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협연, 히로카미 준이치/ NHK 심포니 내한 공연

크고 작은 시야의 조화로운 공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6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만약 무대에서 연주자가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상반된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나’의 공존이랄까. 연주를 하면서 자신만의 감상이나 환상에만 빠져들면 곤란하다. 동시에 청중보다 앞서 자신이 만들어낸 소리를, 듣는 이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작품의 이론적인 분석이나 해석과는 별개로, 무대에 서는 사람에게는 ‘큰 시야’와 ‘작은 시야’ 중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앞서의 공존과는 달리 이는 철저히 선택의 문제다.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거대한 시각을 내세울 것인지, 아니면 그 전체를 이뤄내는 디테일의 강조가 우선인지… 그 선택 방향은 예상 밖의 흥미로운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지난 6월 1일 히로카미 준이치와 NHK 심포니,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만남은 그 상반된 선택으로 빚어지는 불균형이 오히려 재미있던 무대였다.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차분히 음악회를 시작한 NHK 심포니의 미시적 시각은 첫 곡에서부터 드러났다. 프레이즈의 깔끔한 뒷마무리와 청명한 음색, 각 성부들의 독자적 움직임과 균형감각은 뛰어났으나 모든 요소들이 합체되어 나타나야 할, 고양된 느낌이나 신선한 음향의 등장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 기인한 듯 모든 마디를 과장된 제스처로 장식하며 움직이는 히로카미 준이치의 해석 방향도 아기자기함에 맞춘 듯했다.

손열음은 자신의 주 레퍼토리 중 하나인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호평이었던 만큼 대중적 인기도가 높은 3번의 해석에 부담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손열음의 해석은 20세기 초 러시안 비르투오시즘과 세련미, 아울러 작곡가 내면에 비밀스럽게 숨어있는 로맨틱한 정서까지 야무지게 그려냈다. 명랑하면서도 들뜨지 않은 묵직함으로 러시아 협주곡의 무게를 표현한 1악장, 사색과 우아한 정서를 오가며 변주들의 음양을 여유 있게 바라본 2악장, 흥분을 절제하며 더욱 탄력 있는 리듬감과 고도의 집중력을 선보인 3악장 등에서 이 피아니스트가 작품을 소화해내기 위해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이용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움직임도 솔리스트의 자세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였다. 피아니스트가 세밀함에 치중할 때 긴 호흡으로 대조를 이뤘으며, 거침없는 타건으로 쭉쭉 뻗어가는 모습을 보일 때면 한 발 물러서서 텍스트의 빈 공간을 현명하게 채웠다.

후반부의 말러 교향곡 4번은 악장 간의 극명한 대조와 선명하게 드러난 악곡의 외형, 타이트하게 조정된 앙상블이 특징인 연주였다. 밝은 음색과 강한 억양의 아고기크가 인상적인 1악장과 둔탁한 울림으로 이색적인 분위기 전환을 꾀한 2악장, 다소 과장되었으나 극적인 연출과 건강한 음향으로 오케스트라 개개인의 역량을 보여준 3악장 등 모두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되었으나 히로카미 준이치의 지나치게 꼼꼼한 취향이 작품이 지닌 거인적 중량감과 이에 따른 묵직하고 자연스런 행보를 가로막는 듯해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피날레에 등장한 소프라노 로사 페올라는 나이에 비해 노련한 무대 매너와 양감 넘치는 음성으로 당당한 존재감을 나타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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