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의 나이에 파리로 유학간 안겔리치의 정체성은 프랑스와 이어져있다. 그의 다음 행보 중 중요한 스텝으로 베토벤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내한 공연에서 연주할 라벨의 협주곡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다
월드컵 경기를 종종 끊기기도 하는 뿌연 화질로 감상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웬만한 콩쿠르를 생중계로 감상하는 시대가 됐다. 해외에 있는 또래 음악가들의 연주 소식이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전해졌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한국의 음악도들에게 전달됐다. 자신감은 ‘앎’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 자신감은 목표에 대한 강한 집념과 그 목표를 위한 자기 훈련을 스스로 즐길 줄 아는 현명함으로 바뀌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전해지는 콩쿠르에서의 한국 음악가들 승전보는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만큼이나 놀랍다. 필자의 유학 시절, 러시아의 선생님들이 “조만간 우리보다 한국·일본·중국의 음악가들이 라흐마니노프를 더 잘 해석해낼 것이다”라고 예견했는데, 그 시기는 내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른바 서양음악의 ‘본고장’을 찾아가는 유학의 개념과 목적도 그 성격이 바뀐 지 오래다. 바리바리 짐 싸서 이역만리 타국으로 무작정 길을 떠나는 것보다는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작곡가·작품·언어를 비롯한 현지의 분위기와 총체적 문화 이해를 통해 스스로를 발전적인 자극에 좀더 노출시키기 위한 것에 유학의 목적이 더욱 커졌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피아니스트 니컬러스 안겔리치의 프랑스 유학은 그의 음악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13세에 파리 고등국립음악원에서 알도 치콜리니·이본 로리오·미셸 베로프 등의 명인들을 사사하며 재능을 키웠으며, 리언 플라이셔·드미트리 바시키로프·마리아 주앙 피르스와도 교류했다. 2003년 쿠르트 마주어의 지휘로 뉴욕 필과 링컨센터 데뷔 무대를 치루고, 그간 샤를 뒤투아·블라디미르 유롭스키·야니크 네제 세갱 등 주로 유럽의 지휘자들과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여왔다.
로베르 카자드쥐 콩쿠르·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등에서 상위 입상한 경력이 있지만, 안겔리치는 화려한 무대 매너나 외모 등을 화제 삼아 성장한 케이스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온라인으로 홍보하거나 스케줄을 뽐내는 법이 없다.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한 연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다소 내성적인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했던 안겔리치를 기억하는 필자 주변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프랑스인들도 인정할 만큼 훌륭하게 적응해 성공적인 유학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알차게, ‘정중동(靜中動)’의 성장기를 보냈다고 생각되는데, 요컨대 ‘파리의 아메리칸’으로만 남지는 않았던 셈이다.
재능을 내세우지 않고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닦는 음악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안겔리치도 긍정적 의미의 ‘암중모색’을 긴 호흡으로 벌이고 있는 인물이다. 40대 중반인 지금도 그 탐험은 계속되고 있다. 콩쿠르 입상 직후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에서 내놓은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전곡 녹음은 깔끔하면서도 날카로운 기교를 뽐낸 호연이었는데, 그 후 30대에 들어서 발표한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전곡은 탐미적인 취향과 젊은이다운 신선함으로 채워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리스트의 후기 피아노 작품을 대변하는 인상파적 정서와 동시에 프랑스적 우아함, 관능미가 넘치는 이 작품집이야말로 당시 30대 초반이던 안겔리치의 음악적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은유로 가득 찬 ‘오베르만의 골짜기’, 라파엘로의 회화를 인상파적으로 소화해낸 ‘혼례’,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과도하지 않게 드러내 은근한 매력을 주는 ‘에스테장의 분수’, 아가페와 에로스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리스트의 의식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린 ‘페트라르카 소네트’들까지 안겔리치의 성숙함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30대 중반 이후 안겔리치가 브람스의 세계에 몰입한 것은 일견 같은 후기낭만의 시대적 연관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다분히 표제음악적인 리스트의 피아니즘을 거쳐 절대음악의 수호자였던 브람스의 작품으로 건너온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행히 안겔리치의 위험한 도약은 지금까지도 효력을 발휘하며 성공 일색이다. 카퓌송 형제·프랑크 브랄레 등과 함께 한 실내악 시리즈를 필두로, 인테르메조를 비롯한 소품집·변주곡집·협주곡 등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손을 대는 작품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후기의 작품들을 두 장의 음반에 나눠 담은 소품집은 노경에 이른 브람스의 쓸쓸함을 담담한 터치로 과장 없이 소화해내 오히려 화사한 세련미가 느껴지며, 두 개의 랩소디 Op.79에서는 씩씩하고 솔직한 남성미를 드러낸다. 랩소디와 함께 실린 ‘파가니니 변주곡’ 두 세트 역시 정공법적인 해석으로 건강미를 표현해내고 있다. 협주곡 두 곡 역시 안겔리치의 대표 레퍼토리로, 그중 파보 예르비와 힘을 합한 협주곡 1번의 2008년 녹음은 입체적인 악상과 긴밀한 호흡으로 화제를 모았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이 그려내는 풍성한 양감의 ‘밀당’은 예르비의 재치로 극대화되며, 안겔리치의 유연하면서도 정확한 타건은 작품이 지닌 거대한 스케일을 작위적인 설정 없이 확대시키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근원적 기질인 내성적 분위기에서도 브람스의 기질과 많은 부분 유사함이 발견된다.
다음 행보를 위한 중간 기착지, 라벨 연주
얼마 전 발간된 졸저 ‘피아니스트 나우’에서, 필자는 그의 다음 행보 중 중요한 스텝으로 베토벤을 지적했다. 브람스에 매료된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오래전 미라레 레이블로 중기 소나타 음반을 내놓아 주목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베토벤의 주요 소나타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는 안겔리치가 조만간 베토벤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칠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또 이번 내한 공연에서 연주할 라벨의 협주곡 두 곡은 일종의 중간 기착지 혹은 반환점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된다. 요컨대 자신의 예술세계에 뚜렷한 변화를 주기 직전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라벨의 세계라 보인다.
이른바 자신의 본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라벨이지만, 학생 시절부터 메시앙·슈토크하우젠·불레즈 등의 작품에 익숙했던 안겔리치에게도 두 협주곡은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작일 것이다. 안팎이 촘촘하고 꼼꼼한 균형으로 채워진 라벨의 작품은 제아무리 소품이라도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흠 잡을 데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최만년의 작품인 두 협주곡은 각각 그로테스크함과 난해한 상징성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 재즈적인 흥겨움과 거친 정서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등을 고상한 에스프리로 승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낭만의 세계를 통해 30대를 현명하게 숙성시킨 안겔리치의 노련함이 어떤 색깔의 라벨을 연출할지 기대된다.
어느새 일년 중 가장 습한 계절이 왔다. 꿉꿉함이 마음 깊은 곳까지 압박해올 때 가슴속을 청명한 프랑스의 하늘로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베를린·런던·파리 등의 오페라 극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지휘자 이브 아벨과 여러 번의 협연을 통해 이제는 친숙해진 파트너 서울시향과 만나는 안겔리치의 라벨이 우리에게 어떤 ‘글로벌적’인 감동을 전해줄지 기다리게 된다.
니컬러스 안겔리치 협연, 서울시향의 이브 아벨의 프렌치 컬렉션
7월 4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비제 ‘아를의 여인’ 모음곡 1·2번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