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LG아트센터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은 현악 4중주가 탄생한 고전부터 지금 작곡된 오늘의 음악까지 넘나들고 있다. 폭넓은 범위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 음악이 지닌 고유의 특색을 오롯이 들려준다는 점에서 최고의 신뢰를 얻고 있다. 첫 내한 공연에서도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의 이러한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특히 200년이 넘는 격차를 갖는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은, 클래식 음악이 ‘잘나가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아닌, 과거로부터 생명력 있게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임을 의도한다.
첫 곡은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15번으로,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 중 하나다. 제1 바이올린을 맡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2005년에 녹음한 바흐의 음반에서 현대악기의 풍부한 음향과 강한 감성적 표현을 살리면서도 시대악기 연주자들로부터 볼 수 있는 섬세한 보잉을 들려주었는데, 바흐와 같은 세기를 살았던 모차르트의 연주 역시 이러한 평가가 유효하다. 과장되지 않은 깔끔함을 유지하면서도 극적 표현을 충분히 발휘하는 모습은 몸을 구속하는 18세기의 드레스와 정장을 입었으면서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농염하게 비친다. 숙녀의 섬세한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보잉과, 사랑의 열정으로 불타는 마음을 우아하게 드러내는 다이내믹,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고유한 해석이다.
두 번째 곡은 외르크 비트만의 현악 4중주 3번 ‘사냥 4중주’. 작곡가가 30세였던 2003년 작품으로, 흥미로운 표현이 많이 등장했다. 활을 허공에 강하게 내리치며 채찍 소리를 흉내 내고, 연주자들이 소리를 외치며 사냥감을 몰아가는 듯한 묘사는 관객의 주의를 강하게 집중시켰다. 또한 악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음 연주하기, 브리지 아래서 연주하기, 현을 긁어대기, 글리산도 등 선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인 비트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주법들이 등장했다. 중요한 것은 비트만은 이러한 소음 음향을 설득력 있게 배치한다는 것이다. ‘사냥’이라는 주제가 갖는 다양한 장면 역시 이를 뒷받침하면서 굉장한 효과를 냈다.
이러한 색다른 현대적 음향과 함께 비트만의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리듬’이었다. 첫 시작에서 제시된 리듬은 달리는 기차와 같이 멈추지 않으며, 작품에 지치지 않는 생동감과 사냥의 긴박감을 부여했다. 그런데 이 음악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의 관점뿐만 아니라, 사냥을 당하는 짐승들의 관점도 포함하는 것 같다. 유희적인 멜로디를 시니트케적으로 왜곡하는 진행이나 고통 속에 울부짖는 외침을 볼 때 그러하다. 사실적이면서도 직접적인 표현은 관객을 매료시켰으며, 첼로 현이 끊어질 정도로 열정적이고 과감한 연주는 큰 감동으로 이어졌다.
후반부 전체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5번이 차지했는데 완벽한 밸런스의 대화가 돋보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후한 텍스처가 음악을 감쌌다. 특히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은 3악장 ‘감사의 노래’에서 최고조의 미적 감격을 경험하게 했다. 정갈하고 담백한 음색과 더 이상 연마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텍스처로 영혼을 치유하듯 어루만졌다. 베토벤은 작곡 당시 몸을 치유했는데, 그 평온함이 우리에게 마음과 정신으로 전달된 것이다. 마지막 부분의 엄숙함은 종교적 희열에 이르렀다. 4악장 ‘행진곡’은 3악장과는 감정적 격차가 너무나 큰데, 테츨라프는 오히려 약간의 과장된 표현으로 연주했다. 마치 3악장의 고상함을 보상하듯 속물적인 모습이다. 치유가 되었으니 맘껏 놀아보자는 것일까.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삶에 대한 공감에 있다.
사진 LG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