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시작 전, 무대에 오른 단원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호흡을 고른다. 누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차분하게 보잉을 한다. 누구는 자신을 긴장시키는 솔로 부분을 반복해 연습한다. 그 순간 김종아의 오보에가 ‘삐익’ 소리를 내며 장내를 가른다. 그 소리는 마치 교실로 들어온 교사를 보고 순간 일어나 ‘차렷!’을 외치는 반장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모든 악기는 오보에가 건넨 ‘A’음에 자신의 음정과 마음새를 맞춘다.
김종아는 2012년 10월에 오디션을 거쳐 그해 11월에 KBS교향악단 부수석으로 입단했다. 그녀가 예원학교·서울예고 재학 중에 동경하던 스승들은 어느새 김종아의 동료이자 교향악단 속의 스승이 되었다. ‘어린 종아’가 ‘부수석 김종아’가 되어 그들과 호흡을 함께 맞추게 된 것이 대견하고 기특해 지금도 많은 애정을 쏟는다.
작곡을 전공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덕에 김종아의 집에는 음악이 늘 흘러넘쳤다. 잠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음악이 늘 함께했다. 리코더 부는 걸 좋아했고, 또 잘 불었던 김종아가 오보에와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오보에 소리를 유독 좋아했던 그녀의 어머니도 딸과 오보에의 만남을 기쁘게 생각했다. 이후 김종아는 예원학교·서울예고에서 박중수를 사사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는 이윤정을 사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재학 중 맨해튼 음대로 유학을 떠나 스티브 테일러 문하에서 수학했고 이후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을은 오보에의 소리가 달리 들리는 계절이다. 첼로의 저음이 가슴 한편에 그리움을 쌓는다면 오보에의 음색은 가슴 한구석을 살짝 들어 올린다. 애써 눌러놓았던 추억을 슬며시 들추는 오보에의 음성··· 낭만의 감정을 타고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사실상 오케스트라 속의 오보이스트는 이 낭만을 연출하기 위해 분주하고, 바쁘고, 예민하고, 끝없이 긴장한다.
오보에가 연출하는 낭만성은 사실 악기에 담긴 기술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가방 한쪽에 꽂힌 모차르트 악보가 그가 ‘예술가’라는 걸 증명해준다면, 다른 한쪽에 꽂힌 칼과 날카로운 리드 손질 도구들은 그가 ‘기술자’ 혹은 ‘목수’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럼 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김종아의 오보에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2014년 봄에 만난 ‘별’ 김종아의 오보에는 프랑스 로레(Lorée) 제품으로 모델명은 ‘별’이라는 의미의 ‘에투알(Étoile)’이다. 에투알은 올해 봄에 처음 만났다. 따스하고 밝은 음색, 명확한 음정이 특징이다. “예전에는 마리고(Marigaux) 제품을 썼어요. 박중수 선생님께 처음 배울 때 로레 제품을 사용하다가 서울예고 시절 마리고로 바꿨어요. 유학 시절에도 마리고를 사용했고요. 지금 사용하는 로레 제품은 음정 맞추는 데 편한 면이 있어요.” 오보에는 적어도 사계절이 지나야 길이 들기에 지금은 이 악기의 습성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오보에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행이 있어요. 지금 미국은 로레를, 유럽은 마리고와 하워스(Howarth of London)·뷔페(Buffet)를 많이 쓰는 거 같아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메닉(Moennig) 제품을 쓴다고 하네요.”
‘A’를 외쳐 중심을 잡아라! 교향악단 단원들이 무대에 등장하면 제각각 소리를 내며 손을 푼다. 그때 어디선가 오보에의 A음이 들려오면 장내는 잠시 조용해진다. 그리고 단원들은 들려오는 오보에의 소리에 맞춰 각자 악기의 음정을 맞춘다. 즉, 오보에는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의 음정을 맞추는 ‘튜너’인 것이다.
“KBS교향악단 연주회에선, 때에 따라서는 다른데 서곡과 협주곡이 있는 전반부는 부수석이, 교향곡이 있는 후반부는 수석이 연주를 맡는 경우도 있어요.” 단원들은 나이 불문하고 김종아의 오보에가 내는 A음에 맞춰 조율을 한다. “음을 내기 전에 튜너를 이용해서 음정을 맞추고 리드 상태를 점검해요. 그런데 꼭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음이 잘 안 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바나나 키 “오보에는 10개의 손가락으로 23개 키를 눌러요.” 손가락 하나가 여러 개의 키를 담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는 3개의 키를, 왼손 새끼손가락으로는 5개의 키를 누른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키도 있다. 키 모양이 바나나처럼 생겨서 일명 ‘바나나 키’라 불린다. “C와 C# 트릴을 할 때 이용해요. 이름처럼 정말 바나나처럼 생겼죠?”
