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회 올드버러 페스티벌 취재기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경이로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지난 6월 13일부터 29일까지 올해로 67회를 맞은 올드버러 페스티벌이 열렸다. 올해도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가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트리스탕 뮈라이·올리버 너슨이 참여했다


▲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이는 피에르 로랑 에마르와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Matt Jolly

영국은 ‘음악 없는 나라’로 수세기 동안 음악의 변방 취급을 받아왔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내세울 만한 작곡가가 있었는데 바로 벤저민 브리튼이었다. 올해로 67회를 맞은 올드버러 페스티벌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브리튼이 말했던 음악을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성스러운 삼각 구도인 작곡가·연주자·청중의 삼위일체를 지향하며, 탱글우드 못지않은 규모로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콘서트홀 부근의 사진·조각·전시 등 음악 외의 시각예술까지 포함한 이 페스티벌은 면면이 알차다. 스타 연주자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지만 야외 공연장의 한계에 아쉬움이 남는 여느 페스티벌과는 달리, 내용에 충실한 프로그램 덕분에 런던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진 외진 바닷가 마을 올드버러는 이 맘 때면 클래식 음악 팬들이 꿈꾸는 목적지로 탈바꿈한다. 앙상블 앵테르 콩탕포랭 출신의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는 수년 전부터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명석한 두뇌에 기반을 둔 해석으로 근래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바닷가인 올드버러에서 조금 떨어진 스네이프에는 브리튼이 심혈을 기울여 오래된 공장을 콘서트홀로 재탄생시킨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홀이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에 세워진 구겐하임보다도 시대를 앞선 이 콘서트홀은 높은 천장과 나무로 둘러싸인 내부로 인해 연주자들의 숨소리까지 전한다. 관혁악은 물론, 실내악과 오페라까지 가릴 것 없이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이 모두 이곳에서 치러진다.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홀의 마법

6월 27일, 유럽 전역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중 뛰어난 실력으로 손꼽히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홀에서 멘델스존·달라피콜라·카터·베베른·리게티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들은 따로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객원지휘자들과 협연자를 바꿔가며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유연성 있게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베베른 교향곡 1번은 이날의 지휘자였던 올리버 너슨의 특별 요청으로 바로 다시 연주되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베베른의 곡이 짧아 늘 아쉬워했다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시 한 번 베베른을 선사했다. 같은 오케스트라가 같은 곡을 연주해도 결코 똑같은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위대한 음악은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이날 가장 돋보인 프로그램은 리게티의 1971년 작 ‘오케스트라를 위한 멜로디언’이었다. 리게티의 디렉션 아래 에튀드를 녹음한 피에르 로랑 에마르와 피에르 불레즈 지휘로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리게티 첼로 협주곡을 녹음했던 장 기엔 케라스가 “리게티가 생애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있던 강렬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평할 정도로 놀라운 연주였다. 청중 역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6월 28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4개의 공연이 이어졌다. 2002년 결성되어 아르모니아 문디의 간판 실내악단으로 거듭난 아르칸토 현악 4중주단은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A장조 K464로 연주를 시작했다. 이어서 에마르의 피아노와 함께 베베른의 곡을 연주했고, 조지 벤저민의 ‘비올라, 비올라’를 거쳐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2번 G장조로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그동안 아르칸토 현악 4중주단의 객원 첼리스트로서 올드버러 페스티벌을 자주 찾았던 젊은 첼리스트 올리비에 마롱은 이렇게 말했다.

“이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자연 속에 존재하기에 더욱 특별하다. 장소가 지닌 마법이 있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여전히 마법처럼 브리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 비 내린 후 짙어지는 흙냄새, 바람 소리를 느끼며 그가 곡을 쓰던 스튜디오 앞을 지나고 있노라면 그에게 평생 영감을 주었던 이 장소의 진정한 매력을 깨닫게 된다.”

뛰어난 비올리스트로서 존경받고 있는 타베아 치머만은 객원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트와 함께 조지 벤저민의 1997년 작품 ‘비올라, 비올라’를 연주하며 비올라가 지닌 독주악기로서의 매력을 한껏 펼쳐 보였다. 비올라가 가진 풍성한 질감과 음향적 효과를 간직한 채 바이올린 못지않은 테크닉을 요구하는 난곡을 그녀는 레코딩과는 또 다른 실황만의 열기를 담아 연주해냈다. 그녀에겐 끝없는 박수가 이어졌다. 짧은 등장이 아쉬웠던 에마르는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파트너십으로 밀도 높은 베베른을 선보였다.


▲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있는 아르칸토 현악 4중주단과 올리비에 마롱·앙투안 타메스티트 ⓒMatt Jolly

시적 감수성으로 가득한 뮈라이의 음악

6월 28일 오후, 브리튼 스튜디오에서 올해의 페스티벌이 포커스를 맞춘 스펙트럴리즘의 대표적 작곡가 트리스탕 뮈라이·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를 포함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뮈라이는 지난해 아르스 노바로 내한해 아시아 초연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의 영국 초연을 앞두고 사뭇 설렌 표정이었다.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홀은 청중으로 빈틈없이 들어찼고, 영국 전역 생중계를 앞두고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얼굴은 다소 경직되어 보였다. 이 곡의 위촉부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세계 초연을 맡았던 에마르는 “뮈라이의 피아노 협주곡은 내가 낳은 아이와도 같다”고 표현하며 애정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뮈라이의 음악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색채와 시적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의 귀와 눈, 심장을 압도한다. 1970년대 아방가르드에 대항한 스펙트럴리즘의 대표 작곡가인 그는 한 음, 한음이 지닌 본래적 가치에 집중했고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영국 초연을 통해 뮈라이라는 작곡가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어서 기쁘다.”

이후 현장에서 만난 뮈라이와 대화가 이뤄졌다.


▲ 트리스탕 뮈라이의 곡이 클랑포룸 빈과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됐다 ⓒSam Murray Sutton

작곡가로서 자신의 곡을 처음 연주로 듣는 순간의 느낌은 어떤가.

두렵고 끔찍하다. 연주를 통해 듣는 음악과 내가 곡을 쓰는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음악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초연의 첫 리허설은 악몽과도 같다. 연주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연주를 망쳐도 듣기에 나쁘지 않은 방식으로 곡을 써야겠다는 걸 깨닫는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더라도 ‘악몽’이 되나.

연주단체나 지휘자의 명성이 질 좋은 연주를 백 퍼센트 보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이건 끔찍해”라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고 비평가들까지 호평을 쏟아내는 성공을 거둘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괴감을 느낀다. 내가 그들과 견줄 수 있나 싶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말러도 초연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연주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평가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연주자나 지휘자는 한번 클래스가 정해지면 그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작곡가는 기다릴 수 있다. 만약 내 음악이 살아남는다면 더 제대로 연주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날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경이로움에 취한 청중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음악 없는 나라에 스스로의 이름을 남긴 위대한 브리튼의 유산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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