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핏빛 혁명의 도시에서 피어난 사랑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music 프랑스적 에스프리,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앨런 페이지는 파리의 한 노천카페에 앉아 꿈과 현실의 미묘한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속에서 선명하게 클로즈업되는 그곳의 이름은 ‘카페 드뷔시(Cafe Debussy)’. 그런데 파리에는 드뷔시라는 이름의 카페가 없다. 영화 속 장면은 사실 파리 15구의 어느 작은 이탈리안 식당을 개조해 찍은 것이다. 더 재밌는 건 이곳이 세사르 프랑크 6번가에 있다는 사실이다.

세사르 프랑크는 벨기에 태생으로 프랑스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대작곡가다. 굳이 프랑크 거리의 한 편에 드뷔시라는 카페 이름을 붙인 건 놀런 감독 특유의 암호 찾기 식 유머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어쨌거나 영화 속에서 파리 분위기를 내기 위해 그 이름을 의도적으로 차용했을 정도로 클로드 드뷔시는 파리 고유의 정서와 분위기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곡가로 손꼽힌다.

그는 음악사상 최초로 음색’을 표현의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실로 프랑스적 에스프리의 완벽한 음악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즉 드뷔시 음악 특유의 정밀한 감각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미묘한 붓 터치만큼이나 예민하고 섬세하며, 상징주의 시인들의 언어만큼이나 우리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한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이런 드뷔시적 음악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모두 네 편의 피아노 음악이 세트를 이뤄 간결한 멜로디 속에서도 형언할 수 없이 많은 사연과 감정, 스토리를 엮어내고 있다. 특히 ‘달빛’은 가장 널리 알려진 명곡으로, 몽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도 결코 긴장을 놓지 않는 지성의 번득임도 엿보여 마치 젊은 철학도가 써내려간 짧은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느낌도 준다.


music 생 쉴피스 성당에서 마주친,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

파리의 지성과 낭만을 대변하는 곳은 역시나 센 강 좌안의 5구와 6구라 할 수 있는데, 이곳은 6구의 생 제르멩 데프레와 카르티에 라탱(라틴 지구)으로 불리는 파리의 대학가들이다. 대학생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이 거리의 주인공이기에 예부터 이곳을 무대로 한 오페라들이 많이 탄생했다. 6구의 중심지에 위치한 생 쉴피스 성당은 쥘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의 주요 무대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와 음향으로 영혼 깊숙한 곳까지 위무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마농은 욕망을 쫓아 연인 데 그리외를 저버린다. 마농의 배신에 극심한 충격을 받은 데 그리외는 생 쉴피스 성당에서 견습 신부로 일하며 세속의 고뇌에서 벗어나려 하나 결국은 그 앞에 다시 찾아온 마농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성당 안에는 들라크루와의 꿈틀거리듯 역동적인 종교화 세 점이 장대히 펼쳐져 있는데, 번뇌를 이기지 못해 운명 앞에 굴복하고만 데 그리외의 가엾은 영혼을 위로하는 듯한 모습이다.


music 파리 대성당에서 울리는, 생상의 교향곡 3번 ‘오르간’

프랑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생 쉴피스 성당의 장엄한 파이프오르간도 볼거리다. 사실 파리의 거리를 걷다보면 유독 장대한 대성당의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그 안에는 대개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예부터 고딕식 교회건축이 발달해 한때는 이탈리아에게 선진기술을 전수하기도 했고, 십자군 운동에서는 전 유럽의 선두에 서서 전쟁을 이끌 정도로 열성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다. 이런 전통은 음악에도 그대로 이어져 프랑스 출신 작곡가 가운데는 유달리 교회음악과 관련된 인물이 많고, 또 그들 대부분은 젊은 시절부터 오르간을 연주했다. ‘프랑스의 모차르트’라 불렸던 천재 작곡가 카미유 생상 또한 ‘오르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3번을 발표했다. 수직으로 장대하게 솟 아오른 음악이 성당의 높디높은 궁륭 구석구석까지를 채워나가는 그런 직조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교향악으로, 파리의 또 하나의 측면, 즉 가톨릭 도시로서의 면모를 잘 느끼게 해주는 필생의 명곡이다.

play 혁명으로 물든 도시,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드라마는 압축 거울이다. 다양한 색깔의 광선들을 모아서 농축한다. 그리고 어렴풋한 광선으로 빛을, 빛으로 불길을 만든다.”

빅토르 위고는 예술이 역사·인간·사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희곡 서문을 통해 “관객의 잠재된 감각을 일깨우면서 심각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전하는 것이 낭만주의”라고 밝혔다.

혁명과 예술의 도시인 파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연극은 무엇일까. 꽤 많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생각난다. 빵 한 조각을 훔친 혐의로 평생을 도망다녀야 했던 장발장의 삶을 그린 이 희곡은 1832년 6월 파리의 봉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에겐 시민군이 파리 시내 중심에 바리게이트를 치면서 정부군과 맞서는 동명의 영화 장면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던 파리 시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70년 전만 해도 폭격으로 무너진 파리 시내를 상상해보면 인간은 분명 더 나은 쪽으로 진보한다는 낭만주의의 신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music 멜랑콜리한 파리지앵들의 이야기,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생 쉴피스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5구 지역이 나오는데, 특히 소르본 대학 인근 지역은 라틴 지구로 부른다. 과거 이곳을 오가는 대학생들이 모두 라틴어를 쓰며 공부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가 푸치니의 ‘라 보엠’이다. 앙리 뮈르제의 원작은 다소간 자연주의 문학풍의 싸늘하고 시니컬한 리얼리즘을 담고 있었으나, 푸치니에 의해 멜랑콜리한 청춘 스케치 오페라로 표정을 확 바꿨다. 사실 파리의 청춘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머니가 가볍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서 구김이나 슬픔을 찾기 힘든 건 금전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젊음과 열정을 먹고살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천국의 백만장자랍니다”라는 오페라 속 로돌포의 대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dance 파리의 낭만을 대표하는 곳, 앙줄랭 프렐조카주 ‘공원(Le Parc)’

파리의 중심을 가르며 흐르는 센 강 주변에 위치한 튈르리 정원과 뤽상브르 공원은 파리의 낭만을 대표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남녀를 보며 모티프를 얻은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처음 만난 남성과 여성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감정을 담은 ‘공원(Le Parc)’을 안무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담담하지만 감성적으로 흐르는 모차르트의 피아노곡과 프렐조카주 특유의 추상적인 안무, 고전의 느낌을 주는 바로크 시대의 의상, 그리고 프랑스식 공원의 풍경이 더해져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남녀 사이의 감정 변화를 세 개의 파트로 구분한 이 작품의 절정은 남자를 찾아온 여인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마지막 파드되다. 입을 맞춘 채 여성을 들어 올려 몇 바퀴를 빙빙 도는 장면에는 프랑스 연인의 에로티시즘이 충만하다.


novel 피빛의 파리,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의 두 번째 역사 소설이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혁명 이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격동의 시대였기에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빠져드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뤼시 마네트라는 한 여인을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 시드니 카턴과 찰스 다네이. 이들의 선택은 프랑스 혁명이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파리와 바스티유 감옥 등은 당시 농민들의 비참함과 상류층의 부패와 부정, 무엇보다 격동의 혼란함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소설 마지막 부분의 단두대 처형 장면은 지금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프랑스와 파리가 대가 없이 세워지지 않았음을 각인시켜준다.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파리는 핏빛이다.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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