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폐막공연이 열린 5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프랑세의 플루트·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궁정음악을 위해 최나경·양고운 그리고 김영호가 무대에 등장했다. 가득 찬 객석만큼이나 축제의 대미는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 분위기가 1악장 미뉴에트부터 잔뜩 배어나왔다. ‘여명’의 시작을 즐겨라! 최나경의 농익은 플루트는 무언가(無言歌)를 불렀지만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테크닉을 넘어 여유와 연륜마저 더해진 느낌의 최나경은 바쁜 시간을 쪼개 올해 축제의 15회 공연 가운데 무려 여덟 차례나 출연해 작곡가 10인의 각기 다른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수많은 레퍼토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에 넣어둔 덕분이다. 여기에 최고의 장인이 선물로 주었다는 다이아몬드 박힌 ‘골드 플루트’는 두터운 질감까지 더해주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예술감독 강동석을 필두로 하는 출연진은 가히 실내악 축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줬다. 피아니스트 조지프 칼리히슈타인·장 베르나르 포미에, 바이올리니스트 하이메 라레도·초량 린, 비올리스트 폴 뉴바우어, 첼리스트 에드워드 애런·앙리 드마르케트를 비롯한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축제 내내 자리를 지켰다. 강충모·이경선·김상진·조영창·양성원… 폐막공연에 나선 우리 연주자들의 이름이다. 그야말로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들이 총집결한 셈이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앞의 곡보다 이 곡이 더 좋습니다.”
순간 객석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3년 전 줄리아드 음대 교수로 초청돼 우리 음악계의 쾌거를 일구었던 피아니스트 강충모. 오랜만에 귀국한 그는 수크의 피아노 트리오 C단조를 연주하기 전에 유쾌한 해설로 청중과 먼저 만났다. 명불허전 강충모의 피아노는 따뜻한 인간미를 풍기며 양성원의 첼로와 마르티노바의 바이올린을 감싸 안았다. 독주뿐 아니라 실내악 분야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활약하고 있는 양성원의 명인기(名人技)는 음악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후반부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F단조 1악장. 바이올린·첼로·피아노의 유니슨으로 시작하는 도입부 주제가 점차 고조되면서 마치 오케스트라의 전 합주와 같은 엄청난 음량이 쏟아져 나왔다. 강동석·김혜진·폴 뉴바우어·조영창 그리고 장 베르나르 포미에의 피아노가 가세한 중량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여전히 앳된 얼굴의 강동석과 어느덧 초로의 신사로 변한 조영창의 첼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에스트로의 품격이 느껴졌다. 코다에서 피아노의 페달음을 시작으로 각 악기가 차례차례 들어오는 대위법은 압권이었다. 2악장 안단테에서 리릭한 흥취는 연주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객석까지 전달되었다. 특히 조영창의 둔중한 피치카토는 순간순간 가슴을 쳤다.
실내악은 언제나 우리에게 양념이었다. 하지만 아홉 해를 맞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당당히 주 메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민도 있다. 내년에는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축제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클래식 음악계 전체가 상생할 수 있다.
사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