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빈에서 만난 화제의 공연- 뜨거웠던 슈타츠오퍼의 기억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뮌헨&빈에서 만난 화제의 공연

뜨거웠던 슈타츠오퍼의 기억

음악칼럼니스트 박제성이 지난 1월 4~8일 두 도시를 다녀왔다. 새해 유럽 공연계를 달군 화제의 무대들


▲ 현실적인 리얼리즘과 꿈의 세계를 구현한 ‘헨젤과 그레텔’ ⓒBayerische Staatsoper/Willfried Hosl

뮌헨과 빈의 1월은 춥고 변덕스러운 날씨였지만, 오페라하우스의 열기만큼은 매우 뜨거웠다. 신진 음악가와 역전의 노장이 한 무대에 올라 박수갈채를 받았고, 새로운 예술적 향취와 오페라적 역동성이 태동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는 유럽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로 발돋움하고자 최신 연출과 새로운 성악가가 계속 등장하고 있으며, 빈 슈타츠오퍼에서는 권위와 전통을 지켜내고자 최고 연출가와 스타급 성악가들이 화려함을 더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많지 않은 시기라 뮌헨과 빈의 콘서트홀은 대부분 휴관이지만,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진일보한 빈 심포니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유럽의 양대 음악 도시인 뮌헨과 빈. 경쟁이라도 하듯 치열한 음악회의 밤이 거듭되고 있었다.


▲ 헨젤과 그레텔의 잠재의식 속에서 펼쳐진 풍경 ⓒBayerische Staatsoper/Willfried Hosl

1월 4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훔버딩크 ‘헨젤과 그레텔’

토마스 하누시의 지휘와 리처드 존스의 연출로 2013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초연한 ‘헨젤과 그레텔’의 새로운 연출. 1월 4일 뮌헨에서 마지막 공연을 끝낸 뒤 곧장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상연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이 무대는 최근 오페라의 경향을 반영했다. 동화라는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보다 현실적인 리얼리즘과 주인공들의 꿈의 세계까지 구현한 무대. 이날은 작품이 작품인 만큼 여느 때와 달리 뮌헨의 어린이들과 엄마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조금 난해한 드라마트루기의 무대임에도 아이들을 매혹시킬 만한 아름다운 색감의 조명과 세트 디자인, 독특한 인형이 등장해 모두 만족해했다.

2막을 숲이 아닌 실내로 설정해 오누이의 의식 상태에 공간적 제한을 두었고, 모래요정이 이 둘을 잠으로 이끌며 그들의 의식 속에 잠재된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것이 이 프로덕션의 하이라이트. 턱시도와 드레스로 갈아입은 오누이는 정어리 머리 웨이터의 서빙을 받으며 셰프들의 사열을 받는다. 이 실내 배경은 3막 첫 이슬요정이 등장할 때까지 지속해 꿈의 연속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연출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혓바닥에 올려놓은 케이크가 등장하며 잠시 막이 내려오고, 그 막은 사람의 입 모양에 구멍이 뚫려 케이크와 하나의 거대한 오브제를 이룬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오븐에서 통구이가 되어 나온 마녀의 팔다리를 뜯어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는 흠잡을 데 없었고, 2막과 3막 사이 간주곡의 오케스트라 음향은 실로 놀라웠다. 1막 시작부의 호른 사운드도 아름다웠고, 마녀의 비행 시 신나는 행진곡 리듬과 바그너적 색채감도 훌륭해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하우스에 걸맞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아버지 역을 맡은 마르쿠스 아이헤와 어머니 역을 맡은 자비네 요그레페의 가창력,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테너가 등장하는 마녀 역의 케빈 코너스의 연기력과 가창력이 돋보인다. 반면 헨젤 역의 카테리나 마기라와 그레텔 역의 에리 나카무라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 ‘마술피리’에서 압도적인 성량과 고급스러운 연기력을 선보인 나포르니차와 브룬스 ⓒWiener Staatsoper/ Michael Pohn

