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공연수첩

‘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월 1일 12:00 오전

노장 테너의 ‘밀당’

테너 호세 카레라스 내한 공연

2014년 11월 22·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때는 2014년 11월 23일, 오후 5시. 전날 12월호를 마감하느라 이틀 밤을 새운 나는 기절 상태로 잠에 빠져 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호세 카레라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2011년, 공연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그의 내한이 취소됐기에 4년 만에 다시 성사된 그의 공연이 반가웠다. 무엇보다 고령의 테너가 선보이는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될 수도 있기에 그의 무대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탔다. 이틀로 예정되어 있던 공연 중 첫날 공연을 다녀온 동료 기자가 호세 카레라스는 힘이 없는데 객석의 관객들만 열정이 넘친다는 리뷰를 전해왔지만, 그럼에도 기어코 그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있는데, 의외의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죄송합니다. 호세 카레라스가 성대결절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라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네? ‘호세 카레라스’가 ‘성대결절’이라고요?” “네. 의사가 3일 동안 말도 하지 말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해요. 죄송합니다.” 아니, 어찌 이런 일이!

해외 음악가들이 컨디션 난조로 공연을 취소하는 일은 사실 예전부터 때때로 벌어지던 일이다. 더구나 암 투병을 했던 69세의 성악가가 건강상의 이유로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아쉬웠지만 별수 없었다. 선크림 바른 것을 후회하며 다시 이불 속으로 엉금엉금 들어갔다. 그런데 6시 45분쯤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약속된 시간에 공연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비몽사몽의 나는 당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작 시간을 불과 15분 앞두고 공연을 그대로 하겠다니.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결국 나는 공연을 포기하고 SNS에 올라오는 이야기들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후 7시 30분, 결국 입장까지 마친 2,000여 명의 관객이 공연 중지란 최종 안내 방송을 들은 후 발길을 돌려야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사안은 내가 받은 전화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바이러스성 후두염이었다.

기획사 측의 ‘밀당’만 없었어도 수많은 관객이 헛걸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티켓은 환불받는다지만, 관객들의 낭비된 시간과 감정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며칠 후에 배송된, 사과의 의미로 보내온 호세 카레라스의 베스트 앨범만이 씁쓸하게 남았다. 김호경

❷ 고대하던 실연의 희열 

르노 카퓌송 협연, 마크 위글스워스/서울시향

2014년 11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제목은 마크 위글스워스의 쇼스타코비치였지만, 사실 르노 카퓌송의 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기 위해 공연장으로 갔다. 2012년 EMI클래식스에서 르노 카퓌송 협연, 대니얼 하딩/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출반한 음반을 지난 몇 달간 귀에 달고 지냈기에 이날의 연주가 반갑고 설Ž

기대만큼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르노 카퓌송은 “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협주곡”이라고 단언한 만큼 곡에 대한 존중과 집중을 보여줬다. 긴 호흡으로 높은 몰입도를 이끌어냈고, 곡에 담긴 스토리를 따뜻하고 풍부한 음색으로 표현했다. 그의 스승인 아이작 스턴이 같은 악기로 같은 곡을 연주한 녹음(1959)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줬던 흥미로운 연주가 무대에서 그대로 펼쳐졌다.

이날 프로그램 중 네덜란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마를린 헬더르가 관현악 편성으로 편곡한 말러의 피아노 4중주는 아시아 초연이라는 데에, 마크 위글스워스가 이끄는 쇼스타코비치 최후의 교향곡 15번은 마크 위글스워스가 현재 BIS 레이블에서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사이클 녹음을 진행 중이라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연주가 밀도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김호경

따뜻한 온기 속의 아쉬움

뮤지컬 ‘러브레터’

2014년 12월 2일~2015년 2월 15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가 어떨까.’ 무비컬을 보기 전에 항상 갖는 가장 큰 설렘과 궁금증은 무대에 관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영상과는 달리 여러 시간적 배경과 장소를 좁은 ‘무대’ 위에 모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2일 영화 ‘러브레터’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러브레터’의 막이 올랐다. ‘눈’이 주로 등장하는 영화를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해냈을지, 하얀 눈밭에서 모두가 아는 명대사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여러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부 좌석에 스노 용액이 흐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안내문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무대가 온통 눈으로 덮인 모습일 것이라고 짐작케 했다. 하지만 눈이 오는 효과 외에는 무대 위에서 눈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마저도 눈보다는 주로 벚꽃잎이 등장했다. 덕분에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이 자주 바뀜에도 무대배경에 대한 이질감이 없었고 한 남자를 추억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한층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특히 자전거 보관소에서 소년 이츠키와 소녀 이츠키가 똑같은 이름 탓에 뒤바뀐 시험지를 맞춰보는 장면은 앙상블이 자전거 모양의 조명을 들고 춤을 춰 더욱 풋풋하고 아름답게 표현됐다. 무대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 뛰어난 대체 요소들 덕분에 어딘지 모르게 ‘시린 아픔’이 느껴졌던 원작과는 다르게 무대는 온통 ‘따뜻한 추억’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따뜻함’을 너무 강조했던 때문일까? 모두가 기대했던 명장면은 다소 밋밋하게 표현되어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주진 못했다. 와타나베 히로코가 하얀 눈밭에서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오겡끼데스까?”를 외쳤던 바로 그 장면은 그저 산장으로 표현된 후지이 이츠키의 집 2층 옆에서 “잘 지내시나요?”라고 외치는 데 그칠 뿐이었다. 원작 이상의 감동을 주는 뛰어난 무대 활용을 보여주었으나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무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모습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지혜

위대한 배우는 어디에?

