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그리고 슈베르트 – 그녀가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그리는 그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세 번째 음반을 발매하는 김수연. 그녀가 선보일 새로운 빛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김수연, 그리고 슈베르트 

그녀가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그리는 그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세 번째 음반을 발매하는 김수연. 그녀가 선보일 새로운 빛깔

“(김)수연이를 보고 있으면 한 곳에서 자란 티가 나요. 고집도 세고… 그런데 그 음악에선 어떻게 저런 감동이 나올까, 신기하죠. 그녀의 연주는 여성스럽고, 정말 부드러워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같은 소속사(아트앤아티스트)의 동갑내기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수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수연의 음악을 몇 가지 형용사로 정의할 순 없지만 그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여성스럽고, 푸근하고, 따뜻한 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그녀가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화려한 론도’·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한다.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2월 3일에 발매할 음반의 녹음은 이미 끝냈고, 2월 28일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관객을 만난다. 김수연과 임동혁. 솔리스트로서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 두 사람의 어울림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아름다운 선율을 공유하는 이번 레퍼토리를 생각하면 기대가 된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김수연은 지금도 독일에 거주하며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9세에 뮌스턴 음대에서 헬게 스라토를 사사하고 2010년 뮌헨 음대에서 아나 추마헨코를 사사했다. 2003년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와 2006년 하노버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4위를 했다. 소위 ‘스타’ 연주자로서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2007년 엘리아후 인발/몬테카를로 필하모닉과의 내한 공연에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협연한 후 비범하고 고상한 표현력으로 한국의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0·2011년에는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유럽·아시아·남미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한국 나이로 올해 스물아홉이 된 그녀는 자신의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녀가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 전화를 걸었다.

‘모차르티아나’(DG, 2009)와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DG, 2011)에 이어 세 번째 음반은 이미 지난해에 녹음을 마친 루벤 가자리안/뷔르템베르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DG)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녹음한 음반이 먼저 발매되네요.

그러게요. 진중한 레퍼토리를 이어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처음 슈베르트 레퍼토리 음반을 기획하면서 어떤 피아니스트를 만나게 될지 걱정스러웠거든요. 이번 음반에 담긴 세 곡이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기도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는 매번 같이 하는 파트너 피아니스트가 있지 않는 한 녹음이든 연주회든 뭘 할 때마다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마음이 잘 맞을지, 음악적으로 잘 통할지 항상 걱정되죠. 동혁 오빠가 슈베르트를 같이 연주하겠다고 ‘오케이’해줘서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임동혁 씨와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인데요.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 연주할 음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친분이 있었나요?

몇 년 전 동혁 오빠가 제 연주회를 보러 왔을 때 처음 만났어요. 피아니스트 벤 킴과 하는 리사이틀이었을 거예요.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만난 건 처음이라 좀 어색했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조금 친해졌어요. 그 뒤로 가끔 안부만 묻다 이번에 다시 만났죠. 특별히 나눈 이야기는 없어요. 서로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첫날 리허설을 했는데,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딱 알았어요. 서로 ‘느낌’을 주고받고 있구나, 서로 잘 ‘반응’하고 있구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것 같았어요. 3일 동안 리허설을 했는데, 하루하루 빠르게 달라지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사실 두 사람의 조화가 잘 그려지지는 않아요. 강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면이랄까. 어쩌면 제 머릿속 이미지가 만들어낸 편견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뇨, 맞아요. 처음에 동혁 오빠랑 제가 같이 연주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어요. 재미있는 것은,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예요.(웃음) 함께 연주하게 되었을 때 기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의아함’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이야기해보니 오빠도 그랬대요. 연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한 곡당 하루씩 잡고 녹음을 했는데, 하루라고 해봐야 6〜7시간 정도거든요. 쉬는 시간도 있고 해서 시간이 넉넉하진 않았어요. 다행히 서로에 대해 금방 파악해 음악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죠.

수연 씨의 머릿속에 슈베르트라는 작곡가는 어떤 인물로 각인되어 있나요?

얼마 전 슈베르트의 일대기를 소설로 풀어낸 책을 읽었어요. 독일의 한 음악학자가 쓴 책인데, 제목은 생각이 안 나네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번에 음반을 준비하면서도 그 책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예전에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할 때는 뭐랄까, 슈베르트라는 인물이 마음에 딱 와 닿지 않았거든요. 브람스는 브람스만의 색이 있고,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만의 색이 있는데 말이죠.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는 리트가 중요한 부분이라 그런지 제가 완전히 알지 못하는 영역의 뭔가가 있는 듯했어요. 그런데 그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거기에 상상력을 동원해 제 머릿속 슈베르트를 완성했죠.

