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천천히 피는 아름다운 꽃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꾸준히 회자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지난해 해외 콩쿠르 입상 후 시간을 머금고 꽃망울을 터뜨린 그녀의 차분하고 단단한 행보

지난해 금호 악기 수혜자로 선정되고, ARD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그녀는 잘 다듬어진 토양 위에 양분을 더했다.

단단한 줄기와 봉긋한 꽃봉오리를 가진 이 젊은 연주자가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린다

김봄소리, 이 싱그러운 이름이 요즘 들어 공연장에 부쩍 등장한다. 그녀는 지난 7월 4일 프라임 필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7월 12일 코리안심포니와 브루흐 협주곡을, 7월 22일 서울바로크합주단과 모차르트 협주곡 5번을 협연했다. 스물여섯 살의 톡톡 튀는 발랄함을 지닌 김봄소리는 다양한 무대를 통해 라이징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짧은 기간 내에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모습에는 젊은 힘이 느껴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젊은 연주자가 가진 ‘가능성’이다. 2012년 서울대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김영욱을 사사하고 있는 그녀는 ‘순수 혈통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다.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하나둘 유학을 떠나는 시점에, 스승 김영욱에게 더 배우고 싶은 마음과 준비 중인 콩쿠르를 마무리하기 위해 국내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지난해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고악기 수혜자로 선정되어 주세페 과다니니(1794)를 사용하고 있고, 뮌헨 ARD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내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유학을 가서 견문을 넓힐 계획이라고 하니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김봄소리는 오는 8월 5일 마제스틱청소년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8월 21일 부천필 유럽 투어 프리뷰 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선보인다. 스스로 ‘무대 체질’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당차 보이고, 청중과의 교감을 생각하는 진지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김봄소리는 악기를 친구 삼아 놀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김봄소리의 시작 여섯 살 꼬마에게 바이올린은 늘 함께하던 최고의 친구였다. 부모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셨다. 아버지는 대학 시절 활동하던 클래식 기타 동호회를 늘 웃으며 추억하셨고, 나 역시 아버지처럼 음악으로 인해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예원학교 학창 시절은 아직까지도 내 기억 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교실마다 있던 피아노,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울리던 악기 소리, 오케스트라 연습 시간… 수많은 기억 중 가장 좋았던 기억은 친구들과 함께 실내악을 하던 시간이다. 재밌게 음악 하는 방법을 배워나갔고, 바이올린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기로 했다.

음악을 하는 이유 나는 예술가여서 행복한 사람이다. 가장 잘하고,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한다는 것. 그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날 기쁘게 한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예민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난 다르다. 오히려 연주를 하면서 긴장이 풀리고, 평정심을 갖게 된다.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슬럼프는 자기가 벽을 만들고,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흔히 콩쿠르 같은 부담감 있는 연주를 준비할 때 슬럼프를 겪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어떤 연주에서든지 긴장을 풀고 부담감을 덜었을 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

첫 해외 콩쿠르 도전기 처음 나간 해외 콩쿠르는 2010년 센다이 음악 콩쿠르다. 당시 스물두 살이었는데 첫 해외 콩쿠르 참가로는 나이가 있는 편이었다. 콩쿠르에 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첫 도전에 겁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김영욱 선생님의 제안으로 콩쿠르를 준비하게 됐다. 동시대에 가장 열심히 음악을 하는 또래 연주자들이 한곳에 모이는 자리에서 그들과 같이 연습하며 자극을 받은 시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 2010년 센다이 연주 후, 일본 관객들이 편지와 선물을 많이 보내줬다. 다정다감한 관객들 덕에 일본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좋다. 이듬해 일본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쳤고, 많은 사랑을 줬던 일본 관객들을 위로하기 위해 센다이로 공연을 갔다. 폐쇄된 공항과 무너져버린 호텔을 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는데, 걱정과 달리 일본 관객들이 오히려 더 밝게 맞아주어 굉장히 놀랐다. 그날 공연은 NHK 방송을 통해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다.

2013년 뮌헨 ARD 콩쿠르 어렸을 적부터 오직 한길로만 뚜벅뚜벅 걸어왔는데, 이 콩쿠르를 거치며 걸음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선 무대에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독일 작곡가의 작품을 독일 오케스트라와 맞춘다는 것 자체만으로 긴장이 많이 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긴장이 모두 사라졌다. 순식간에 음악에 빠져들었고, 천국에 다녀온 것 같은 황홀함을 느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좋아하는 작곡가 베토벤을 좋아한다. 진한 고통이 담겨 있는 그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땐 베토벤과는 다른 순수한 행복이 느껴진다.

나와 가장 밀접한 타 예술 장르 평소 연습을 하고, 연주회를 보고, 영상과 음반을 찾아 듣는 것 외의 시간은 독서에 할애한다. 특히 고전 문학에 관심이 많다. 지난봄, 연주를 위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았는데, 그 기간 동안 틈날 때마다 넵스키 대로를 계속 걸어 다녔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과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배경이 된 거리에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장소를 직접 보니 문학 작품이 더 생동감 있게 와 닿았다. 난 요즘 러시아 문학에 푹 빠져 있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사람 지휘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201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존 스토르고르스가 지휘하는 헬싱키 필하모닉과 스트라빈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스트라빈스키는 까다로운 리듬감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맞추기 어려운 곡인데, 호흡이 착착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바이올린 특유의 테크닉보다 음악적인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니얼 하딩이나 에사 페카 살로넨 같은 지휘자들의 음악적 시각이 궁금하다. 얼마 전에 타계한 로린 마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도 꿈이었다.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것 관객들은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음악회를 찾는다. 연주회장에 모인 관객이 200명이라면, 1분씩만 헤아려도 총 200분이 넘는 시간이 내 연주에 집중되는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내 연주를 듣고 삶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보람이 아닐까.

고악기에 대한 애정 지난해부터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고악기 임대 수혜자로 선정됐다. 주세페 과다니니(1794)를 사용하고 있는데, 소리부터 사이즈까지 정말 나와 최고의 궁합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목소리가 좋은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말을 잘하고 목소리도 좋은 사람한테는 더 믿음이 간다. 연주도 마찬가지다. 음악의 기술적인 요소는 악기와 상관없지만, 좋은 악기 소리와 훌륭한 테크닉이 만나면 연주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앞으로의 계획 매해 일본과 중국에서 투어를 하는데, 오는 10월에는 일본 연주가 예정돼 있다. 내년 2월에 대학원을 마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다. 먼저 유학을 떠난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훌륭한 해외 연주자들과 실내악을 맞춰보고 싶다.

사진 심규태

김봄소리 협연, 임헌정/부천필 유럽투어 프리뷰 콘서트

8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4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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