▲ 알마비바 역의 존 테시에와 로지나 역의 엘레나 막시모바ⓒWiener Staatsoper/ Michael Pohn

1월 5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아카데미 협주곡 시리즈 1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1년에 6회 진행하는 순수 오케스트라 콘서트 아카데미콘체르트 시리즈 중 2015년의 첫 작품. 원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지휘로 1부에서는 게르하르트 오피츠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2부에선 체믈린스키의 서정 교향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 그리스 출신 지휘자 콘스탄티노스 카리디스가 지휘하고 2부 프로그램이 체믈린스키에서 닐센의 ‘판과 시링크스’ Op.49와 드뷔시의 ‘바다’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유럽 전역에 아르테 TV로 생중계된 중요한 공연인 만큼 훌륭한 연주였다. 무엇보다 오피츠는 맑고 서정적이며 분절적인 피아니즘으로 오페라하우스를 가득 메우는 경이로운 순간을 선보여 뮌헨 청중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2부 공연도 아름다웠는데,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앙상블과 목·금관과 더불어 현악의 통일된 톤 컬러가 주는 일체감과 빛나는 에너지감은 단연 명불허전. 콘서트 오케스트라로서 최고 실력을 갖추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월 7일, 빈 슈타츠오퍼의 모차르트 ‘마술피리’

빈 슈타츠오퍼에서 2013년 초연한 새로운 마술피리 프로덕션. 파트너십을 이루며 함께 오페라 프로덕션을 제작하는 모슈헤 라이저와 파트리스 코리에의 연출로, 이 또한 어린이와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그런 탓에 복잡한 무대 디자인이나 다층적 의미를 담은 연출의 맥락보다는 단순하고 선명한 세트를 바탕으로 가수의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약간의 현대적 느낌이 착색된 동화스러운 무대였다.

서두에 등장한 용은 매우 웅장하지만, 와이어 연기와 바닥에서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외에는 메카닉적 효과가 거의 없었다. 반면 음악적으로는 무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공연 며칠 전 파미나 역에 최근 유럽의 프리마돈나로 급부상한 미모의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차로 변경되었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압도적인 성량과 정확한 딕션, 고급스러운 연기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사라스트로 역의 프란츠 요제프 젤리히의 엄청난 저음과 타미노 역의 신예 독일 테너 벤야민 브룬스의 절창, 밤의 여왕 역의 이리데 마르티네스의 압도적인 초절기교, 마르쿠스 베르바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대사 전달력이 눈부실 정도였다. 게다가 빈 슈타츠오퍼의 자랑스러운 지휘자 아담 피셔는 자신만만하게 암보로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련하다 못해 도식적일 정도로 정확하고 스타일리시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알베르트 도멘 ⓒWiener Staatsoper/ Michael Pohn

1월 8일 빈 슈타츠오퍼의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빈 슈타츠오퍼에서 2013년에 처음 무대에 올린 귄터 레네르트의 연출은 완성도가 높아 꽤 오랫동안 빈 청중으로부터 사랑받을 듯하다. 무대 전체를 가득 메운, 아홉 개의 방이 달린 건물의 단면도를 배경으로 방마다 상황을 독립적으로 구분해 보여주었다. 특히 고전적인 의상과 배경임에도 화면이 꽉 차고 지루하지 않아 매 순간 집중과 웃음이 반복되는 것이 이 무대의 장점. 부파에서 공간의 수직적 사용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이 고전적이며 정교하고 동선 또한 다채로워 다양한 앵글로 포착한 듯 입체감까지 생생히 전달한다.

핀란드 헬싱키 국립오페라 상임지휘자이자 드레스덴 출신 미하엘 귀틀러의 지휘는 매우 독일적이며 서곡부터 인템포와 계산된 아첼레란도를 바탕으로 정교한 표현을 강조한다. 시종일관 빈 필로부터 도식적일 정도로 균형 잡힌 프레이징을 뽑아냈다. 알마비바 역의 존 테시에의 목소리는 마치 티토 스키파를 연상시키듯 청초한 고음과 매혹적인 비음을 보여주었다. 엘리나 가랑차의 뒤를 이을 만한 또 다른 메조소프라노를 발견한 것 같아 흥미로웠다. 로지나 역을 맡은 옐레나 막시모바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부르는 듯 독특한 발성과 압도적인 직선성, 천연덕스러우며 사랑스러운 연기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바질리오 역을 맡기로 한 박종민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그 대신 커버로 나선 라이언 스페도 그린의 노래와 연기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1월 8일 빈 심포니커의 ‘프라이데이 엣 세븐’(Friday@7)