패드 각 키마다 안쪽에 패드가 부착되어 있다. 클라리넷이나 플루트는 모든 패드가 하나의 재질로 통일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오보에는 코르크 패드와 가죽 패드 등 다양한 재질을 사용한다.
오보에의 뒷모습 왼손은 옥타브 키를 담당하고, 오른손 엄지로 오보에를 지탱한다. 하중을 많이 받는 오른손 엄지에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 있다.
오보에의 재질 김종아가 사용하는 오보에의 재질은 흑단이다. 흑단은 그라나델라(Granadella) 혹은 아프리칸 블랙우드라 불린다. “오보에의 주재료는 흑단과 장미목이에요. 재질에 따라 소리의 차이가 있어요. 장미목을 많이 선호하는데 악기가 잘 터져요(악기가 결에 따라 갈라지는 것을 관악 주자들은 보통 ‘터진다’고 표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리 자국이 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정기연주회 리허설에서 갈라졌다고. 키는 백금으로 도금한 것이다.
U와 W. 리드에 새겨진 무늬
오보에의 주법은 크게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나뉜다. 그리고 유럽식은 또 이탈리아·프랑스·독일로 나뉜다고. 이런 구분의 가장 큰 기준은 리드에 있다.
“유럽은 U자 형태의 리드를, 미국은 W자 형태의 리드를 써요.” U자와 W자는 주자가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정해지고 그 음색도 다르다. “U자 리드는 두터운 소리를 내는 반면, W자 리드는 상대적으로 밝은 소리를 내요. 리드는 두꺼울수록 입술의 힘으로 더 조여야 해요. 그래서 W자 리드는 가볍게 물어 입술이 리드를 받치는 역할을 하고, U자 리드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힘을 주어 비교적 세게 물죠. 그래서 U자 리드를 사용하면 입술에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기도 해요.”
어느 주법이 더 낫다는 법칙은 없다. 다만 리드를 선택하면 그에 맞는 주법을 철저히 익혀야 한다. 김종아는 원래 U자 리드를 사용하다가 대학 진학과 동시에 W자 리드로 바꾸었다. 따라서 U자 리드를 사용할 때 세게 무는 것이 습관이 돼서 입술의 힘을 빼는 훈련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한다. 2년 동안 W자 리드에 적응하고 떠난 미국 유학. 하지만 그곳에서도 세게 무는 습관은 늘 지적 대상이었다고 한다. 교수가 “종아야, 너는 철의 입술이야”라며 지적했다고.
순환호흡 ① 공기가 끊이지 않고 나와야 한다! 색소포니스트 케니 지가 음 하나를 몇 십 분 동안 불면서 관객석을 한 바퀴 돈 적이 있다. 관객들은 ‘숨을 어떻게 쉬는 것이지?’라며 신기해했다. 이런 호흡법을 ‘순환호흡’이라고 한다. 순환호흡은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뺨을 풀무처럼 부풀린 다음 악기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서 소리가 끊기지 않게 연주하는 테크닉이다. 충분한 양의 숨을 볼에 저장해놓았다가, 호흡이 다 떨어지면 다시 숨을 들이쉬는 사이에 볼 안에 있는 숨을 밀어내어 소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말로는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정신이 없다.
“물을 한 컵 떠놓고 빨대를 꽂은 다음에 방울이 하나하나 생기게 만들어요. 볼에 공기를 채운 다음 볼을 조이면서 공기를 내보내는 거죠. 공기가 나가는 사이에 새 공기를 들이마셔서 다시 채우는 과정을 연결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순환호흡을 하다 보면 입술에 피가 안 통하기도 해요.”
순환호흡 ② 숨표가 없는 악보 순환호흡은 어떨 때 쓰느냐고 묻자 김종아가 악보를 펼쳐 보인다. “보세요. 쉼표가 없죠?”
보잉을 통해 지속음을 낼 수 있는 현악기와 달리 관악기는 숨을 들이마실 때 어쩔 수 없이 음이 잠시 끊기게 된다. 하지만 순환호흡을 하면 음을 연속으로 낼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곡은 외젠 보자(1905~1991)의 오보에(혹은 색소폰)를 위한 18개의 연습곡 중 2번이다. “이 곡은 약 2분 동안 순환호흡으로 합니다. 가끔 오케스트라에서 숨쉬기 귀찮을 때(?) 순환호흡으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티는 잘 안 나지만…(웃음).”
