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014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실황 음반

경쟁 속에서 더 치열하게 빛났던 연주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우리 연주자들의 활약이 눈부셨던 2012·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실황을 담은 음반이 최근 국내에 출시됐다. 2년 전, 바이올린 부문 3위에 오른 신지아의 음색뿐 아니라, 올해 성악 부문에서 각각 1·5위를 차지한 소프라노 황수미·박혜상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새롭고도 반갑다


▲ 1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012년 실황 음반
(QEC 2012)
미하엘 호프슈테터(지휘)/발로니 왕립 오케스트라/길버트 바가(지휘)/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 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014년 실황 음반
(QEC 2014)
롤란트 뵈어(지휘)/라 모네 심포니 오케스트라

‘세계 몇 대’란 표현에 염증을 느끼곤 한다. ‘세계 3대 콩쿠르’는 ‘세계 3대 피아니스트’(그런 게 있을 리 없잖은가)만큼이나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콩쿠르 중에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위상이 꽤 높다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동안 우수한 연주가들이 이 콩쿠르를 찾았고, 주최 측에서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기원은 19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콩쿠르 탄생에는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 명은 바이에른의 여공작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이다. 나중에 엘리자베스 왕비가 된 그녀는 벨기에 왕자인 알베르와 결혼, 브뤼셀로 이주했다.

콩쿠르에 기여한 두 번째 인물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외젠 이자이였다. 그러나 이자이는 퀸 엘리자베스 음악 재단이 설립되고 난 직후인 1931년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사고로 숨진 알베르 왕에 이어 그의 며느리였던 아스트리드 왕비도 세상을 떠났다.

1937년에 와서야 제1회 이자이 콩쿠르가 개최됐다. 콩쿠르의 옛 이름은 이자이 콩쿠르였다. 다비트 오이스트라흐가 논란의 여지없이 우승했다. 제2회 이자이 콩쿠르는 1938년 열렸다. 이번에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피아노도 대상에 넣었다. 에밀 길렐스(1위)와 모라 림퍼니(2위), 야코프 플리에르(3위) 등 명인들이 입상했다.

제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진 뒤인 195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이름을 단 첫 대회가 개최됐다. 1957년에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1951년부터 바이올린 부문, 1952년부터 피아노 부문, 1953년부터 작곡 부문, 그리고 1988년부터 성악 부문을 각각 신설하여 부문별로 참가자들이 실력을 겨루게 되었다. 성악·바이올린·피아노 부문이 매년 돌아가며 열리고, 바이올린·피아노 부문 대회가 있는 해에는 작곡 부문이 추가된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는 우리나라 입상자도 많았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1976년 강동석이 3위에, 1985년 고(故) 배익환이 2위에 입상했고, 2012년에는 신지아(신현수)가 3위를 기록했다.

피아노 부문에서는 1991년 백혜선이 4위, 1995년 박종화가 5위, 2007년 임효선이 5위에 입상했으며, 2010년에는 김태형이 5위에 올랐다.

성악과 작곡 부문에서도 우승자를 배출했다. 성악 부문에서는 2011년 소프라노 홍혜란, 2014년 소프라노 황수미가 우승했다. 작곡 부문에서는 2009년 조은화, 2010년 전민재가 우승한 바 있다.

우리 연주자들이 울린 쾌거

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음반은 석 장으로 구성됐다. 미하엘 호프슈테터가 지휘하는 발로니 왕립 오케스트라와 길버트 바가가 지휘하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가 협주곡 반주를 맡았다. 첫 번째 음반은 우승자인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바라노프의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번으로 시작된다. 잘 연마된 음색과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집중력은 듣는 이를 감탄케 한다. 3위 수상자인 우리나라의 신지아(신현수)가 연주하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격정의 흔들림과 차가운 냉정함이 잘 갈무리된 연주다.

