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완전한 자유! 무대 위에 선 그들은 음악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 그들에게 악보는 단지 약속기호일 뿐, 음악이 연주되는 바로 그 순간의 감흥은 매번 새롭게 태어났다. 덕분에 듣는 이들도 매 순간 새로운 비발디 음악의 매력에 한껏 빠져들었다.
지난 5월 7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는 과연 이탈리아 음악해석의 대가답게 비발디 음악 속의 다양한 색채감을 살려낸 연주로 갈채를 받았다. 시대악기 단체 에우로파 갈란테는 비온디와 한 몸을 이룬 듯 손발이 척척 들어맞았고 어떤 곡이든 그들의 연주를 통해 활기가 넘쳤다. ‘올(all) 비발디 프로그램’으로 인해 음악회가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으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시대악기 연주단체에겐 다소 크지 않을까 했던 우려도 씻은 듯 사라졌다. 그들의 연주는 공연장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한 에너지로 충만했다.
본 공연에 앞서 그들은 아르보 패르트의 현을 위한 ‘숨마’를 연주하며 세월호 참사로 인한 우리의 마음을 위로했다. 다소 우울한 분위기의 패르트 곡에 이어 비발디의 현을 위한 신포니아 연주를 위해 연주자들이 첫 활을 긋는 순간부터 공연장엔 상쾌함이 감돌았다. 마치 숨을 들이쉬듯 부풀어 올랐다가 숨을 내쉬듯 마무리되는 자연스런 운궁, 예상을 깨는 악센트와 음량 대조로 매 순간 참신한 분위기를 전하는 고음 현악기들의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하프시코드와 테오르보, 저음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역동성이야말로 연주회 내내 돋보였다.
바이올린 협주곡 ‘라 스트라바간차’ A단조에서 비온디가 보여준 아찔한 속도감과 기교는 놀라웠다. 비발디의 ‘사계’로 공연 후반부가 시작되자 전반부 공연이 ‘사계’를 위한 전주곡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계’ 연주는 흥미진진했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 그러나 이들의 연주는 ‘봄’의 새소리를 나타내는 바이올린 솔로부터 새로웠다. 대개 이 장면에서 새소리를 연주하는 세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모두 비슷한 연주 스타일을 보여주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를 생생하게 전했고, 2악장에선 비올리스트의 매우 적극적인 연주 덕분에 그가 묘사한 개 짖는 소리가 나른한 봄밤의 졸음을 모두 몰아내버렸다. 특히 ‘여름’ 3악장의 폭풍 같은 연주, 그리고 ‘겨울’에서 선보인 콜레뇨(활 털이 아닌 활대로 연주하는 현악기 연주법)와 버르토크 피치카토(현이 지판을 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현을 퉁겨 연주하는 주법) 소리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효과적인 음향 표현을 위해 19·20세기에나 등장할 법한 이런 주법을 18세기 비발디의 작품에 적용할 수 있는 그들의 유연함에 감탄했다. 만일 비발디가 이 연주를 듣는다면 처음엔 매우 놀라겠지만 그들의 창의적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낼 것 같다.
이들은 환호하는 청중을 위해 텔레만 ‘무궁동’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청중의 박수갈채가 그치지 않자 비발디 ‘사계’ 중 가장 격렬한 ‘여름’ 3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했는데, 앙코르 무대에서 이들은 본 공연 연주와는 또 다른 해석으로 우리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매 연주 때마다 음악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창의적 영감! 이것야말로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을 수밖에 없는 비결일 것이다.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