.

두 차례 공연에서 서울시향과 함께 무대에 오른 지휘자 피에르 앙드레 발라드는 규모와 내실을 모두 갖춘 ‘아르스 노바’에 대한 만족스러운 소감을 밝혔다.

“불레즈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함께 헌신과 열정으로 이뤄낸 성취를 진은숙이 이곳에서 해내고 있다. 서울은 이제 유럽 음악가들에게 꼭 한번 오고 싶은 선망의 목적지가 됐다. 눈에 띄게 성장한 서울시향의 연주력 너머에는 리허설부터 본 공연 이상의 집중력으로 참여하는 단원들의 열정이 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세계 초연은 연주자들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현대 음악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서울에서 이렇게 양질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음악과 그것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사진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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