두 번째 음반 첫 곡은 외젠 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 D단조. 2위 수상자 나리타 타츠키가 연주했다. 1992년생의 신인인 그는 세심하고 사려 깊은 연주 스타일을 펼쳐 보인다.

다시 안드레이 바라노프가 빅토르 키신의 ‘카프리스’를 연주한다. 긴장감이 고조되며 간헐적으로 기교를 펼치는 이 곡의 호흡을 바라노프는 놓치지 않는다.

라벨의 소나타 G장조는 5위 입상자 대만의 쳉 유치엔이 연주했다. 2011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블루스 악장에서 섬세한 관능을 노출하며 흔들리지 않는 지구력으로 곡의 흐름을 이어간다. 6위 입상자 벨로루시의 아르티옴 시시코프는 블로흐의 ‘니군’을 연주했다. 얇은 불꽃같은 톤으로 이따금 처절함을 노정한다. 이어지는 나리타 타츠키의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세 번째 음반은 4위를 차지한 에스더 유의 연주로 시작한다. 미국 국적의 한국인으로 아나 추마헨코를 사사했고 2012년, 지금은 고인이 된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내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협연해 낯익은 바이올리니스트다. 에스더 유의 베토벤 협주곡은 구성이 잘 조여진 1악장이 좋다.

신지아의 브람스 소나타 3번은 가을비 섞인 바람 맞는 플라타너스같이 마음속에서 이는 동요가 느껴지는 연주다. 사토 다카시의 피아노는 격정적인 부분에서 함께 부응하고 있다.

음반의 마지막 곡은 2011년 작곡 부문 우승자인 사카이 겐지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나리타 타츠키는 동향의 작곡가가 쓴 단악장 작품을 치열하고 집요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2014년 성악 부문 음반(3CD)을 들으면 한국인의 활약이 더욱 눈부시다. 롤란트 뵈어가 지휘하는 라 모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첫 번째 음반은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소프라노 황수미가 부르는 도니제티 ‘돈 파스콸레’ 중 노리나의 아리아 ‘그 눈길이 기사의 마음을 사로잡아’로 시작된다. 풍성한 여유를 품은 자연스러운 고음은 마치 잔에 담긴 황금빛 밀맥주처럼 탁 트이는 쾌적함을 선사한다. 황수미는 알반 베르크의 ‘꾀꼬리에게’와 R. 슈트라우스 ‘저녁노을’에서는 미묘한 낭만성을 발휘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봄의 홍수’는 우아하면서도 청신하다. 투란도트 중 류의 아리아 ‘주인님 제 말을 들어보세요’에서는 담담하면서도 점차 짙은 호소력으로 번지듯 다가오는 황수미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5위에 입상한 소프라노 박혜상은 마스네 ‘마농’ 중 ‘내가 거리에 나가면’, 윤이상 ‘고풍의상’,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언제나 자유롭게’ 등을 불렀다. 입상자 김다미의 연주가 미수록된 2012년 바이올린 부문 음반과는 달리 2014년 성악 부문 음반에서는 입상자인 테너 김승직, 바리톤 유한승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세 번째 CD에는 1988년부터 2011년까지 성악 부문 상위 입상자들의 연주가 담겼다. 2011년 우승에 빛나는 소프라노 홍혜란이 부르는 마스네 ‘마농’ 중 ‘난 아무것도 몰라요’를 비롯해 1988년 우승자인 소프라노 아가 빈스카부터 크리스티나 갈라르도 도마스(1992년 5위) 등의 가창을 들을 수 있다.

외국에 유학 가서 콩쿠르를 ‘정복’하고 금의환향하던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국내파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우리나라의 음악교육 수준도 매우 높아졌다. 젊은 세대들이 이번 실황 음반을 들으면 콩쿠르에 대한 친근감을 배가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자신감으로 국제 콩쿠르에 임하는 연주자가 많아질 때, 평생 지켜볼 만한 뛰어난 연주자들도 늘어갈 것이다. 콩쿠르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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