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크 야노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 유성권의 진솔한 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마레크 야노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 유성권의 진솔한 수다

마레크 야노프스키가 이끄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네 번째 내한을 준비 중이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2003년(협연 김대진)·2009년(협연 김선욱)·2011년(협연 조성진)에 내한해 ‘정통 독일 음악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번에는 베버 ‘오베론 서곡’, 브람스 교향곡 2번으로 독일 음악의 예술성을 다시 한 번 발휘할 예정이다. 지난 공연에서는 국내 피아니스트와 협연했지만, 이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치머만과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며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지난 세 차례의 내한에 이어 이번에도 지휘봉을 잡는 이는 마레크 야노프스키! 1939년 폴란드 태생의 야노프스키는 부퍼탈·쾰른·뒤셀도르프·함부르크·프라이부르크·도르트문트 등의 오페라극장에서 초석을 다졌다. 1984년부터 16년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2005년부터 2012년까지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2002년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 재직 중이다.
그의 명성만큼 악단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지만, 야노프스키는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지휘자로 손꼽힌다. 2009년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 종신 단원으로 활동 중인 유성권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관악 주자, 그것도 수석만큼이나 지휘자의 습관과 이면을 파악하고 있는 목격자가 있을까? 하나의 성부를 전원이 매달리는 현악기군과 달리, 단독 선율로 지휘자와 정면 승부하는 관악 주자들은 지휘자와 밀접한 동지가 되기도, 때로는 날카로운 적이 되기도 한다.
이번 내한 공연을 앞두고 유성권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오디션 과정과 야노프스키를 만난 후 알게 된 소탈한 모습,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의 일상까지. 유성권이 말하는 솔직 담백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Kaibienert

야노프스키를 만나기까지
나는 2009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이 됐다. 당시 서류로만 70명이 지원했고, 1차부터 4차까지 순차적으로 오디션이 진행됐다.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경력 단원)은 5차부터 시험에 합류한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5차부터는 합격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인지 시간이 더디게 갔다. 최종에선 두 명의 단원이 결정됐다. 당시 나는 스물한 살이었는데,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테스트 콘서트가 한 번 더 진행됐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을 뽑는 거였다. 야노프스키와는 9~10차 시험을 함께했다.
마침내 바순 수석으로 선발됐고, 3개월 후 종신 단원이 됐다. 보통 독일권 오케스트라는 인종 차별이 심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나는 그것이 ‘인종 차별’이 아니라 ‘실력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인 나도 한국인이 더 좋은 것처럼, 독일에서도 똑같은 실력이면 독일인을 선호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력이 월등히 차이 난다면 인종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야노프스키를 만난 후
야노프스키는 연습에 엄청 철저해서 자기가 계획한 연주 일정은 엄격히 지키고, 바쁘더라도 연습에는 무조건 참여한다. 비행기가 지연되는 등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에만 연습을 조정한다. 오케스트라는 혼자만의 연주가 아니라, 모두의 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단이 확정된 후, 주변에서 야노프스키가 엄격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첫 만남부터 지레 겁을 먹었다. 실제로 연습할 때는 크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범접하기 힘든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다.
악단의 분위기는 몇 년 사이 많이 바뀌었다. 일단 오케스트라 수준이 월등히 좋아졌다. 몇몇 단원이 은퇴했고, 젊은 단원이 입단했으며, 더불어 지휘자와의 소통도 원활해졌다. 오케스트라 단원에 대한 예우도 좋아져, 단원들은 오케스트라가 성장한 만큼 이름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개인이 열심히 한 만큼 오케스트라 실력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음악을 호흡하니 야노프스키의 목소리도 부드러워지더라.
나는 지금도 나이가 가장 어린 편이지만, 입단했을 때는 더 어렸다. 야노프스키는 그런 나를 귀여운 ‘손자’처럼 대해주었다. 그는 나의 바순 소리를 좋아하고, 나의 음악을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야노프스키는 평소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내가 솔로 연주를 끝내면 항상 “잘 뽑은 것 같다!”라고 해줬다.
입단 1년 차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간이 휙 지나갔다. 2년 차부터 단원들이 나를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프로’로 봐주었으며, 자기와 같은 자리에 있는 ‘동료’로 대했다. 단원들이 바란 건 ‘함께’하는 것이었는데, 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느껴 혼자 바쁘게 생활했다. 지난해부터 압박감이 차츰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작은 소리를 내면 다른 악기와 어떤 식으로 융합하는지 알게 됐다. 홀로 큰 소리를 내는 것보다, 함께 소통하는 음악이 오케스트라에서는 최고의 하모니다.

지금은 찰떡궁합
야노프스키는 입발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원들에게 엄격한 편이어서 야노프스키가 칭찬을 하면 모두가 놀란다.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가. 나한테는 유독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항상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 더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출하고.”
그가 보여주는 신뢰가 깊을수록 더욱 노력을 하게 된다. 오케스트라에서 솔로 연주가 끝나면 야노프스키와 눈을 맞춘다. “나 괜찮았죠?” 신호를 보내면 찌릿찌릿 전율이 온다. “응, 잘했어”라는 대답이 눈빛으로 들리는 듯하다.
우리 부모님이 공연장에 오면 야노프스키는 “나를 꼭 소개해줘야 돼!”라고 말한다. 부모님을 만나면, 그날 나의 연주를 세세히 설명한다.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는 이처럼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사람이다.


▲ 베를린에서 내한 공연을 준비 중인 야노프스키와 유성권

이번 내한 공연을 기대하며
지난 내한에서 주로 독일 레퍼토리만 선보인 탓인지 야노프스키가 독일 정통 음악만을 추구한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야노프스키의 지휘 레퍼토리는 매우 넓다. 베를린 공연에서는 모리츠 하우프트만(1792~1868)의 작품 같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지휘자다.
아시아 투어 공연은 수석을 포함해 모든 단원이 함께한다. 단원들은 아시아 12개국을 도는 투어를 기대하면서 내심 체력적인 면을 걱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번 내한은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치머만과 함께하는데, 독일 출신의 훌륭한 협연자와 함께하니 더욱 활기찬 분위기다.
나 또한 빨리 한국에 가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이번 투어를 앞두고 야노프스키가 말했다.
“유성권! 한국에 자네랑 가게 되어 너무 좋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하는데, 개인적으로 작곡가 중 브람스를 가장 좋아한다. 무겁고 따뜻한 음악. 브람스에는 내가 추구하는 음악 색깔이 담겨 있다. 브람스의 음악은 청중의 마음을 보살피는 것 같다.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감동을 느껴야 객석까지 따뜻함이 전달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람스를 한국에서, 게다가 야노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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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프스키/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
(협연 프랑크 페터 치머만)
3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버 ‘오베론 서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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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장혜선 기자(hyesun@gaeksuk.com) 사진 Felix Bro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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