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맥에서 불어온 음악의 바람

야마다 가즈키/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내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지난 봄, 데이비드 진먼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내한 이후 스위스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축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내한한다. 한여름에 맞이하는 스위스의 음악적 바람!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계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오케스트라의 이름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가 도이치 그라모폰 선정 유럽 오케스트라 순위 1위에 등극했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나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같은 극장 소속 악단도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뉴욕 필하모닉의 경우 얼마 전 내한 무대에서 확인했듯이 참담한 성적으로 전성기의 고고한 앙상블에서 한참이나 내려와 있다. 반면 쾰른 필하모닉이나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같이 현지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오케스트라가 실제 내한 공연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의 오케스트라 실력은 백지 한 장 차이다. 확인 없이 우리가 등수를 매길 뿐이다.

스위스에도 베를린 필과 빈 필에 필적하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하나는 독일어권에 위치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권에 자리한 제네바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이하 OSR)다. 루체른과 취리히가 스위스의 독일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프랑스와 인접한 제네바는 로잔과 함께 소위 ‘로망드 지역’을 이루는 중심 도시다. 루체른은 루체른문화컨벤션센터(KKL)를 품고 있으며 루체른 페스티벌로 유명하고, 취리히는 최상의 프로덕션으로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취리히 오페라와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도시다. 그리고 제네바에는 취리히 오페라나 바젤 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네바 대극장과 콘서트 전용 공간인 빅토리아홀이 있다. OSR은 이곳 빅토리아홀에 상주한다.

어린 시절을 제네바에서 보냈던 영국 영사 대니얼 바턴은 1883년 그의 오랜 꿈이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구체화하기에 이른다. 제네바의 건축가 존 카몰레티에게 설계를 부탁해 대극장과 음악원에서 가까운 곳에 빅토리아홀을 지어 그의 군주였던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정한 것이다. 고전 및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결정판인 빅토리아홀 파사드의 양 벽면에는 교향악 작곡가 16명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로코코 양식의 파이프 오르간과 1,850석의 객석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산 위에 산이 나타나고 알프스 위에 알프스가 솟아오르는’ 법이다. 유럽과 미국의 몇몇 공연장만이 최고가 아니다. 빅토리아홀의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여기에 OSR이 둥지를 틀고 있으니 가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스위스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스위스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음악은 어떨까.


▲ 일본의 젊은 지휘자 야마다 가즈키 ⓒMarco Borggreve

1980년대 국내 라이선스 LP의 전성시대에 고전음악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누구나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와 OSR이 함께 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음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드뷔시·라벨·베를리오즈와 같은 프랑스 작곡가와 스트라빈스키로 확장되곤 했다. ‘앙세르메의 악기’ OSR은 1918년 앙세르메가 정부와 손잡은 뒤 스위스의 전문 오케스트라로 거듭났다. 이는 빅토리아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7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50년 동안 포디엄을 지킨 앙세르메는 OSR과 숱한 명연·명반을 쏟아냈다. 이는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50년 밀월 관계만큼이나 위대한 업적이었다.

앙세르메 이후 파울 클레츠키에 이어 볼프강 자발리치가 사임할 즈음부터 호르스트 슈타인이 재임했던 몇 년 동안 OSR은 해체 직전까지 가는 암흑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르민 요르단이 1985년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뒤 악단은 기적적으로 재건되었다. 1991년 요르단은 OSR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 내한해 정밀하고 조탁된 사운드를 들려주며 건재를 과시한 바 있다. 지휘자 파비오 루이시·핀채스 스타인버그에 이어 마레크 야노프스키가 다시 OSR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2012년 9월 14일 에스토니아의 거장 네메 예르비가 75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OSR의 9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취임 연주회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을 완성해가는 예르비와 OSR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런 OSR이 한국에 온다. 지난 4월 21일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을 가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난 지 불과 3개월 만에 또다시 스위스 최고의 악단이라! 음악팬들로서는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막힌 시리즈를 맞은 셈이다. 7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나는 OSR의 세 번째 내한은 창단 후 최초로 수석 객원 지휘자로 위촉된 일본의 젊은 거장 야마다 가즈키가 지휘봉을 잡는다.

현 음악감독 예르비가 같이 오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2009년 브장송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뒤 무섭게 질주하고 있는 가즈키는 OSR의 특기인 프랑스 작곡가와 현대음악 해석에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2010년 가즈키가 처음으로 OSR을 지휘했을 때 악단의 행정 당국은 예르비 이후의 음악감독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는 완곡히 거절했다. 스스로를 더 단련시켜야 한다는 겸손한 생각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OSR은 수석 객원 지휘자 타이틀로 가즈키를 붙잡아두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의 시작으로 낙점된 곡은 아르튀르 오네게르의 대표작 ‘퍼시픽231’. 스위스 작곡가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그의 곡은 아마도 OSR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곡일 것이다. 평소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 연주에 탁월했던 OSR은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사한다. 스위스 시계와 같은 정밀함과 한국인의 뜨거움을 품고 있는 클라라 주미 강과 OSR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음악 성찬인 셈이다. 이 협연은 근래 보기 드문 불꽃 튀는 접전이 될 전망이다. 후반부 메인 레퍼토리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다. 앙세르메 시절부터 OSR의 최고 명반으로 꼽혔던 곡이니만큼 변화와 추억이 동시에 기대된다. 필히 먼저 음반으로 앙세르메가 지휘한 ‘셰에라자드’를 듣고 와야 진정한 악흥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내한하는 해외 오케스트라 가운데 가장 신선하고 관심이 가는 두 악단이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였다. 7월 15일 OSR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정단원이 여럿 빠진 채로 내한하는 성의 없는 빈 필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OSR에게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야마다 가즈키/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협연 클라라 주미 강)

7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네게르 ‘퍼시픽231’,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림스키 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사진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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