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리스트 쉐페이 양

기타 줄을 튕기자 대관령은 뜨거워졌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짝 짜자 자자/짝 짝 짝/짝 짜자 자자/짝 짝 짝”

캐스터네츠의 음향이 스페인 특유의 3박자 리듬을 위풍당당하게 뽐낸다. 흥겨운 리듬 속에 콘서트홀 무대는 순식간에 바르셀로나 광장으로 변한다. 작열하는 태양이 스페인 땅을 내리쬐듯 붉은색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무용수 벨렌 카바네스의 두 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녀가 캐스터네츠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몸을 관능적으로 움직이자 스페인의 화려한 꽃이 피어난다.

지난해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오로라의 노래’라는 주제에 맞춰 북유럽 작품을 선보였던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올해는 ‘오 솔레 미오’라는 주제에 걸맞게 스페인과 이탈리아 중심의 남유럽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음악제 중 스페인의 향취가 가장 짙었던 날은 ‘스페인의 밤’이라고 이름 붙인 7월 30일의 밤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대관령에 노을이 어스름히 내려앉자, ‘스페인의 밤’은 스페인의 뜨거운 속살을 낱낱이 드러냈다. ‘스패니시 기타’라고 불리는 클래식 기타와 에스파냐 계통의 민속음악에 자주 사용되는 캐스터네츠가 이번 공연에 등장하여 화려한 색채감을 수월하게 재현했다.

기타리스트 쉐페이 양의 알베니스 ‘아수트리아스’로 황홀한 밤이 시작됐다. 아르페지오가 퍼져나가자 기타의 선율은 지중해를 타고 흐르듯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이베리아 반도를 방랑하는 집시 기타리스트의 고독함과 애환이 지중해 너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어서 무용수 벨렌 카바네스와 안나 모라(첼로)·강유미(피아노)가 등장해 파야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을 선보였다. 캐스터네츠의 짜릿한 리듬에 첼로와 피아노의 음색이 더해지자 카바네스의 발 구르기는 더 현란해졌고, 커다란 춤사위에 맞춰 눈빛은 매섭게 번뜩였다. 쉐페이 양의 무대가 ‘스페인의 고요한 새벽’이었다면, 카바네스의 무대는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였다. 카바네스와 강유미는 불꽃이 튀듯 강렬하면서도 환상적인 호흡을 보였다. 강유미의 ‘쫀득쫀득’한 피아노 연주는 카바네스의 쾌활한 몸짓에 착착 달라붙으며 스페인의 정열을 환기시켰다.

‘스페인의 밤’ 클라이맥스는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의 사라사테 ‘카르멘 환상곡’이었다. ‘카르멘 환상곡’은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주미 강과 탁월한 음악적 해석을 보이는 손열음에게 안성맞춤인 선곡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더위에 지쳐버린 걸까. 주미 강의 거친 활 컨트롤과 고음에서 불안정한 연주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쉬운 점은 또 있었다. 1부 마지막 순서에 테너 정호윤이 등장하여 스페인 도시를 소재로 작곡된 오페라 아리아 두 곡을 열창했지만, ‘스페인의 밤’은 자꾸만 길어져 청중에게 뜻하지 않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아쉽게도 2부에서 다시 등장한 쉐페이 양과 벨렌 카바네스의 무대는 1부의 순서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주어 1부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지 못했다.

대관령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쉐페이 양의 무대는 기타의 매력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그녀는 지금 EMI 클래식스 전속 아티스트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며 클래식 기타의 입지를 넓혀가는 중이다. 쉐페이 양은 남다른 재능으로 굳건한 지지를 받으며 성장해왔다. 베이징중앙음악원에서는 클래식 기타 전공생으론 처음으로 그녀를 받아들였고, 런던 왕립음악원에서는 전액 장학금을 지원했다. 시종일관 스페인 광장을 연상케 하던 무대가 막을 내린 뒤, 쉐페이 양을 만났다. 다음은 대관령에서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

오늘 연주에서 알베니스의 ‘아스투리아스’ ‘세비야’, 로드리고의 ‘기도와 춤’,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베네치아의 사육제’를 선곡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알베니스는 제가 좋아하는 스페인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오늘 선보인 알베니스의 두 작품은 피아노곡이 기타를 위해 편곡된 작품입니다. 함께 연주한 로드리고의 작품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열네 살 때 마드리드에서 로드리고의 ‘기도와 춤’으로 데뷔 연주를 가졌는데, 공연장에 로드리고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굉장히 긴장했었습니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 앞을 볼 수 없던 그가 성인의 연주인 줄 알았다며 제게 칭찬을 건넸습니다. 이 곡은 어두움과 강렬함을 동시에 지니는데, 우울증을 앓았던 로드리고가 암흑 속에서 강인한 꽃을 피운 것이 잘 드러나죠. 2011년에는 이 곡을 음반으로 녹음했습니다.

기타곡으로 ‘편곡’한 작품과 기타를 위해 ‘작곡’한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기타를 위해 작곡한 작품이 테크닉적으로 훨씬 수월하고 악기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작곡가 타레가는 기타 연주도 병행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연주하기 쉬운 곡이 많아요. 기타를 다루지 못했던 로드리고의 곡은 전반적으로 어려운 편입니다. 기타를 위해 편곡한 작품의 장점은 더 크고 넓은 매력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피아노곡이 기타랑 잘 맞죠.

클래식 기타와 언제 처음 만났나요. 어린 시절 저는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였어요. 부모님은 저와 악기가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셨죠.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다루는 아코디언을 배우길 바라셨는데, 어린 제가 들기에는 아코디언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초등학교에 클래식 기타 동아리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아코디언보다 가벼운 편인 기타를 배우게 됐지요. 동아리에서 대중적인 민속음악을 연주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클래식 기타의 입지는 어느 정도인가요. 기타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보편화된 악기입니다. 그에 비해 클래식 기타의 입지는 그만큼 넓지 않아요. 중국에서도 클래식 기타는 흔한 악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은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클래식 기타를 좋아하는 층이 다른 나라에 비해 두터운 편이죠.

클래식 기타를 배우면서 학문적인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나요.
저는 베이징중앙음악원에서 기타를 배우는 첫 번째 학생이었습니다. 학생들을 비롯해 선생님마저 제 악기를 잘 몰랐던 것이 힘들었던 부분이에요. 한편으로는 그 점이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기타의 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저였고, 이 소리가 널리 알려지길 원했거든요.

중국 음악교육의 특징이 궁금합니다. 기술적인 요소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자녀에게 억압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부모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옳지 않아요. 음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사랑하게 되거든요.

이날은 공연 내내 연주자들의 붉은빛 감도는 의상이 ‘스페인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꽃가루가 휘날리듯 강렬했던 의상부터 위풍당당한 연주까지 스페인의 정열을 오롯이 담아낸 대관령의 밤은 길고도 길었다. 잠시나마 무더위의 시름을 지우고 정열의 스페인을 유랑한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예술가의 참여는 음악회와 축제의 분위기를 새롭게 이끌어낸다. 다음 해에 이어질 대관령국제음악제는 또 어떤 음악가의 참여로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질지 매우 기대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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