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플레트뇨프

9년 만에 피아니스트로 돌아오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오랜 시간 지휘자로 무대에 섰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고찰과 경험을 통해한층 더 깊어진 플레트뇨프의 피아니즘을 만날 시간이다

오랜 시간 지휘자로 무대에 섰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고찰과 경험을 통해한층 더 깊어진 플레트뇨프의 피아니즘을 만날 시간이다


무대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내지 않는 음악가이기 때문일까. 지휘자만큼 무대에서의 동작이나 분위기, 나아가 외모 등에 따라 그 인기나 지명도가 예민하게 좌우되는 음악가는 없는 듯하다. 다양한 카리스마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지휘 스타일이 존재하고 팬들의 선호도도 이에 따라 흥미롭게 갈린다. 지휘봉 없이 양손을 사용하며 그 동작이 마치 빵이나 국수를 반죽하는 주방장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모션을 보이는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지휘자들의 다소 와일드한 동작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지휘자들은 단원들에게 적절한 음악적 지시를 주는 것과 동시에, 그를 주시하고 있는 청중들에게도 진행되고 있는 음악의 ‘상태’를 즉각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청중, 양쪽 모두에게 음악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지휘자의 핵심이죠.”

이런 논리로 말하자면, 지휘자로서 그의 후배 격이 되는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지휘 폼은 겉모습만 보아서는 오케스트라 단원과 청중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다소 엉성하고 약한 모습이다. 직접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처음 볼 때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글쎄… 리허설 테크닉이 굉장히 좋은가 봐요.”

실제 무대에서의 지휘 모습이 신통치 않은 것에 비해 러시아내셔널오케스트라의 완성도 높은 연주가 놀랍다는 것이 바로 이들의 의견이다. 플레트뇨프가 ‘리허설’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테크닉’이 남다른 것은 분명하다. 오래전이지만 그의 리허설 장면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조용하고 차분한 지휘 모션처럼 간결하면서도 꼼꼼한 지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특히 다양한 악기들이 앙상블로 빚어내는 음상을 매끈하게 다듬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이나 감성으로 단원들을 이끌기보다는 지적인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는 플레트뇨프의 모습은 흡사 정밀한 기계를 리모트 컨트롤로 다루는 과학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방법도 이와 지극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마치 손끝에 열 개의 작은 두뇌가 달린 듯, 건반을 터치하면서 낱낱의 반응을 주시한다. 아울러 세밀한 동작들은 마치 섬세한 기계를 조작·제어하듯 다루는 플레트뇨프의 능력이야말로 그의 고유한 피아니즘이다.

연주자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장과 변모가 가늠되어 향후가 기대되는 인물도 있지만, 플레트뇨프는 이미 이십대 초반에 더 이상의 균형 잡힌 연주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숙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지난 공백이 그 독특한 개성에 상처를 입히지 않았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독보적이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러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것이 바로 플레트뇨프의 세계다.

 

이십대 초반에 이룩한 완벽한 균형감

한동안 잊고 있었던 플레트뇨프의 피아니즘 가운데 우리가 맨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은 그의 투명한 톤 컬러다. 그저 예쁘기만 한 투명함이 아니라 지나치게 깨끗해 마치 무균질의 용액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투명한 느낌은 피아노에서 그만이 이끌어낼 수 있는 특별함이다. 병원의 복도에서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와 형광등 불빛을 연상시키는, 자칫하면 ‘결벽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차가운 음색은 차이콥스키의 소품들에서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다. ‘18개의 소품’ Op.72, ‘사계’ 등에서 빚어내는 그의 음색은 무색·무취·무향의 증류수와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가장 뜨거워야 할 러시아 작곡가에게서 나타나는 차가운 정서가 듣는 이들을 당황시키지만, 여기에 플레트뇨프의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즉 그 투명한 색채의 바닥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그 누구보다도 포근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오래전이지만 그가 모스크바에서 연주했던 바흐의 ‘파르티타’ 6번은 지금껏 필자가 경험한 음악회 가운데 베스트였다. 바흐의 센티멘털에서 나오는 뜨거움을 차가운 지성으로 다스리는 동시에 그 울림을 정제시켜 음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그의 연주는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것이었다. 이번 내한에서 들려줄 바흐의 ‘영국 모음곡’ 3번에서도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을 기대한다.

건반 위에서의 고민과 갈등을 현학적인 진지함으로 풀기보다는 가벼운 농담과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도 플레트뇨프만의 매력이다. 그는 모차르트보다는 하이든의 협주곡을 선호하는데, 예측 불허의 상황을 즐기기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감정 표현과 악상, 루바토 등에 묻어있는 유머와 재치를 온전히 그려내려는 의도로 녹음한 C.P.E. 바흐의 소나타집은 발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분야의 결정반이다. 또한 그라모폰 상을 수상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집은 그의 재치가 총집합된 녹음인데, 도약과 아르페지오, 논 레가토와 스타카토를 오가며 수놓는 작곡가의 음악적 유희를 극대화한 연주였다. 낙천적인 자세와 선율의 음영을 뚜렷하게 그려내는 플레트뇨프의 스타일과 흥미롭게 맞아떨어지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들은 그가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다. 풋풋한 서정성 속에 숨어있는 유쾌함과 풍자적 요소가 이번 공연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관심이 간다.

무대에서의 직관과 청중들과의 호흡을 흥미롭게 일치시키는 능력을 지닌 플레트뇨프에게 연주에 있어 즉흥적 요소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러시아내셔널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뒤 잇따라 2007년 등장한 협주곡 5곡은 베토벤과 연주자가 빚어내는 상상력의 총합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놀라움과 충격, 즉흥적 악상의 연속이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선보일 스크랴빈의 24개의 프렐류드 Op.11은 그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어떻게 보면 오랜만에 이루어지는 피아니스트로서의 회귀를 스스로 자축하고 원점을 되새겨보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작곡가가 신비주의 사상에 빠지기 전, 쇼팽의 동명 작품을 모방하여 자신의 음악성을 투영하려 시도한 이 작품은 피아니스틱한 매력과 농염한 정서, 한 곡마다 들어있는 상징성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는 난곡이다. 플레트뇨프의 해석은 늘 그렇듯 무한히 자유로우며, 독특하지만 러시아적 정서로 풀어낸 프레이징과 음울한 매력의 음향이 뿌리 속 깊이 숨 쉬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의 고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즉흥적 표현은 그날의 청중이 되지 못한다면 결코 누릴 수 없는 놀라움이다.

그의 아집과 변덕은 그의 탁월한 무대 뒤에 늘 남곤 했던 수수께끼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찌됐던 현명한 연주자의 물음표는 클수록 좋다. 그가 피아노를 통해 던질 커다란 물음표에 미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미하일 플레트뇨프 독주회 6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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