꼭꼭 숨은 입술의 역할 플루트나 홑리드를 쓰는 클라리넷은 리드를 물었을 때 입술이 보인다. 하지만 겹리드를 쓰는 오보이스트와 바수니스트의 입술은 완전히 말아서 리드를 감싸기에 보이지 않는다. 리드와 이 사이에 말려 들어간 입술은 리드를 고정하는 동시에 부드럽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리드를 어느 강도로 무느냐에 따라 음정이 달라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C에서 D로 부드럽게 이동하는 글리산도 같은 것도 입술의 강도를 조절해서 내기도 해요. 즉, 세게 물면서 조이면 음정이 올라가죠.”
오보에의 매력과 김종아의 애정이 담긴 레퍼토리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K314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곡이에요. 그래서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해요. 특히 밝은 기운이 넘쳐나는 1악장은 오보에라는 악기를 잘 설명해주는 악장이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지만 2악장 도입부는 오보에를 위한 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물! 마시지 마세요. 리드에 양보하세요. 연주 전, 리드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갈대를 연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의례 중 하나다.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의 연주가 없는 부분에서도 오보이스트들은 리드의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입에 늘 물고 있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리드 깎기 1 자연의 갈대로 태어나 오보이스트의 리드 케이스 속에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얼마나 복잡한가! 리드는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깎는다’라고 한다. 정말 그 말에 맞게 리드 제작은 깎고 또 깎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래서 제작에 사용되는 모든 도구에는 날 선 부위, 그리고 정확히 깎았는지 측정하기 위한 눈금이 숨겨져 있다.
2 갈대를 뜻하는 케인(Cane)은 약 2,000원 정도다. 하지만 리드로 다시 태어나면 그 가격은 무궁무진해진다. 길쭉한 케인은 형태를 잡는 셰이퍼를 거쳐 리드의 모습을 갖추고, 자의 눈금과 칼날에 의해 완성되어 간다.
3 겹쳐진 케인을 원통형의 코르크에 꽂고 팽팽하게 당긴 실로 꽁꽁 감는다. “제가 다양한 색의 실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실 욕심이 좀 많은 편이죠.” 실 색상은 개인의 취향일 뿐.
4 “리드 깎는 것은 연주만큼 힘든 거예요. 아니, 이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모든 오보이스트들은 자신의 리드를 손수 만든다. “제가 리드를 깎고 있으면 동생이 방에 들어오지도 못해요. 밥 먹을 때가 되었어도 ‘누나, 밥 먹어’라는 말도 못해요. 제가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걸 알죠. 그만큼 아주 예민한 작업이에요.”
외국에서는 어린 시기부터 리드 제작법을 배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시기가 비교적 늦다. 김종아가 리드 깎는 법을 배운 건 대학교 입학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선생이 리드를 깎아줬다. 연주만큼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에 리드 제작은 학교 정규 커리큘럼일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그저 많이 깎아보는 방법밖에 없어요.” 미국에 도착한 김종아는 처음엔 리드 깎기를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독학으로 습득해 나중에는 학우들에게 질 좋은 리드를 파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리드는 한 번 깎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불어보고 또 깎고, 불어보고 또 깎아서 제소리를 찾아야만 하는 예민한 부속이다.
김종아의 추천 음반 | 한스외르크 셸렌베르거의 모차르트·벨리니·슈트라우스 오보에 협주곡(제임스 러바인/베를린 필) “한스외르크 셸렌베르거(1948~)는 독일 태생의 오보이스트이자 지휘자예요. 자주 내한한 프랑수아 를뢰나 알브레히트 마이어에 비하면 유명도가 높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의 오보에 소리에 담겨 있는 감수성과 해석이 개인적으로 제 마음을 쏙 끌어요. 음반에 담긴 슈트라우스의 협주곡도 명곡 중 명곡이죠.”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의 차이점 “오보에는 C조이고, 잉글리시 호른은 F조라서 5도 더 낮죠. 따라서 알토 역할을 해요. 가장 큰 차이점은 연주자의 자세일 거예요. 잉글리시 호른은 오보에보다 더 길쭉하기에 연주할 때 손을 더 밑으로 내려 뻗어야 하고, 관이 길기에 호흡량도 더 많습니다.”
윤이상의 오보에 독주곡 ‘피리’와 더블 트릴 김종아는 예일대 재학 중에 윤이상의 ‘피리’를 연주한 적이 있다. 악보 첫 장에는 오보에의 기본적인 연주법 외에 실험적인 주법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적혀 있다. 그중에 김종아가 대표적으로 꼽은 특수 주법 중 하나는 음을 이중으로 내며 트릴을 진행하는 ‘더블 트릴’이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