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정명화

든든하고 꼼꼼한 대관령의 맏언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여름이 오고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막이 오르면

첼리스트 정명화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음악가들의

어머니 혹은 누나가 된다

강원도 대관령에 여름이 내리면 숲과 산천초목은 음악가들의 음표에 매달려 그 시간을 난다. 산천이 열리고 닫히며 솟고 잠기는 구석구석에 음악이 들어와 앉을 때, 그 안에는 행복한 고립이 펼쳐진다.

2004년 ‘자연의 영감’이라는 주제로 첫선을 보인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곧 만나볼 첼리스트 정명화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공동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며 매년 ‘새로운’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위해 노력 중이다. “음악제는 여름 잠시 동안이에요. 하지만 예술감독으로서 일 년 내내 다양한 업무를 합니다”라고 말하는 정 감독은 음악제의 방향 제시부터 음악가 섭외, 프로그램 선정과 음악가들의 의견 수렴 등 음악제의 내실과 외연을 두루 살핀다. 또한 횟수를 더할수록 매년 새로운 주제를 내걸어 분명한 차이를 내세워야 하는 것도 예술감독의 업무 중 하나다.

“2013년부터 몇 년간 지역을 중심으로 음악사의 중요한 흐름과 레퍼토리를 소개하기로 정했습니다. 어떤 단어나 문장이 되었건 청중이 곧 그 지역을 생각할 수 있는 문구를 선정해요. 작년엔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를, 올해엔 고전음악의 중요한 산실이자 성악과 오페라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와 클래식 기타뿐만 아니라 세계음악의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낸 스페인을 조명하고자 해요. 그래서 주제를 남부의 찬란한 햇살과 정열, 그리고 낭만을 나타낼 수 있는 ‘오 솔레 미오’로 정했어요.”

음악의 키가 크는 곳, 명 연주자들과 학생들의 만남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가하는 음악가들의 나열만으로도 음악제의 수준과 열정의 농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정명화와 정경화를 비롯하여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피아노·기타·플루트·클라리넷·트럼펫·타악기·성악 등 다양한 분야의 명 연주자는 물론 GMMFS오케스트라와 국내 작곡가, 실내악 앙상블, 합창단이 함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음악 유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알펜시아 콘서트홀과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리는 12개의 ‘저명연주가 시리즈’(7월 24일~8월 3일) 주인공들이며 그간 정 감독의 ‘안목’이 일군 수목과 꽃들이다. 다음은 정명화 감독과의 인터뷰.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장점 세 개를 꼽아주십시오.

국제적으로 선발된 우수한 학생들, 아시아권 최고의 음악제라는 자부심, 그리고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

음악가들보다 ‘학생들’을 먼저 꼽으셨습니다.

사실 첫 회부터 한 해만 거르고 매년 참가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에는 국내에 이렇게 ‘좋은 페스티벌’이 없었어요. 그래서 매년 여름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비싼 여비를 들여 외국의 음악제를 다녔어요. 대관령국제음악제에는 국내외 세계적인 연주자와 교수들이 오니 그럴 필요가 없고, 국내 학생들에게 더 좋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에 바랄 게 없습니다.

스스로 ‘좋은 페스티벌’이라 말씀하신 것에서 감독님의 어떤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동생(정경화)과 제가 책임을 맡아서가 아니에요. 해외 여느 페스티벌을 다녀보아도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외 연주자들 영입을 통해 공연과 교육에 내실을 다지는 등 전 세계 음악제들의 모범 사례가 된다고 자부합니다. 풍경 아름답죠, 시원하죠, 시설 좋죠, 강원도민의 인심 좋죠, 애호가와 후원인들 성원 또한 풍성하죠. 입장권도 계속 매진입니다.

초청 받은 해외 연주자들은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어떻게 평하나요.

동료 음악가들과 어울려 두 주 정도 연습하고 연주하는 즐거움이 으뜸이라고 해요. 또 2년 전부터 한국관광공사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강릉단오제 역사문화탐방’도 연주자와 외국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이렇게 많은 국내외 음악가들이 모이면 발생하는 문제점은 없나요? 예술감독으로서 고민도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음··· 가장 큰 고민은 음악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거예요(웃음). 관객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객석에 앉지만 연주자들은 긴장되고 공연 준비에 신경 쓰느라 굶주린 채 무대에 서거든요. 그래서 연주 뒤에 엄청난 허기를 달래주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여름을 함께 할 음악가들을 선발할 때 어떤 기준이 있을텐데 가장 눈여겨보는 점은 무엇인가요.

중심이 실내악이고, 음악학교도 중요한 파트이기 때문에 솔리스트로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음악가뿐 아니라 실내악과 교육자로서도 좋은 평판을 가진 분들을 초청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실내악의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노장들과의 만남에서 서로 배우게 하는 데 주안을 두고 있죠.

대관령은 산천초목에 피어난 음악의 싱그러운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가 싱싱한 우유를 생산하는 곳이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이런 자연의 원리를 닮은, 자연 속의 음악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 감독이 공들이는 일 중 하나는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의 학생과 장학생 선발, 마스터클래스와 후원 유치 등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신지아·폴 황, 첼리스트 강승민·문웅휘 등은 수년간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 학생으로 참여했다가 이제는 음악제를 함께 꾸리는 음악가로 성장한 이들이다. 이중 클라라 주미 강은 정식초청 연주자는 물론 음악학교 교수로도 초빙되었다.

