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파스칼 로제 리나 살로 갈로 콩쿠르 심사위원 전격 사임

FROM PARIS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이탈리아의 몬차에서 1970년부터 격년제로 열리고 있는 리나 살로 갈로 콩쿠르에서 올해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거장 피아니스트인 파스칼 로제가 중간 결선의 결과에 불만을 품고 사임했다. 파스칼 로제는 자신의 입장을 SNS에 직접 써 올렸는데, “중간 결선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노예진은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매우 감동적으로 연주했고, 예선부터 다른 참가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우승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썼다.

파스칼 로제는 야노 유타라는 일본인 참가자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며, 이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결선에 오르지 못하고, 다른 두 명의 이탈리아 피아니스트가 최종 결선에 올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입장 발표를 했다. 더욱이 파스칼 로제는 콩쿠르가 여전히 진행 중인 시점에 최종 결과 발표를 예측해놓았는데,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파스칼 로제는 중간 결선에서 뛰어난 두 명의 피아니스트인 노예진과 야노 유타를 탈락시킴으로써 결선에서 두 명의 이탈리아 피아니스트들과의 비교 대상을 없애고, 대신에 이 두 명의 피아니스트보다 연주력이 떨어지는 다른 일본인 피아니스트를 결선에 올림으로써 목적 달성을 수월하게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9월 27일부터 10월 5일까지 진행된 리나 살로 갈로 콩쿠르는 파스칼 로제의 예측 그대로 입상자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콩쿠르 측은 홈페이지에 파스칼 로제가 오히려 채점 방식에서 과오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글을 담은 입장 발표문을 올려놓았다.

사실 예술과 콩쿠르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주관적인 음악 예술을 점수 매기기를 통해 우승자를 가려낸다는 것 자체가 예술의 본질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콩쿠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매년 전 세계에서는 수백 개의 국제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어떤 콩쿠르도 완전히 투명하고,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초대된 심사위원들은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긴장이 생겨나도 받아들이거나 눈감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파스칼 로제의 행동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는 이메일을 통한 짧은 인터뷰에서 “이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입장에 나 자신을 두고 생각해보았다.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완벽한 연주를 했고 정말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결선에도 이르지 못한 이들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심사위원을 사임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일은 1980년에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이보 포고렐리치가 예선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심사위원직을 사임한 사건을 상기시킨다. 이보 포고렐리치는 이 사건 덕분으로 유명세를 탔고, 국제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콩쿠르가 한 음악가를 예술적으로 성장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구축한 음악 세계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유럽에서 열리는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음악가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표적인 콩쿠르인 롱 티보 콩쿠르를 비롯한 유럽의 콩쿠르들은 아시아 입상자의 연주 활동과 경력에 위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국의 프랑스 입상자들에 대해서만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파스칼 로제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콩쿠르에 나가서 수상을 하든, 하지 못하든 거기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 마라. 과거 20년 동안 중요한 콩쿠르의 입상자들의 활동 상황을 보면 오늘날 여전히 활발하게 연주를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1위 입상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콩쿠르에서 이미 퍼스낼리티가 확고한 연주자들은 예선에서 탈락되고 만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교수의 조언에 의해서든 본인의 의지이든 콩쿠르에 나가되 거기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파스칼 로제의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피아니스트 노예진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사진 Nick Gran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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