연극 ‘위대한 유산’

2014년 12월 3~28일

명동예술극장

방송과 공연의 경계가 오래전 무너졌다지만, 방송과 공연의 공기 호흡은 여전히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무대가 영상의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해 손쉽게 가져온 장치 중 하나는 스타 마케팅 속 ‘배우’다.

음악회에 비해 연극이나 뮤지컬은 매 프로덕션을 선택하는 관객 입장에서도 마치 도박 같은 기분이다. ‘A지휘자 B오케스트라 C레퍼토리’라는 공식 아래에서 성공과 흥행의 적중률 높은 클래식 음악회와 달리, 창작 공연은 아무리 좋은 재료들을 사와도 뚜껑을 열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조합의 최전선에 배우가 놓여 있다. 물론 배우를 둘러싼 환경-각색된 대본·연출·무대장치 등-이 총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하지만 여기에선 배우만을 두고 얘기해보자.

배우의 힘이란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무대 장악력이라는 말이 그 대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대 장악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극장에 흐르던 공기를 붙잡아 배우에게로 돌리는 것이고, 무대와 객석 사이를 좁히는 능력이자 관객의 허리를 곧추세우고 개안하게 만드는 힘이다. 배우가 관객의 시선을 끌어오느냐, 끌려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힘겨루기는 종종 공연이 시작될 때, 관객과 처음 마주하는 배우에게서 판가름이 난다. 혹여 작품이 난해하더라도, 관객이 작품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됐으나 몸의 준비가 부족할지라도 배우에게 무대 장악력이 있다면 객석이 작품 속에 빠져드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이상이 명동예술극장이 올린 ‘위대한 유산’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주인공 핍(김석훈 분)이 등장해 막이 내리기까지 ‘배우의 힘’에 대한 어떤 항목에도 시원하게 체크하지 못한 채 극장 밖을 나섰다. 작품이 채색으로 완성된 그림이 아닌 목탄 스케치처럼 느껴진 것은 선택과 집중 그 사이에서 대다수의 캐릭터가 상실의 골짜기로 빠졌기 때문이다.

무대 공간을 적절히 사용해 과거와 현재를 효과적으로 오버랩시키고, 장대한 서사를 2시간 안에 속도감 있게 보여준 것은 좋았지만, 그로써 각 캐릭터가 가져야 할 행위 근거의 상당수가 상실됐다. 여기에 가장 큰 희생양은 그저 마녀 같은 존재로 표현되는 데 그친 헤비섬 부인(길해연 분)과 너무나 선량(?)해진 도망자 맥위치(오광록·양영조 분)이지 않을까. 김선영

브람스를 닮은 남자들

MIK 앙상블 ‘2014 브람스 리사이틀’

2014년 12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대 꽃미남 4인방에 노부스 콰르텟이 있다면, ‘진짜 남자’의 향기를 풍기는 훈남 4인방엔 MIK 앙상블이 있다!”

한 주의 가운데, 저녁 8시. 교통 체증을 뚫고 예술의전당을 향해 재촉하던 걸음은 객석에 앉자마자 또 다른 두근거림으로 바꼈다. 브람스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데다가 1년여의 휴식 끝에 MIK 앙상블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비올리스트 김상진·첼리스트 송영훈·피아니스트 김정원. 공대생처럼 수더분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네 명의 연주자는 이름만 들어도 흐뭇한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다. 혼자서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앙상블을 만들어 10년의 세월을 함께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이제 젊음과 열정으로 달려온 세월을 도닥여 숨을 고르고, 더 깊고 섬세한 음악으로의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 이들은 그 첫걸음에 진솔하고 진지한 브람스를 택했다. “왜 브람스일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팬심(fan心) 가득한 리뷰를 쓰리라 다짐한 것은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관객의 숨소리가 내려앉자 브람스의 선율이 흘렀다. 이들의 연주는 추운 겨울, 몸을 감싼 외투처럼 진지했지만 따뜻했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이 있었다. 1·2부를 통틀어 공연 수첩에 적은 감상을 조목조목 풀어내기엔 지면이 여유롭지 못함이 슬플 정도로, 매 악장을 진심으로 대하던 네 남자의 연주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멋졌다! 수려한 외모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연주자는 많지만, MIK 앙상블처럼 함께할 때 누구 하나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개개인이 빛나기란 쉽지 않다. 서로를 향해 귀 기울이던 이들의 모습은 조용하고 진지하지만 놀랍도록 섬세한 브람스를 닮아 있었다. 앞으로 네 남자가 걸어갈 새로운 10년을 생각하니 다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조지현

슈베르트의 회상

강충모 피아노 독주회

2014년 12월 1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꽤 오래전 피아니스트 강충모의 슈베르트 렉처 연주회에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 연주회는 자신이 연주하게 될 작품을 일주일 전에 자세히 작품 분석을 해주면서 강의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갑자기 추워졌던 10월 어느 날, 나는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음악 분석은 철저히 이뤄졌고 작품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따뜻한 목소리로 슈베르트의 마지막 유작을 설명하며 그는 자기가 생각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며 연주를 하면서 많이 울었던 작품이라고 담담히 얘기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연주할 이 작품의 1악장을 연주해주었다. 극도의 슬픔과 상실이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느꼈던 그날 슈베르트는 아주 작은 홀에 앉은 많은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2011년 9월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로 초빙되면서 미국에서 교육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강충모의 독주회는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슈베르트의 여운이 다시 살아난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그의 연주를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이 이날 객석을 가득 메웠다. 서정적인 선율의 스크랴빈과 브람스의 인터메조, 무소륵스키의 다이내믹함까지 그는 오랜만에 피아노 위에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즉흥곡, 따뜻하게 품은 듯 그만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움이 많아지는 12월, 한국 초연곡이었던 바바자니안의 ‘시처럼’ 그의 노래는 여전히 서정적이고 단정했다. 어느덧 그의 음악이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국지연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