음악학교가 연동되기에 꿈나무 음악가들이 많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중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눈에 띄고자 하는 ‘얄미운’ 행동을 하는 학생도 있을 거 같은데요.

글쎄요··· 설사 그렇다 해도 본인들의 기량과 잠재력이 있다면 그리 나쁜 일이 아니지요. 어떻게 하든 좋은 음악가와 자신을 이끌어줄 좋은 교수를 만나는 것은 그들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음악계의 윤작(輪作)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여하는 음악가들 전원이 한국 연주자로 채워지는 날이 오겠죠? 그런 날을 꿈꾸시지는 않나요.

지금이라도 연주자와 교수 전원을 한국인으로 채워도 국제적인 수준의 음악제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발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저부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제가 자국 음악가들만 세우고, 다른 나라 음악제들도 같은 방식을 취한다면 우리 음악가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예전에 클라라 주미 강 씨와 인터뷰를 가졌어요. 그때 “도대체 언제 쉽니까?”라고 물으니 “대관령국제음악제에 가서 쉬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죠.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갖는 배움과 즐거움이 또 다른 젊은 음악가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동생도 이 점을 언제나 강조합니다.

 

내가 겪은 시간이 곧 미래의 힘이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초기에 애스펀 음악제를 롤 모델로 해서 탄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영향을 주고받나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모델은 이탈리아 스폴레토 페스티벌의 전성기와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현재, 즉 안정적인 재정 기반과 조직력이에요.

연주자로서 참여했던 각 페스티벌에 대한 ‘기억’이 대관령국제음악제의 ‘현재’를 만들어가는 것이네요.

앞서 이야기한 페스티벌들의 전성기 때 모습이 제 기억 속에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어요. 그래서 제가 음악제의 청사진을 그려볼 때 모델이 되곤 합니다. 1969년에 스폴레토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는 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 뒤에도 두 번이나 참가했어요. 그러고 보니 소프라노 홍혜경,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에머슨 현악 4중주단이 1981년에 스폴레토 페스티벌에 데뷔를 했네요. 당대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던 잔 카를로 메노티가 이끌었죠. 매일 실내악 무대가 있었고, 오페라와 발레가 각각 하나씩, 그리고 연극과 오케스트라 무대가 두 번, 이런 식이었는데 정말 아름답고 음식도 청중도 모두 훌륭한 음악제였어요. 아! 메노티의 ‘두 대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은 이번 음악제에서 연주됩니다.

말씀하신 두 음악제 외에 좋은 인상을 받았던 음악제가 더 있나요?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과 푸에르토리코의 카살스 페스티벌.

해외 연주자 중에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오고 싶지만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표하는 음악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상 그런 일이 많아요. 대관령국제음악제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여러 음악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려요. 하지만 음악학교의 사정 등 모든 것을 볼 때 우리에게도 그 기간이 가장 좋으니 어떡해요. 예를 들어 베르비에 페스티벌도 우리와 겹치고. 제 친구인 첼리스트 쓰쓰미 쓰요시도 대관령국제음악제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 기리시마국제음악제에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기에 서로 청하고 싶은데 못하죠. 지금 검토 중인 동계 페스티벌이 시작된다면 상황은 좀 다르겠지만.

정명훈의 영입으로 ‘예술감독 정 트리오’를 생각해보신 적은 없는지. 그럼 후원도 트리오가 되지 않을까요.

둘이 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에요. 스케줄도 다르고, 음악과 페스티벌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글쎄요. 감독직 그만두기 전에 다 같이 연주나 한번 같이 할 수 있을지… 희망은 해봅니다.

이번 음악제에서 각 무대마다 ‘오 솔레 미오’를 앙코르로 선보이는 건 아닌지요?

그럴 거 같죠? 그런데 ‘오 솔레 미오’는 실상 프로그램 그 어디에도 없어요. 글쎄··· 박수가 많으면 국립합창단이 한 곡 선사해줄지도!

마지막 질문입니다. 피서지에서 열리는 음악제라서 반바지 차림의 관객도 있을 텐데요.

야외 음악회는 그렇게 입어도 좋은데, 음악당과 뮤직 텐트에서는 자유롭고 편하게 입되 ‘해변의 복장’은 피해주셔야 합니다. 옷도 단정히 입어야 음악도 더 귀하게 감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산천초목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는 카페에서의 인터뷰가 끝났다. 곧 그녀가 카메라의 렌즈와 마주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그리고 세계적인 음악제의 예술감독은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했다.

하지만 정 감독은 포즈가 바뀔 때마다 팔과 손등에 불거져 나온 자신의 힘줄을 조심스레 감추었다. 사진에 잘 안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명화의 힘줄··· 그녀의 힘줄은 강원도 산맥의 능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첼로의 활을 움직이고, 수많은 서류에 지나갈 감독의 사인들을 만드는 그녀의 힘줄. 그 ‘줄’이 있기에 예술가들이 새롭게 엮이고, 음악과 여름과 자연이 한데 엮이는 것 아닌가.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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