수연 씨가 완성한 슈베르트라는 ‘그림’을 말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음, 일단 사진을 보면 하얗고 좀 연약해 보이죠. 어려서부터 노래를 많이 했으니 목소리는 왠지 하이 톤의 예쁜 소리였을 것 같아요. 음악을 반대한 아버지와 몸이 약한 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랐을 거예요. 소통의 부재를 느꼈을 테고, 고민과 상처는 속으로 담아뒀겠죠. 슈베르트 자신도 요절했고…. 아픔이 많은 인물이었을 것 같아요.

이번 음반에 담긴 세 곡 중 개인적으로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을 좋아해요.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진한 슬픔이 느껴지죠. 소나타 형식이지만 전 악장이 연결되어 연주를 하기에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환상곡’은 일정한 형식이 없는 음악을 말하지만, 슈베르트의 환상곡은 그렇지 않아요. 피아노 환상곡도 그렇고, 형식이 확실하거든요. 이 곡도 인트로가 있고,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명확해서 특별히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이 곡을 초연했을 때 청중의 반응이 엄청 안 좋았대요. 환상곡 같지도 않은 데다 장황하고, 또 길어서 그랬나 봐요.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던 거겠죠. 저는 이 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이 세상 음악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도 있고…. 왠지 막 소름이 돋아요.

새 레퍼토리를 접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해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곡가에 대해 탐구하는 걸 보면 꽤 학구적인 것 같은데, 저는 수연 씨가 ‘느낌’에 충실한 연주자인 줄 알았거든요.

맞아요. 잘 보셨어요.(웃음) 요즘은 연주자들이 공부도 많이 하고, 연주할 음악에 대해 연구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저는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한다고 할까요. 이 음을 이렇게 연주해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다른 사람들의 무대를 보면서도 연주자가 어떤 부분을 의도적으로 표현할 때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연주하는 순간의 감정이나 내면의 흐름에 더 충실한 편이에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수연 씨는 예민하기보다 무던하고 털털한 성격인 것 같아요. 그런데 연습할 때, 무대에서 연주할 때, 또 연주가 끝난 후 반응을 살필 때 중 어느 순간에는 좀 예민해지지 않나요.

연습할 때는 좀 그래요. 연습이라는 것 자체가 불만족스러움의 연속이잖아요. 그리고 이건 거의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텐데요, 연주가 끝나고 얼마 동안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요. 잘했든 못했든 최선을 다했고 내 안의 모든 것을 보여준 상태니, 그때 들은 이야기는 사소한 것이라도 크게 받아들이죠. 그래서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했어요. 피드백은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천천히 해달라고요. 그 외에는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 별로 예민할 일이 없어요.

자신에게 ‘당근’과 ‘채찍’ 중 어떤 것을 더 주는 편인가요.

지금은 당근. 예전에는 강력한 채찍이었어요.(웃음) 언젠가 어머니에게 이런 일화를 들었어요. 제가 열 살 무렵이래요. 연주를 하고 내려오기에 잘했다고, 관객들이 엄청 좋아한다면서 칭찬하니 “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사람들이 좋다고 한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반항적으로 굴더래요.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자책하며 산 것 같아요. 그런데 추마헨코를 만난 뒤부터 달라졌어요. 추마헨코가 제게 충고하기를, 스스로를 좀 다독이라는 거예요. 끝으로 내몰고 괴롭히는 게 무대에서도 보인다면서요. 그 뒤로 마음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면, 만약 친한 친구가 연주를 망치고 온다면 “너는 훌륭한 연주자야, 다음에는 훨씬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지 않을까요. 근데 왜 제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했나 싶었어요. 물론 의미 없는 ‘당근’은 가치가 없지만,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을 테니까요.

스스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군요. 그래도 때때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그러한 다짐을 못살게 굴 것 같아요.

그렇겠죠. 그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아, 이건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의 이야기인데요. 한 학생이 카살스가 심사위원인 오디션에 참여했는데, 연주를 엄청 못했대요. 모두가 느낄 만큼 완전히 망친 거죠. 그런데 카살스는 칭찬만 하더래요. 잘했다고. 학생은 카살스가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크게 실망했죠. 오랜 시간이 지나 카살스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나 봐요.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었대요. 그러자 카살스가 ‘연주자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음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더군요. 어쩌면 연주를 잘해내겠다는 것 자체가 큰 욕심일지 몰라요. 연주를 하는 그 순간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 그것만 생각해도 모자란 것 같아요.

김수연의 음악에 설득력이 실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해서가 아니다. 무대를 소중히 여기고, 음악을 진중하게 대하는 그녀의 진심이 듣는 이를 더 깊이 공감시키는 것이다. 김수연은 이번 연주를 마친 뒤 3월에 스페인과 벨기에에서 각각 바흐와 베토벤을 연주한다. 또 하나 새로운 소식은 2월부터 일본음악재단에서 지원받은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Lord Newlands’로 연주한다는 것. 앞으로 그녀가 얼마나 더 웅숭깊은 음악을 들려줄지, 여러모로 기대된다.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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