빈 심포니커의 새로운 상임지휘자 필리프 조르당은 올해부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새로운 연주회 형식을 적용한 ‘프라이데이 엣 세븐’(Friday@7)을 진행한다. 1부는 한 시간 동안 연주회를 하고, 휴식 시간 후 2부를 홀 로비에서 지휘자·독주자·단원이 함께하는 오픈 실내악 연주회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관객 입장에선 연계 공연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실내악 공연임에도 누구도 떠들거나 돌아다니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에서 빈 시민의 음악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곡 연주는 며칠 뒤 모차르트홀에서 정식으로 연주회를 통해 선보이는데, 내한하는 지휘자나 협연자들이 이렇게 로비에서 실내악을 하는 기획을 서울에서도 실행해보면 좋을 듯싶다. 액상 프로방스와 빈 심포니커가 공동 위촉한 림의 신작 ‘화가의 시’가 르노 카퓌송의 협연으로 세계 초연했고, 이어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연주했다. 참으로 신선하고 정열적인 연주이자 아들 조르당의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엿볼 수 있었다.

1월 8일 빈 슈타츠오퍼의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전의 노장 페터 슈나이더의 지휘와 바그네리안 테너의 전설 페터 자이프페르트가 등장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빈 슈타츠오퍼의 터줏대감 격인 슈나이더는 최근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지휘봉이 머리 뒤까지 당겨졌다 튀어나올 정도로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다. 빈 필은 그의 느려지는 템포와 얽히는 지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보정해나갔다. 오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휘‐오케스트라-성악가의 파트너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바그너 해석의 가장 서사적이고 디테일한 전형을 보여준 슈나이더. 빈 청중은 여덟 번이 넘는 커튼콜을 통해 노장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2013년 초연한 데이비드 맥비커의 무대는 한마디로 환상의 연속이었다. 노란 달과 붉은 달, 네온빛 흰 구형 설치물이 막마다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상징할 뿐 아니라 배로 설정한 무대 전체가 움직이며 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 것이 놀라웠다. 특히 이 연출에서 조명과 무대 톤에 의한 빛과 색의 대조 그리고 빈 공간과 찬 공간의 입체적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페터 자이프페르트는 여전히 엄청난 미성과 디테일한 표현력으로, 중간에 성대를 쉬거나 숨 돌리는 법 없이 시종일관 최선을 다했다. 슈나이더와 바이로이트에서 호흡을 맞춘 스웨덴 출신 소프라노 이레네 테오린은 적극적이고 표현력 높은 가창과 연기를 통해 이날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원래 니나 슈템메가 등장하기로 했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무릎을 칠 정도로 탁월한 이졸데를 보여주었다. 죽음에 이르는 사랑의 비현실적인 관능성을 실어 부른 그녀의 마지막 사랑의 죽음과 2막 사랑의 이중창을 듣노라니 몸이 공중으로 부양하는 듯 황홀하기까지 했다. 쿠르베날 역의 토마시 코니에치니도 완벽했고, 무엇보다 알베르트 도멘의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가창력이 전율을 느끼게 했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온라인 공연 중계 서비스

유럽 오케스트라와 극장별로 온라인 공연 중계 서비스가 활발한 가운데, 2014/2015 시즌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이번 시즌 공연하는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의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오페라 일곱 편과 발레 두 편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 급성장한 아시아권 클래식 음악 팬을 위해 온라인 생중계 후 다음 날 저녁 시간대에 시청이 가능한 영상을 별도로 제공하니 참고하자. 2015년 첫 중계 공연은 2월 1일 오후 7시(현지 시간)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디아나 담라우가 루치아 역을 맡았다. 공연 중계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어플을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홈페이지(www.staatsoper.de/tv)를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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